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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문화 유목민(Culture Nomad)의 삶'을 고집하다…정두환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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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에서 '문화 유목민(Culture Nomad)의 삶'을 고집하다…정두환 지휘자

    36년 지역 음악가로 살아온 외길…"음악은 공유하는 것"
    음악과 철학, 역사, 사회과학을 통섭하는 문화 유목민이 필요한 시대

    정두환 지휘자

     

    벚꽃 잎이 흩날리기 시작하던 4월 초 봄 날 오후, 부산 경남공업고등학교 관악부 연습실에서 인터뷰를 위해 만나기로 한 정두환 지휘자는 이제 막 관악부에 들어온 신입 학생들과 한창 연주 연습을 하고 있었다.

    관악부 연습을 마치고 학생들의 악기 연습 소리를 피해 작은 개인 악기 연습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정두환 지휘자에게 기자는 대뜸 '음악'은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36년 간 음악가의 외길을 걸어온 정 지휘자는 "음악은 모두 함께 공유하는 것, 사람들이 같이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는 나름의 철학을 얘기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삶은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이후 줄곧 대학 강단과 고등학교에서 강의와 연주, 지휘자로 활동을 하면서 지역 음악인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았다.

    또 1994년 부산MBC 클래식 고정 게스트로 음악 방송을 한 것을 계기로 부산KBS, 부산CBS, KNN 등 지역 방송국의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나 게스트로 활동하면서 지역민과 함께 호흡하는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

    부산에서 음악인으로 살기가 어땠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정 지휘자는 섭섭함을 감추지 않았다.

    "지역이 지역에서 자라온 음악가, 지역 인재를 키우지 않고 외면한다. 또 잘 인정도 해주지 않는다. 더 어려운 것은 지역 기업이나 기관의 메세나 역량이 다른 지역에 비해 훨씬 못 미친다"

    그런데도 왜 부산을 떠나지 않았냐는 물음에는 엉뚱하게도 "여전히 할 일이 많아서다. 30년 전 부터 듣고 있는 말이지만 부산지역이 문화의 불모지라고 하는데 불모지는 여전히 개척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일할 게 많다"고 말하며 '끝없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여줬다.

    지난 2003년, 부산에서 최초로 지역 방송오케스트라인 '부산CBS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만든데 이어 을숙도 교향악단을 조직해 운영했다가 사비를 털어 넣으며 생고생을 했는데도 그는 그 때가 행복했었다고 회상한다.

    "음악을 통해 최소한 수입으로 생활할 수만 있다면 사비를 밀어 넣고 손해보더라도 많은 사람과 음악을 즐기고 나눌 수 있었기 때문에 행복했다."

    서양에서는 교향악단이 지역 라디오 방송이 주도해왔다. 그래서 도이치 방송교향악단이나 스위스 방송교향악단이 그 지역의 음악인를 발굴하고 연주, 공연하는 마당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었다. 그래서 부산지역에서도 방송교향악단이 우리 지역의 음악 수준을 높이는 중심 역할을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정 지휘자는 2003년에 구성돼 몇 년 간 활동을 하다 중단했던 '부산CBS 방송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2018년 10월 재출범 시키고, CBS 가을음악회를 성황리에 마치며 방송을 통한 지역 교향악단의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올들어서는 '부산CBS 방송 윈드 오케스트라'를 새롭게 구성하고 4월 17일 부산시민회관대강당에서 열리는 < 3.1운동 100주년 하나되는 대한민국> 음악회에서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윈드 오케스트라는 실내.외에서 연주활동이 모두 가능하기에 부산에서 목관, 금관악기가 주를 이루는 윈드 오케스트라가 새롭게 출범하고 활성화 되면, 더 많은 지역 연주가들에게 활로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제696회 화요음악강좌가 4월 9일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관에서 열렸다(사진=부산CBS)

     


    그는 17년 전부터 스스로 '문화 유목민'이라고 자처하며 활동해왔다.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인류는 1만 2천년 전 농업혁명으로 정착하는 순간 삶의 패턴이 바뀌어 개인의 욕망은 소유의 극대화, 공유의 극소화로 치달았지만 유목민은 정착하지 않고 필요에 따라 이동하며 소유를 최소화하고 공유를 최대화는 사고방식의 삶을 유지했다"

    "또 문화 유목민의 최대 장점은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인데 사고를 통해 내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시대를 아울러 '우리 것을 찾는 유연함'도 보여 주고 있다. 미국식, 서양화된 문화.예술이 지배적인 지역 문화판에서 맹종하지 않고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도 유목민의 사고이다"

    그래서 그는 2000년 3월 부터 부산문화회관 음악감상실과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관에서 '화요음악강좌'를 열었는데 지금까지 무려 696회(4월 9일)째 매주 개최하면서 부산의 음악과 미술, 영화, 연극, 뮤지컬, 건축, 인문학, 철학, 미학 등을 모두 아우르는 이른바 문화·예술을 통섭하는 '문화 유목민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오는 5월 7일 화요음악회 700회 특집 강좌에서는 정두환의 음악이야기를 토크 콘서트 형식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그의 관심이 음악 활동에만 국한하지 않기에 다양한 문화·예술의 통섭을 위한 책읽기, 독서는 또 다른 삶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책 읽기를 통해 문화.예술판을 폭넓게 읽는 그의 내공은 부산일보와 국제신문 등 지역 신문과 음악저널 등에서 지면 칼럼을 통해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이런 지속적이고 폭 넓은 문화 유목민으로서 활동은 더 좋은 음악을 위한 발걸음이었다.

    "독서를 통해 사람을 배우고 알아야 더 좋은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 바흐나 베토벤 등 특정 음악가의 음악을 연주할 때는 그 음악가의 음악 뿐 아니라 전체 삶과 시대적 배경 등을 공부하고 알아야 본질을 파악하고 더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

    정 지휘자는 언제 보람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음악을 했기에 행복했고 아직도 음악을 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작곡가와 연주자, 관객, 공간이 함께 어우러져 공연하는 것에 늘 보람을 느낀다"고 말해 천상 타고난 음악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마친 기자가 관악대 연습실 한 켠에 마련된 개인 사무실에서 인사를 하고 나오다 책상 컴퓨터 옆에 붙여 놓은 '독립불구(獨立不灈) 돈세무민(遯世無悶)'이라는 한자성어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어보자 그는 '홀로 서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과 멀리했어도 근심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기자에게는 정두환 지휘자가 지역의 문화 유목민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며 '지역 음악가의 고독한 삶'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각오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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