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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체험이 성평등 사업?…서울구청, 엉터리 '성인지예산'



사건/사고

    양봉체험이 성평등 사업?…서울구청, 엉터리 '성인지예산'

    '성 평등·격차 해소' 위한 지자체 '성인지예산'…어디 쓰이나 봤더니
    야간 주차장 운영부터 도시 텃밭·양봉 체험까지 '황당 집행'
    사업 취지만 '성 평등' 끼워맞춰 주먹구구 집행 논란
    전문가 "지자체에만 맡겨 놓을 게 아니라 정부·시 관리 감독 필요" 조언

    (사진=자료사진)

     

    서울시 다수 자치구에서 성평등 실현 목적으로 편성된 '성인지예산'을 녹지 조성이나 주차장 운영, 심지어는 양봉 체험 프로그램 운영 등 엉뚱한 곳에 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책 논의부터 관련 예산 관리·감독까지 허술하게 이뤄진 결과로 파악되면서 기초지방자치단체의 성평등 정책 집행 실태를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성평등 예산으로 양봉사업…이유는 "남녀 모두 참여하니까"

    성인지예산 제도는 여성과 남성에게 미칠 영향을 미리 분석해 예산을 편성하고, 이를 통해 남녀가 동등하게 수혜를 받도록 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부는 지난 2005년 중앙행정기관과 광역자치단체를 시작으로 2013년부터는 기초지자체에도 성인지예산 제도를 도입했다.

    서울시 25개 자치구가 편성한 성인지예산은 2017년 2조1447억원에서 2018년 2조9238억, 2019년 3조6961억원으로 매년 늘고 있다.

    29일 CBS노컷뉴스가 서울시 종로구, 강북구, 강동구, 성북구, 서초구 등 지자체의 2019년도 성인지예산 운영 현황을 취재한 결과, 이들은 기존에 진행하던 사업의 취지를 성 평등 목적에 부합하는 것처럼 사실상 억지로 끼워맞춰 해당 예산을 집행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일례로 강동구는 도시양봉 교육, 체험 등이 주 내용인 '친환경 도시양봉 운영' 사업에 성인지예산 5900만원을 투입했다. 강동구는 예산서에서 남성 참여자의 비율이 높았던 사업이라며 '생활밀착형 프로그램을 추가해 올해 여성 수혜율을 30%로 높이겠다'고 명시했다.

    이와 관련해 구 관계자는 "남녀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이어서 성평등과 관련있다고 생각했다"며 "사실 일반 예산으로도 운영할 수 있는 사업이기는 하다"고 말했다.

    서초구의 경우 30억100만원을 들여 '녹지대·가로수 조성' 사업을 하고 있다. 서초구 관계자는 "사업 현장 근처에 아파트가 있고, 여성 주민들이 많아 여성 수혜 비율이 높다고 판단해 성인지 사업으로 선정했다"는 설명을 내놨다.

    주먹구구식 예산 집행의 허술함이 결과로 드러난 지자체도 있다. 종로구도 성인지예산으로 '부설주차장 야간 개방' 사업을 하면서 남성과 여성이 동일하게 수혜를 받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수혜 비율은 남성(89.9%)이 여성(10.1%)보다 높았다. 종로구는 결국 이 사업이 성평등 정책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해 얼마 전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는 제외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성북구는 성인지예산으로 '도시텃밭·체험농장' 사업을, 강북구는 올바른 환경인식이 성평등 실현에 기여한다는 판단 하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환경교실' 사업을 하고 있다.

    ◇ 구청도 '허술' 인정…사업 발굴부터 예산 관리까지 '구멍'

    지자체 관계자들은 "사업들이 성평등과 관련이 별로 없는 게 사실"이라며 "성인지 사업을 공무원들이 생각해내는 데 한계가 있어 관련성이 떨어지는 사업이어도 일단 (계획을) 제출하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전문적인 성평등 정책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민관 위원회 역시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는 진단이 나온다.

    성평등 관련 조례를 갖춘 지자체는 양성평등위원회, 성별영향평가위원회 등을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2명 이상의 민간 위원이 위촉되는데, 성평등 정책 전문가가 위촉되는 경우는 드물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성평등 정책에 특화된 사람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아 지역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성인지예산 사업으로 '성 불평등'이 해소됐는지 검토하고, 의견을 교류하는 절차 역시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 업무를 담당하는 한 공무원은 "그동안 회의한 자료를 (성별영향평가위원회 등) 위원들에게 보내주고, 사업에 대한 피드백은 서면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며 "예산서에 제출하는 '성평등 기대효과'는 각 과 담당자 1명이 임의로 적는다"고 밝혔다.

    성인지예산 집행 지침을 제시하는 여성가족부는 이 같은 부실 실태의 책임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모양새다. 여가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지자체가 성인지예산 사업을 선정하도록 돼 있다"며 "광역자치단체마다 있는 성별영향평가센터에서 잘못 설정된 성과 목표나 지표는 개선하도록 권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성별영향분석센터는 지자체의 요청이 있어야만 성인지예산 사업에 대한 컨설팅을 지원하는 체계여서 실효성에 물음표가 붙는다.

    이런 일련의 상황에 대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이택면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와 서울시가 적합성 여부를 면밀히 판단해야 하지만, 현재는 구청 담당자의 재량에 맡겨져 있다"며 "기획재정부의 정부재정사업 평가에 들어가는 인력, 예산 등 제도적 뒷받침이 지자체의 성인지예산 사업에도 투입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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