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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하고, 부수고" 이주여성 보호기관 찾아온 '폭력남편'들



사건/사고

    "협박하고, 부수고" 이주여성 보호기관 찾아온 '폭력남편'들

    • 2019-07-12 04:05

    폭력 못 견딘 아내, 보호시설 입소하자…"어디로 빼돌렸냐" 호통
    "칼로 해치겠다" 협박부터 '망치 행패'까지…상담사 '위험 노출'
    "폭력 남편 찾아오면 유리 깔개 없는 책상에서 종이컵 응대"
    전문가들 "도 넘은 폭력…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적 시선'부터 바꿔야"
    다문화가정 '부부교육' 이뤄지지만…"정작 남편 참여율 저조"

    (사진=자료사진)

     

    '베트남 아내 폭행 영상'이 공개되면서 다문화가정 내 폭력 문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이주여성을 지원·보호하는 관계 기관마저 '폭력 남편'들의 폭언과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를 넘은 '폭력 남편'들의 행태는 이주여성을 일종의 '소유물'로 바라보는 왜곡된 인식과도 맞닿아 있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한 최소한의 관련 기관 교육 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주여성 교육과 인권 보호 활동을 하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강혜숙 공동대표에 따르면 수년 전 이 센터에서는 폭력 피해를 입은 베트남 아내의 한국인 남편이 "칼로 배를 쑤시겠다"며 직원들에게 위협을 가한 일도 있었다. 또 다른 가해 남편은 망치로 문짝과 책상 유리, 컴퓨터 등 집기를 깨부수기도 했다.

    강 대표는 "가해 남성들을 맞이할 때는 뭐든 자칫하면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유리 깔개가 없는 책상에서 종이컵을 내놓는다"며 "(대처 경험이 없는) 주니어 직원들은 일부러 야근을 안 시킨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다문화가정지원센터의 방문지도사로 일하면서 각 가정에 언어, 생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A(47)씨도 "이 일을 한 지 10년도 넘었지만, 가끔 할 수 있는 게 없어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적 가정' 가운데서도 10~20% 정도는 우리 같은 지원센터가 아닌 수사기관이 통제해야할 곳인데, 이런 곳은 센터 상담을 연결해주는 것도 쉽지 않다"며 "네가 뭔데 끼어드느냐"며 욕설을 해대면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제주의 한 상담 기관 관계자 B(42)씨 역시 비슷한 고충을 털어놨다. 폭력을 견디다 못해 보호시설인 '쉼터'에 들어간 아내를 찾겠다며 기관에 방문한 한 남편은 대뜸 "어디로 빼돌렸냐"며 호통을 치는가 하면, 경찰 등 온갖 기관에 "왜 아내 말만 듣고 조치를 하냐"며 민원을 넣는 남편도 있었다고 한다.

    B씨는 이런 설명을 하면서도 "자기 얘기인 줄 다 알아채고 또 협박을 할까봐 이런 말을 하는 것도 무섭다"고 했다.

    이주여성인 방문지도사나 상담사의 고충도 만만치 않다. 몽골 국적 상담원 C(44)씨는 이혼소송 중 보호 쉼터에 입소한 아내를 만나게 해 달라는 한 남편의 전화가 한 달 가까이 이어졌고, 수화기 너머로 "'너희'는 우리를 무조건 이혼시킬 거냐"는 반말을 들어야 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당신네 나라 사람이니까 아내 편만 드는 거 아니냐", "같은 이주여성인 당신들한테는 말하기 싫다"는 남편들의 말을 듣고 무시를 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다문화가정을 돕는 인력에까지 번져가는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결혼이주여성에 대한 폭력적 문화을 개선하는 노력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진단이 제기된다. '돈을 주면 결혼할 수 있다'는 인식 등 이주여성을 소유물로 취급하는 사회 풍조를 바꾸는 한편, 가정폭력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허오영숙 상임대표는 "이주여성들을 주체적이고 자립적인 존재로 여기는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며 "여성폭력에 대한 가벼운 처벌이 이주여성에게도 적용되는 만큼, 처벌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배우자의 정착을 위해 헌신적으로 돕는 남편분들이 많고, 최근에는 상업적 중개업에 의한 국제결혼의 수도 상당히 줄었다"면서 "이번 사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의에 나서는 여성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고무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진단과 맞물려 지원 기관에서는 다문화가정 부부를 상대로 상이한 문화를 이해하는 법, 가정폭력의 개념과 대처 등을 알려주는 '부부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교육에 정작 한국인 남편의 참여율은 저조하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의 한 다문화가정지원센터 관계자는 "상호 이해를 위한 부부 동반 상담에도 이주여성 홀로 참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제주의 한 상담소에서 일하는 B씨 역시 "센터에서 여는 가정폭력 교육에도 남성의 비율은 전체의 10% 남짓"이라며 "정작 교육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들은 아예 오지도 않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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