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사진=자료사진)
일본의 경제도발로 한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와중에 이번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안보도발 사태가 터졌다.
23일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가 동시에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 · 카디즈)에 무단진입하고 러시아 공중조기경보통제기가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중국·러시아 폭격기 4대는 이날 3시간여 동안 카디즈를 넘나들며 노골적인 무력시위를 벌였다.
6.25 정전 이후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가 한꺼번에 한국을 상대로 이렇게 도발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러시아 공중조기경보통제기의 독도 영공 침범이다.
영공 침범은 7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우리 공군은 즉각 출동해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에 대해 1차에 기총 80여발, 2차에 280여발 등 모두 360여발을 경고 사격했다.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지만 러시아 군용기가 대응 사격없이 돌아가면서 일단락됐다.
외국 군용기가 한국 영공을 침범한 것이나 이에 대해 우리 공군이 경고사격한 것 모두 사상 초유의 일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동해에서 이렇게 함께 안보도발을 감행한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다.
중국 국방부는 "23일 중국과 러시아의 연합비행은 전면적인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심화 발전시키고 연합 작전 능력을 향상하며 공동으로 글로벌 전략 안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전략 안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지만 이것은 중국과 러시아의 연대를 강화해 동북아에 이어 인도·태평양까지 영향을 뻗치고 있는 미국을 견제하려 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이 도발은 볼튼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방한 수 시간 전에 발생한 것이어서 미국에 대한 무력시위와 경고의 성격이 짙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한일 갈등으로 인한 균열의 틈새를 노려 한미일 군사공조를 뒤흔들겠다는 의도도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그 의도가 무엇이든 카디즈가 한·중·일·러의 화약고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서 통하는 것은 국제법이나 관례가 아니라 무력이다.
카디즈는 국가안보 목적상 외국 군용기의 식별을 위해 한반도 주변 상공에 설정한 임의의 구역을 말한다.
이 구역으로 진입하려면 사전에 비행목적과 비행경로 등을 해당국에 통보하는 것이 국제적인 관례이다.
중국이나 러시아는 이번에 아무런 사전 통보없이 무단으로 카디즈에 진입했으면서도 우리 전투기의 경고 통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다.
중국 당국은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이 아니며 국제법에 따라 각국은 비행의 자유를 누린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중국은 자국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동중국해 방공식별구역(CADIZ)에 지난 1월 외국 항공기가 진입하자 전투기를 출격시켜 "CADIZ에 들어왔다. 당신의 국적과 비행 목적을 밝히라"고 요구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중국 CCTV로 내보낸 바 있다.
패권국가를 꿈꾸는 중국의 전형적인 이중적인 태도로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영공을 침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 군의 대응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막무가내식 밀어붙이기로 올들어 군용기의 카디즈 무단진입은 중국이 25차례, 러시아가 13차례나 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이제 중국과 러시아가 동시에 카디즈 무단진입을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어 한국의 안보는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나라로서 여기에 맞설 수 있는 최상의 카드는 한미일 안보공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와 일본의 경제규제로 인한 한일 갈등 심화로 한미일 삼국의 안보공조에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그 균열은 여지없이 드러났다.
우리 군이 독도영공을 침범한 러시아 군용기에 경고 사격을 가한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항의한 것이다.
"다케시마(竹島, 독도의 일본식 이름)는 우리나라의 고유 영토로 영공 침해를 한 러시아에 대해선 우리나라가 대응해야 하지 한국이 거기에 무언가 조치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부 입장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안보공조가 이뤄졌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황당한 항의이다.
우리나라는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의 고유 영토로 일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일축했다.
실제로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침범에 대해 전투기가 출동해 맞대응한 것은 우리 공군이다.
일본 역시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 진입에 대해 전투기를 발진시키긴 했지만 경고사격을 하며 독도영공을 지킨 것은 우리 공군이다.
러시아 역시 독도 영공 침범에 대해 공식 부인하는 전문을 보내온 것은 우리나라에 대해서였다.
이번 사태로 독도가 누구 땅인지가 국제적으로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지만 사태의 심각성으로 인해 마냥 흥겨워할 일은 아닌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