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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장소, 지워진 기억…속초 '대포항'을 가다



영동

    역사의 장소, 지워진 기억…속초 '대포항'을 가다

    1909년 2월 개항한 대포항, 동해안에서 규모 가장 큰 항·포구
    독립선언서 숨겨 대포항 들어온 조화벽 지사…만세운동 도화선
    일본인 집단거주지…민중들, 주재소 몰려가 독립 만세 외치기도
    1920년대 대포 노동조합과 어민조합 만들어 대중운동도 '활발'

    1918년 9월 24일 일본인이 발간한 부산일보에 실린 대포항. (사진자료=국립중앙도서관)

     

    지금은 관광지로 더 유명한 강원 속초 대포항은 100년 전 역사의 흔적이 남아있지 않다.

    대포항이 기미년(1919년) 만세운동의 거점 지역이자 20년대 대중운동의 광장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1919년 3월 만세운동이 벌어지자 개성 호수돈여학교에서 공부하던 조화벽 지사가 독립선언서 필사본을 버선 속에 숨겨 양양으로 가지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대포항이 개항한 덕분이다.

    대포항은 기미 만세 독립운동이 벌어진 1919년보다 10년 전인 1909년 2월 개항했다. 당시는 육로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대부분 사람은 뱃길을 주로 이용했다.

    대포항은 37년 동해 북부선이 생기기 전까지 가장 유력한 교통편이었다.

    1909년 2월 7일 대한매일신보 2면3단에 실린 것으로 동해선로(대포~원산) 개시에 대한 내용이 담겼다. (사진자료=국립중앙도서관)

     

    속초문화원 자료에 따르면 대포항은 일제시대 동해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항·포구로, 다양한 문화가 들어오는 문호 역할을 담당했다. 일제시대를 비롯해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발행된 우리나라 지도에는 속초는 표기돼 있지 않지만, 대포항은 표시돼 있었다고 전해진다.

    조화벽 지사 역시 육로가 아닌 뱃길을 이용해 대포항으로 들어왔고, 이곳에서 일본경찰들에게 붙잡혔음에도 기지를 발휘해 검문소를 뚫고 들어온다.

    만약 대포항이 없었다면 독립선언서 전달은 더 늦어져 조화벽 지사를 주축으로 하는 기독교 세력은 힘을 모으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양양지역은 유림과 기독교 세력, 그리고 청년과 농민이 다 함께 규합하면서 강원 지역 중 가장 치열하게 만세운동이 진행된 곳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대포항은 교통이 발달한 덕분에 식민지하에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집단 거주지였다.

    일본 주재소(일제 당시 순사가 머무르며 사무를 맡아보던 경찰의 최일선 기관)도 대포항 근처에 있어 만세운동이 벌어진 기간 군민들은 물치 주재소로 몰려가 일본 경찰들에게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맞서기도 했다.

    2019년 현재 속초 대포항. (사진=유선희 기자)

     

    만세운동 이후에도 대포항에서는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대중운동이 강하게 일어난다. 만세운동에 함께 목소리를 냈던 젊은 청년들이 대중운동에 다수 참여한 까닭이다.

    속초향토문화원 엄경선 연구위원은 "일제에 의해 만세운동이 실패로 돌아갔지만 기층 민중들, 특히 청년들에 의해 대중운동이 일어나게 된다"며 "1927년 무렵 거의 비슷한 시기에 대포 노동조합과 어민조합 등 두 개 노동조합이 설립됐다"고 설명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일본은 저임금으로 어민들을 착취·수탈하며 그 체제를 유지했다. 결국 민중들은 일제의 경제정책에 항거하며 반발에 나섰다. 20년대 말부터 30년대 초반까지 신문에 기록된 파업만 4차례다. 전문가들은 공식적인 기록 외에도 파업이 더 진행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모든 문물이 폭주한 대포항. 하지만 대포항은 뒤쪽으로 높은 산이 있어 지형적으로 더는 도시를 팽창하기 힘들어진다. 이에 30년 말부터 건설업자들은 속초항으로 눈을 돌린다.

    2019년 속초 대포항은 음식점들만 즐비해 있을 뿐 100년 전 '그날'의 역사를 되새길 만한 기록은 없다. (사진=유선희 기자)

     

    속초항 개발공사 1기 작업이 37년에 마무리되면서 대포항은 점점 한적한 포구로 전락한다. 현재 대포항은 관광지로 알려져 있을 뿐 당시 역사를 조명할 수 있는 기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속초향토문화원 김인섭 사무국장은 "대포항은 단순히 관광중심지가 아니라 양양만세운동의 핵심이자 도화선 역할을 담당한 곳인데 현재 당시의 의미를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깝다"며 "개항 110주년과 만세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대포항을 '기억의 장소'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어 "구체적으로 당시 일제강점기 주재소 자리인 옛 대포항개발사업소 인근에 대포만세운동의 의미를 알리를 표석을 건립하거나 대포의 역사와 변천사를 알릴 수 있는 전시관을 세워 '그날'의 의미를 되새겼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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