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일상이 사라진 현실에 일상을 선물하는 '모리의 정원'



영화

    일상이 사라진 현실에 일상을 선물하는 '모리의 정원'

    [노컷 리뷰] 외화 '모리의 정원'(감독 오키타 슈이치)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 스포일러 주의

    풀 향기가 피어오를 것 같은 초록빛 풍경, 무한한 우주와 같은 정원을 누비는 벌레들, 햇빛과 달빛이 머무는 연못, 그리고 그 작지만 큰 세계의 주인공 모리. 이 소박하고 느린 일상의 공간을 전하는 영화는 일상이 사라진 요즘에 더욱 와 닿는다.

    '모리의 정원'(감독 오키타 슈이치)은 30년 동안 외출하지 않은, 작은 것들의 화가 모리(야마자키 쓰토무)가 집으로 찾아오는 뜻밖의 손님들을 마주하며 정원의 평화를 지키려는 이야기다.

    '모리의 정원'은 1974년을 배경으로 일본 근대 화가 구마가이 모리카즈(1880~1977)의 노년과 그의 아내 히데코와의 이야기를 잔잔한 수채화처럼 담았다.

    '남극의 쉐프'(2009), '딱따구리와 비'(2011) 등에서 그러했듯 오키타 슈이치 감독은 일상의 모습을 잔잔하면서도, 작은 웃음이 피어나게끔 그려냈다. 여기에 지난 2018년 작고한 키키 키린의 모습을 스크린에서 다시 만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영화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면 정원 속 연못을 비추는 햇빛을 가리게 되는 큰 아파트가 들어서는 일이다. 그러나 이 엄청난 일 앞에서 모리는 '모리만의' 방식으로 대처한다. 30년 동안 집의 시작부터 조금씩 파 내려가 만든 연못을 주저 없이 흙으로 다시 덮는다. 갈등이 아니라 그저 '그렇게 되는 거지'라는 식의 마음으로 자연스레 그 길을 택한다.

    모리가 정원을 대하고, 생명을 대하고, 일상과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그의 욕심 없는 삶에 대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좁은 세계에서 어떻게 30년을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그러나 그가 정원을 대하는 것처럼 우리도 모리를 찬찬히 눈을 떼지 않고 들여다보면 그의 삶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는 거구나'하고 말이다.

    모리는 매일 낮에는 정원의 작은 생명을 관찰하고, 밤에는 '학교'라 부르는 자신의 화실에서 붓을 잡으며 살아간다. 타인이 보기에는 단조로운 삶일 수 있어도, 모리에게 정원은 우주처럼 매일 새롭고 신비로운 곳이다.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94세 모리는 물론 젊은이의 눈에도 잘 보이지 않는 개미의 움직임까지 묘사할 정도로 그는 작은 것들을 사랑한다. 30년이라는 시간을 한 집안에서 보낼 수 있었던 건, 매일 마주하는 정원임에도 모리에게는 매 순간이 처음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어제 만난 개미처럼 보여도 그에게는 모두가 다른 개미이고, 서로 다른 움직임을 보인다.

    누군가에게는 고요하고 고정된 세계이지만, 모리에게 정원과 그 안에 담긴 세상은 매일, 매 순간 미묘하게 달라진다. 그 작은 흐름을 발견할 수 있는 건 그만큼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연과 생명에 대한 경외를 갖기 때문이다.

    별다른 사건 없이 잔잔하게 지나가는 모리의 하루하루를 보는 것은 지루할 수도 있다. 간혹 모리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로 인해 종종 떠들썩해지지만, 그 순간뿐. 관객은 모리와 정원을 반복해서 보게 된다. 아마 그저 그렇게 지나가는 우리네 일상을 닮아 있어 더 지루하게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리처럼 우리는 일상이라는 작은 정원, 곧 나만의 우주를 지니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우주가 너무 광대해 움직임조차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과 삶도 그렇다. 우리가 못 느낄지 몰라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고, 우리가 마주하는 매 순간도 사실 우리에게는 처음 만나는 새로운 순간이다. 일상을 경외를 갖고 바라보는 순간, 다른 모습이 나타난다.

    일상에서 움직임과 새로움을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모리가 작디작은 개미의 남다른 움직임을 찾아낸 것처럼 말이다. '모리의 정원'은 그렇게 일상의 소중함, 그리고 일상의 소소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는 재미를 알려준다.

    특히나 코로나19로 인해 늘 옆에 있으리라 믿었던 일상이 사라진 지금, '모리의 정원'은 우리에게 '일상'이라는 선물을 가져다준다. 그렇기에 더 눈길이 가고, 한 번쯤은 만나보라고 권하고 싶다.

    3월 26일 개봉, 99분 상영, 전체 관람가.
    (사진=㈜영화사 진진 제공)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