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전쟁의 참화로 얼룩진 소년은 다시 날 수 있을까

뉴스듣기

페이스북공유하기 트위터공유하기 밴드공유하기



영화

    스페셜 노컷 리뷰

    전쟁의 참화로 얼룩진 소년은 다시 날 수 있을까

    뉴스듣기

    [노컷 리뷰] 외화 '페인티드 버드'(감독 바츨라프 마르호울)

    (사진=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아직 세상을 제대로 접해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어린 소년이 전쟁으로 인해 세상의 가장 어둡고도 잔인한 밑바닥을 겪는다. 전쟁이 소년의 몸과 마음을 얼룩덜룩 색칠한다. 전쟁의 참화로 얼룩진 어린 소년은 다시 세상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을까.

    폴란드 출신 작가 저지 코진스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페인티드 버드'(감독 바츨라프 마르호울)는 혐오와 적대가 넘치던 광기의 2차 세계대전 시기, 동유럽 어느 지역 유대인 소년의 수난을 다룬 영화다.

    영화는 객관적 시각을 유지하려는 의도였는지, 혹은 여정에 따라 변해가는 소년의 눈빛에 관객이 몰입하길 원해서였는지, 전쟁의 폭력적 속성을 보다 진하고 깊게 드러내려 했던 건지, 흑백으로 제작됐다.

    169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어지는 흑백의 화면에서 얼굴과 장면, 분위기에 더욱 몰입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진한 검은색으로 흘러내리는 피마저 더 차갑고 냉혹하게 다가온다. 극단적으로 적은 대사의 양도 화면과 감정에 더욱 몰입하게 돕는다.

    영화는 뚜렷한 플롯이 있다기보다 '소년'의 발걸음을 따라 함께 이동한다. 인생이 잘 짜인 극본처럼 딱 들어맞아 굴러가지 않듯이 영화도 끊임없이 '악마'라 불리고, 핍박받고, 폭력에 노출되고, 전쟁이 만들어낸 차갑고 잔인한 현실에 던져진 채 무작정 길을 떠나는 소년을 비출 뿐이다.

    전쟁은 누구에게도 가혹하지 않은 적이 없고, 아이라고 해서 동정의 눈길을 보내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 선 유대인 소년은 사람들에게 '악마'일 뿐이고, 마을에 재앙을 가져올 '죽음을 부르는 눈'을 지닌 마귀일 뿐이다.

    가뜩이나 엄혹한 현실에서 유대인이라는 혈통까지 더해진 소년의 여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보기 불편함을 넘어선다. 과연 끝까지 이 영화를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을 스스로 던지게 된다.

    (사진=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영화에는 차마 스크린을 앞에 두고 버틸 수 없을 정도로 폭력적이고 불쾌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베니스영화제 상영 중 관객들이 자리를 떠났을 정도로 보기 힘든 영화임은 틀림없다.

    우리는 어쩌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배운 만큼의 범위 안에서 겪어보지 못한 것을 상상하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우리가 아무리 끔찍한 상상력을 동원해 그려낸다 한들, 누군가가 직접 온몸으로 겪은 전쟁의 참화보다는 덜 잔인하고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페인티드 버드'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전쟁의 한 자락을 눈앞에서 목격한다는 것은 견디기 힘든, 극장 밖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전쟁이 부여한 잔인함과 자유 아닌 자유, 굶주림과 죽음의 공포를 견뎌낸 소년은 겨우 잃어버린 아버지를 만나지만, 아버지를 만난 소년의 눈빛에 담긴 건은 그리움이 아니라 분노와 공허에 가깝다. 이름을 기억하냐는 아버지의 질문에 아이는 대답하지 않는 걸까, 못하는 걸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정체성 유지보다 생존 그 자체에 길든 아이의 눈빛은 흑백의 화면을 뚫고 나와 또 다른 의미에서 견디기 어렵게 만든다.

    자신의 이름을 잊었던 소년은 영화의 마지막,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손가락으로 창문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요스카'라고.

    이름을 기억해 낸 소년 요스카가 전쟁의 참화로 얼룩지기 전의 요스카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영화 속 페인트로 얼룩진 새가 무리에 어울리지 못하고 공격당해 추락한 것처럼 요스카도 이전과 달라진 기억으로 사회에 섞이지 못할 수도 있다. 이전의 요스카처럼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난 후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그저 소년이 '페인티드 버드', 전쟁이란 페인트로 얼룩진 한 마리 새가 되었다는 것이다.

    3월 26일 개봉, 169분 상영, 청소년 관람 불가.

    (사진=엠엔엠인터내셔널㈜ 제공)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이 시각 주요뉴스

    김현정의 뉴스쇼

    정관용의 시사자키

    에디터가 추천하는 꼭 알아야할 뉴스


    많이본 뉴스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