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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음증적 시선이 기른 21세기 일상의 포르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46번째 여름 강좌 제1강]
2000년대 한국에서 '포르노'란(배상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강사)

'포르노'(porn)는 여성을 가장 노골적으로 대상화 한 영역으로 분류돼 왔다. 21세기에는 '몰래카메라' '리벤지 포르노'라는 이름의 '불법촬영물'이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면서 여성에 대한 성 착취와 성폭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큰 힘을 얻었다. 지금 한국 상황과도 맞닿아 있는 미국의 1970~80년대 '포르노 전쟁'을 살펴보고,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할지 살펴본다. [편집자 주]

판매·상영 금지 논란이 일었던 작품들. 사진 왼쪽부터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1992),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 장선우의 영화 '거짓말'(1999). (사진=자료사진 및 다음 영화 제공) 확대이미지

 

매체가 변화하면서 포르노 역시 다양해지고 있다. 불법 촬영물이 등장하면서 이른바 '일상의 포르노화'가 큰 사회적 문제가 됐다. 과연 2000년대 한국에서 '포르노'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 걸까.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열린 여성문화이론연구소 46번째 여름 강좌 '포르노와 페미니스트' 첫 번째 강의에서는 '2000년대 한국에서 포르노란'을 주제로 포르노를 둘러싼 국내의 다양한 논쟁과 변화, 그리고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이야기했다.

한국에서 '포르노'란 법적으로 '성행위 재현을 목적으로 하는 재현물'이라고 정의한다. 미국에서도 1970년대 말 이른바 '포르노 전쟁'이라 불리는 포르노를 둘러싼 담론이 활성화됐을 당시, 포르노에 대해 '남성 중심적 시각에서 노골적인 성적인 이미지로 여성을 대상화하는 재현물'이라고 정의했다.

배상미 강사가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여성문화이론연구소에서 열린 여성문화이론연구소 46번째 여름 강좌 '포르노와 페미니스트' 첫 번째 강의에서 '2000년대 한국에서 포르노란'을 주제로 포르노를 둘러싼 국내의 다양한 논쟁과 변화, 그리고 이에 대해 우리는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최영주 기자)

 

배상미 강사는 "서사 전개 과정에서 성행위가 재현되는 게 꼭 필수적이냐 아니냐, 서사와 관계있느냐 없느냐 따져서 포르노를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구별이 모호하다"라고 설명했다.

박정희 정권 시기에는 여성의 신체 부위가 화면에 나왔는지 여부를 가지고 포르노를 규정했다. 서사 전개 과정상 필요해도 여성의 신체 부위가 나오면 포르노로 규정하고, 검열했다.

1980년대와 1990년데 걸쳐 '에로 비디오'라 불리는 재현물이 대거 유통됐는데, 당시 재현물들의 특징 중 하나는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보여주기보다 암시하는 방식으로 사람들의 상상을 끌어낸다는 데 있다. 배상미 강사는 "박정희 시기 포르노에 대한 규정이 한국의 에로비디오, 포르노에 있어서 '관음증적 시선'이 특히 발달하게 된 원인을 제공했다"라고 지적했다.

이후 한국에서는 1990년대에 들어서서 포르노를 둘러싼 논쟁이 활발해졌는데, 크게 세 번의 논쟁이 사회적으로도 주목받았다.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1992),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6), 장선우의 영화 '거짓말'(1999)이 1990년대 한국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포르노 논쟁이다. 모두 판매금지 내지 상영금지 논란이 일었던 작품이다.

배 강사는 "당시 논쟁이 있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두 책에 대해 정부가 판매금지를 내린 정책이 문제적이다, 과거에는 정부의 권위에 도전하는 방식이 민주적이지 않은 의사결정에 도전했다면, 1990년대에는 문화적인 것으로 지형이 바뀌었다는 사람도 있었다"라며 "표현의 자유와 기존 체제에 도전하는 논의를 적극적으로 포용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그런데 요즘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보자면 왜 우리는 남성의 시각으로만 체제에 도전하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1969년 제작된 영화들로, 당시 외설 음란물에 대한 단속에 걸렸다. 사진 왼쪽부터 신상옥 감독의 '내시'와 박종호 감독의 '벽속의 여자'. (사진=다음 영화 제공)

 

1990년대 소설과 영화와 같이 문학작품 등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포르노 논쟁은 2000년대로 넘어오며 변화하게 된다. 인터넷의 발달 등으로 유통 방법, 유통속도, 재현방식이 변화하며 논쟁의 방향도 달라진다.

소위 'X양 비디오'(1998, 2000) 사건들의 등장은 요즘 '몰카' '리벤지 포르노' 등으로 불리는 '불법 촬영물'의 '전사(前史)'라 할 수 있다.

배 강사는 "초고속 인터넷망 보급을 연구하는 사람들도 'X양 비디오'들이 한국 초고속망 확산에 기여했다고 평가할 정도로 당시 엄청난 관심을 가졌다"라며 "'000양 비디오' 같은 사건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한국의 섹슈얼리티의 재현, 유통, 수용을 연구할 때 이런 국면은 확실히 중요하게 보고 넘어가야 할 거 같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2016년 폐쇄된 불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은 불법 촬영물 유통의 대표적인 공간이었다. 여성의 일상이 어느 순간 '음란물'처럼 소비되고 유통됐다.

배상미 강사는 "포르노가 예전에는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었다면, 2010년대에 들어 다양한 포르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몰카' '리벤지 포르노'가 인기 있는 포르노가 되고, 성폭력과 재현물 간의 관계가 모호해졌다"라며 "여성이 지나가는 걸 찍고 올리고 성애화하고, 성적 대상화하며 여성에게는 일상일 뿐인데, 어떻게 재현되느냐에 따라 '포르노'가 되어버렸다. 한 연구자(김소라, 2017)는 이를 '일상의 포르노화'라고 지적했다"라고 비판했다.

대표적인 유통 방식의 변화로는 '단체 대화방'을 들 수 있다. '단톡방'을 통해 불법 촬영물이 본격적으로 공유되고 유통되는 방식으로 확산됐다.

배 강사는 "'불법 촬영물'이 사람들 사이 대화를 통해 '포르노'라는 의미를 얻게 됐다. 단톡방뿐 아니라 포털사이트 등을 통해 서로 대화하고 불법 촬영물을 인증하는 사건이 굉장히 많아졌다"라며 "불법 촬영물 공유하면서 형성되는 '남성연대'에서 대상화되는 것은 '여성'이다. 여성혐오가 심화하면서 남성연대를 강화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배 강사는 "단톡방 성폭력 가해자들의 경우 크게 죄의식이 없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놀이지 이게 무슨 성폭력이냐며 잘못했다는 의식이 없는 것"이라며 "결국 성폭력을 둘러싼 젠더 갈등이 심화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6년 4월 7일 폐쇄된 국내 최대 디지털 성폭력 사이트 소라넷 (사진=자료사진)

 

살펴보면 1990년대에는 정부에 의해 문학작품이 음란물로 지정되며 다양한 담론을 형성하기 어려웠고, 2000년대와 2010년대에 들어서는 불법 촬영물 관련 사건이 문제가 되며 '포르노'에 대한 제대로 된 담론이 성장할 수 없는 환경에 이르렀다.

배 강사는 "'리벤지 포르노'라는 명칭이 문제적이다.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 자체가 남성의 시각에서, 남성들이 유희거리처럼 포르노로 향유하는 현상을 반영하는 명칭"이라며 "사람들이 그걸 받아들이는 이유는 박정희 시기 관음증적으로 특정 신체부위에 집착해서 검열하던 시선을 통해 한국 에로비디오도 관음증적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음란물이 '몰래'라는 것들을 기본 베이스로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성폭력'이라는 단어보다 지금까지 봐 온 포르노물과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것 아닌가"라고 진단했다.

이어 배 강사는 "성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기존 성의 재현 내지 유통하는 방식에 대한 반대 담론이 더 성장하게 되는 상황이 있었다. 무조건 안 된다는 당위적인 논의가 더 성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만큼 적들도 명확했다"라며 "앞서 이야기한 상황과 한국적 맥락에 대해 주목해 볼 필요는 있는 거 같다. 이런 것들이 한국에서 섹슈얼리티를 논의해볼 수 있는 '키(key)'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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