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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물 부어 글자 하나하나 빚어내…소설가 김유정 되살리다"

"납물 부어 글자 하나하나 빚어내…소설가 김유정 되살리다"

책과인쇄박물관 전용태 관장 인터뷰
"박물관 열며 어렵게 구한 활판인쇄 기계로 작품 남기고 싶어"
활판인쇄, 활자에 잉크 발라 압력 가하는 방식
1970년대 이후 사라진 것 되살려
'잔소리를 느러놓다가' '깔깔대인다' 등 소설가 김유정이 쓴 문체 그대로 살려
사들인 납만해도 10톤 가량…지속적으로 활판인쇄 작품 찍어내고 싶어
"저자의 땀 뿐 아니라 인쇄공의 노력도 알아줬으면"

■ 방송 : 강원CBS<시사포커스 박윤경입니다>(강민주PD 13:30~14:00)
■ 진행 : 박윤경 ANN
■ 정리 : 윤유미 인턴
■ 대담 : 책과인쇄박물관 전용태 관장

 

◇박윤경> 책장에 꽂혀있는 오래된 책들의 글자체를 유심히 보신 적 있으십니까? 글자 하나하나가 투박하지만 정성껏 조각된 느낌이 물씬 드는데요, 이것이 바로, 글자 틀에 납물을 부어 글자 어미를 하나씩 만드는 '활판 인쇄술'입니다. 요즘은 컴퓨터에 밀려 사라져 가는 활판 인쇄기를 구해 김유정 작가의 작품 3권을 내놓은 분이 있어서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조판 작업에만 우직하게 3년을 공들이셨다고 하는데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시죠. 책과인쇄박물관 전용태 관장입니다. 안녕하세요?

◆전용태> 안녕하세요? 전용태입니다.

◇박윤경> 이번에 출간한 책은, 춘천 출신 소설가인 김유정의 단편 소설까지 모두 3권이죠?

◆전용태> 맞습니다. 김유정 소설 거의 전 편을 담아 세권으로 출판하게 되었는데요. 이것은 활판인쇄가 사라진 1970년대 이후로 처음 시도된 일일 것입니다.

◇박윤경> 저희도 책을 나눠서 읽어봤어요. 책을 봤더니, 우선 첫 느낌은 어릴 적 할머니 댁 책꽂이에서 본 책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글자마다 잉크의 농담이나 눌림 정도가 다르고요. 일단 누런 종이도 그런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과거 방식인 이 활판인쇄와 오늘날 인쇄 방식의 차이는 뭐가 다른가요?

◆전용태> 요즘 인쇄방식은 옵셋인쇄방식이라고 부릅니다. 종이에 잉크가 살짝 묻어서 인쇄하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깨끗하고 선명하지만 햇빛이나 자외선을 쐬면 색이 날아가거나 합니다. 그에 반해 활판인쇄는 활자에 잉크가 묻어서 뒤에 압력을 가해서 찍는 방식입니다. 종이가 살아있는 한 글자도 계속 살아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고요. 처음엔 투박하다고 느껴지지만 정겹고 예스러운 멋도 느낄 수 있습니다.

◇박윤경> 오늘 책을 한 권 가져오셨어요. 우리 청취자분들에게 한번 소개 해주시겠어요?

◆전용태> 옛날에 책을 만드는 과정을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겠더라고요. 또 젊은이들은 이런 책을 처음 볼 것 같아서, 실물을 보고 직접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동백꽃> 첫 페이지를 하나 가져왔습니다. 보시면 한 페이지에 수많은 글자가 있습니다. 이 책에 필요한 글자를 다 만들어야 해요. 그러려면 2 천 자가 넘게 필요하더라고요. 책에는 반복되는 글자가 많이 들어가거든요. 수백, 수 천자를 만들어서 정리하고요. 책을 만들 때 필요한 글자를 찾아야 합니다. 이 과정을 '문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글자를 찾는 분을 문선공이라고 했고요. 글자를 다 찾은 다음에 책모양의 판을 짜야하는데 그 과정을 '조판'이라고 합니다. 책이 워낙 양이 많기 때문에 분업화가 이루어집니다. 문선을 했지만 여러 번의 교정을 해야 합니다. 최종 확인이 되면 활판인쇄 기계에 넣고 단단히 고정을 시킵니다. 인쇄하다가 하나라도 틀어지면 큰일이 납니다. 그래서 단단히 고정 한 후에 인쇄공이 종이를 한 장 한 장 넣어가면서 반자동으로 작업을 합니다. 막연하게 책만 봤을 때는 3년이라는 시간이 긴가민가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실물을 보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해가 가실 것 같아요. 저는 3년이 오히려 짧은 기간이라고 생각됩니다.(웃음)

◇박윤경> 저는 오늘 가져오신 <동백꽃> 첫 페이지를 보고 책 세권에 3년이라는 시간도 짧게 걸리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책을 한 번 들여다볼게요. <동백꽃>의 한 구절에 "잔소리를 두루 느러놓다가 남이 드를가봐 손으로 입을 트리막고는 그 속에서 깔깔대인다"고 나와 있습니다. 글자의 모양만 활판인쇄의 느낌을 살리신 게 아니라 김유정 작품의 언어적 특징들과 옛말까지 그대로 살리셨더라고요.

◆전용태> 네. 이번에 책을 만들면서 거의 김유정 작품을 외우다시피 했어요. 재밌는 것은 이때가 1930년대 작품이잖아요. 그 당시는 일제 시대여서 지식이라는 것은 거의 한자로 썼거든요. 그런데 김유정 작가는 우리의 토속적인 언어를 살려서 재미있게 글을 썼기 때문에 오늘날의 말로 쓰기보다 그 당시의 표현을 그대로 쓰는 것이 책을 읽을 때 새로운 묘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설가 김유정의 <동백꽃> 첫 페이지의 활판인쇄 조판

 

◇박윤경> 요즘 컴퓨터로 책을 쉽게 만드는 시대잖아요. 이렇게 활판인쇄 형식으로 옛 책의 느낌을 살려서 고생스럽게 만드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용태> 맞습니다. 저희도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물관을 열면서 지금은 사용되진 않지만 작동되는 옛 기계로 4~50년 전 방식으로 책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했어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묵묵히 작업을 진행했고 이번에 결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박윤경> 그렇군요. 지금 젊은 층이나 청소년들은 활판인쇄물을 보기가 정말 어렵겠지만, 예전에는 책뿐만 아니라 잡지나 명함 같은 것도 활판인쇄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전용태> 네. 옛날에는 서식이나 잡지, 명함 거의 모든 인쇄물들이 활판인쇄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기계는 있을 수 있지만 옛날식으로 책을 만든다는 것은 워낙 힘든 방법이라 거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이왕이면 힘들더라도 과거의 방식으로 책을 내서 경험하지 못한 분들에게 보여드리면 어떨까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해왔습니다.

◇박윤경> 활판인쇄로 작업을 할 때 한번 글자를 만들면 계속 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라면서요?

◆전용태> 네. 활자는 납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철보다 무릅니다. 반복해서 인쇄를 하다보면 활자가 닳기도 하고 글자가 굵어지기도 합니다. 많이 찍게 되면 활자를 다시 만들어서 작업해야합니다.

◇박윤경> 그래서 이번에 작업하실 때 납을 굉장히 많이 쓰셨다고 들었어요.

◆전용태> 이번에 납을 10톤 정도 사들인 것 같아요. 글자를 크기별로 만들어야 해서 본문에 쓰이는 글자가 5호 정도입니다. 지금 컴퓨터의 바탕체 10포인트 정도랑 비슷합니다. 그런데 하나의 책이 나오려면 한 글자마다 1호부터 10호까지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납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박윤경> 납을 10톤이나 사용하신 거면 자금도 많이 들어갔을 것 같아요.

◆전용태> 네. 저희는 사립박물관이다 보니까 개인이 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좀 무리했지만 이번 기회에 책도 많이 사주시고 그러면 앞으로도 이런 책을 만드는 일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싶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책 자체가 많이 팔리지 않아서 아쉬운 마음입니다.

◇박윤경> 그래서 그런지, 책 가격이 시중 책들보다 좀 비싸잖아요.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 가격보다 더 받으셔야 할 것 같아요.

◆전용태> 순수한 원가를 따지자면 책 한 권당 10만원 정도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하지만 저희가 영리를 추구하는 목적은 아니었고, 이런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한테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러려면 적정한 가격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서 가격을 책정했습니다.

◇박윤경> 저는 그렇게 옛날 추억을 간직한 사람은 아니지만, 이 책을 받았을 때 종이의 느낌과 냄새에서 나오는 느낌들이 그 향수를 불러일으키더라고요. 그런 느낌이 이 책을 소장품으로 갖고 있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전용태> 맞습니다. 작년에는 시집이 나왔었는데요. 그때부터 작품을 소장하시고 앞으로 나올 작품들도 기다리고 계시는 분들이 꽤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저희에게 큰 용기가 되고 있습니다.

책과인쇄박물관 전용태 관장

 



◇박윤경> 이 책을 만들었던 기계나 자료들이 박물관에 있는 거잖아요? 박물관 이야기를 좀 해볼게요. '책과인쇄박물관'을 2015년에 여셨어요. 여러 박물관 중에 인쇄에 대한 박물관을 여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전용태> 사실 제가 평생을 신문사와 책을 만드는 일에 종사를 했거든요. 그래서 은퇴시점에 제가 잘 아는 분야를 많은 분들과 공유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오랫동안 사라진 기계를 모으고 책들도 모으고 해서 춘천에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전에 춘천에 연고는 없었지만 춘천을 워낙 좋아하고 서울과도 오고가기 편해서요. 지금은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고 찾아주셔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박윤경> 저는 책과인쇄박물관이 춘천에 있다고 하지만 가보진 않았는데요, 어린아이들도 좋아할 수 있도록 신경을 많이 쓰셨더라고요.

◆전용태> 유치원 아이들도 많이 오고 좋아합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기계 작동하는 것도 보여주고 실제로 해보기도 하면 좋아하더라고요. 어떤 아이는 나만 보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그 다음 주에 자기 부모님과 함께 다시 왔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정말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이게 많은 분들에게 좋은 추억과 또 하나의 배울 거리로 느껴졌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박윤경> 박물관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전용태> 다양한 인쇄기계들이 있고 책도 교과서에서 볼 수 있었던 옛날 책들의 진본, 희귀본을 볼 수 있습니다. 책뿐만 아니라 옛날 신문, 잡지, 교과서도 볼 수 있습니다.

◇박윤경> 앞으로 준비하시고 계신 것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전용태> 저희는 이 책이 매년 지속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는 마음입니다. 시간과 비용은 많이 걸리겠지만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오셔서 책을 만드는 과정과 책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박윤경> 제가 관장님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다보니 이런 글이 있더라고요 "이런 책이 저자의 땀과 인쇄공의 영혼이 담겨있는 책이다" 정말 책 한권으로 이 안에 얼마나 많은 노력들이 담겨져 있는지 느낄 수 있어서 오늘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전용태> 책이라고 하면 대부분 저자를 잘 기억합니다. 저자도 물론 중요하지만 책을 만든 수많은 인쇄공들도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해서 저희 박물관 입구에 써놨습니다.

◇박윤경> 그리고 바라기는, 이번에 함께 작업하신 분들이 80세 이렇게 연세가 많다고 들었는데요. 우리의 이 소중하고 훌륭한 활판인쇄기술을 젊은이들도 이어갈 수 있다면, 그런 분들이 이 곳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전용태> 저희도 그 부분이 걱정됩니다. 인쇄장인들이 연세가 많으시다보니까 지금도 힘드십니다. 젊은이들이 기술을 이어받아야 하는데 경제적인 논리에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이 현실이어서요. 가족이라도 젊은이들이 기술을 이어 받으면 좋겠지만 개인의 삶이 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노력할 것입니다.

◇박윤경> 저희도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용태> 네. 고맙습니다.

◇박윤경> 지금까지 책과인쇄박물관 전용태 관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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