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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잊지 못하는 모친의 기억 두가지



대통령실

    문 대통령이 잊지 못하는 모친의 기억 두가지

    문 대통령 모친 강한옥 여사 별세…향년 92세
    가난했던 어린시절, 연탄·계란 장사로 생계 꾸린 모친
    文 "연탄 배달 창피해 툴툴거려…母마음 아프게 했다"
    "지금도 어려운 사람들 보면 그때 우리 생각나"
    학생운동으로 구속된 文 호송차 따라 달린 母
    "면회오는 어머니 뵙는 것, 영 미안하고 괴로워"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6년 12월 25일 성탄미사를 위해 강 여사와 함께 길을 나서는 모습. (사진=문재인 대통령 공식 블로그 캡처/연합뉴스) 확대이미지

     

    문재인 대통령의 모친 강한옥 여사가 29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문 대통령은 자신의 책 '문재인의 운명'에서 평생동안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어머니의 기억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다.

    ◇ 가난했던 어린시절…암표장사까지 시도했던 모친

    문 대통령의 부모는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으로 6.25전쟁 당시 흥남철수 때 선박에 올라 거제도 임시 피난민 수용소에 도착했다.

    연고도 없는 낯선 땅에서의 고단한 삶. 문 대통령의 어린 시절은 가난으로 점철돼 있었다. 부산으로 이사한 뒤, 아버지의 장사는 실패했고 어머니는 구멍가게, 계란장사, 연탄배달 등 일을 가리지 않으며 근근이 생계를 꾸려갔다.

    문 대통령은 "검댕을 묻히는 연탄배달 일이 늘 창피했다"며 "오히려 어린 동생은 묵묵히 잘도 도왔지만 나는 툴툴거려서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다"고 회고했다.

    또 문 대통령은 책에서 "복지라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어릴 때 기억이 있다. 결코 잊혀 지지 않는 장면"이라며 가난했던 시절 어머니와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한다.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문 대통령은 어느 일요일 새벽 부산역에 가자는 어머니의 언급에 영문도 모른채 따라 나섰다. 어머니는 문 대통령에게 "일요일 서울 가는 특급열차 차표가 귀하니 그 차표를 사 뒀다가 표를 못 산 승객에게 웃돈을 얹어 팔면 벌이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기차표 암표장사를 하자는 것이었는데, 집에서 7~8㎞쯤 되는 먼 길을 걸어 부산역에 도착해서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지 표를 팔지 않아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표를 팔기 시작해서도 어머니는 지켜보기만 할 뿐 표를 사지 않았고, 그냥 돌아가자고 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그때 어머니가 왜 그냥 돌아왔는지 모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며 "어머니도 그 후 다시는 암표장사를 시도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책을 쓰면서 다시 어머니에게 "그때 왜 그냥 오셨느냐"고 물었는데 어머니는 "듣던 거 하고 다르데"라고만 답했다.

    문 대통령은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암표장사가 소문이 나 단속을 받았거나 어머니가 어린 아들과 함께 하기에 내키지 않았을 것 같다는 추측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책에서 "지금도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그때 우리 모자 생각이 난다"고 돌아봤다. 이어 "살다보면 누구나 어려운 시기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 국가가 도와주면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런 일을 제대로 하는 것이 복지국가"라는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가난의 기억은 살아가면서 그대로 인생의 교훈이 됐다"며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받았던 도움처럼 나도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 구속된 文 호송차 따라 달렸던 모친…"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문 대통령은 자신이 학생운동에 투신하게 된 것이나 인권변호사가 된 것도 어린 시절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고등학생 시절에도 박정희 대통령의 3선개헌 반대 투쟁에 참여한 문 대통령은 재수 끝에 경희대학교에 입학해서도 유신 반대 투쟁에 앞장섰다.

    그러던 1975년 4월, 반 유신투쟁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 문 대통령은 총학생회장 대행 자격으로 유신독재 화형식을 겸한 격렬한 시위를 이끌었다. 시위 끝에 문 대통령은 자발적으로 경찰에 체포돼 청량리경찰서에 구속·수감됐다.

    문 대통령은 "구치소로 넘어가기 전까지는 가족 면회를 시켜주지 않을 때였다. 응당 그러려니 했고, 그것이 부당하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나는 집에 알리고 싶지도 않았다. 언젠가 알게 되겠지만, 가능한 한 늦게 알게 되기를 바랐다"고 언급했다.

    자진 체포될 정도로 자기 행동에 떳떳했던 문 대통령이지만, 가족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구속이라는 상황은 숨기고 싶었던 속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런데 열흘 정도 시간이 흘러 검찰로 이송되는 호송차에 올라타는 순간, 문 대통령은 차 뒤편 구멍 밖에서 달려오고 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팔을 휘저으며 '재인아! 재인아!'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고 한다. 호송차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어머니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내 소식을 듣고 부산에서 급히 올라오신 모양"이라며 "면회를 안 시켜주니 헛걸음을 하다가, 그날 검찰로 넘어간다는 말을 듣고 혹시 볼 수 있을까 해 일찍부터 와서 기다렸던 모양"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차에 올라타느라 어머니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마치 영화 장면 같은 그 순간이 지금까지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며 "혼자서 어머니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과 어려운 사정에 대학까지 보내주신 그 기대를 저버렸다는 괴로움에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가끔씩 면회 오는 어머니를 뵙는데, 영 미안하고 괴로웠다"며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하필 네가 왜 그 일을 해야 했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할 말이 없었다"면서 죄송함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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