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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징용 배상의무 없다? '빼박' 증거는 차고 넘쳐



국방/외교

    日, 징용 배상의무 없다? '빼박' 증거는 차고 넘쳐

    [팩트체크]강제징용 판결이 청구권협정을 뒤엎는 것이라고?


    대법원이 1940년대 일제에 강제징용 피해를 당한 4명에 대해 일본 기업이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린 30일 피해자 이춘식(94)씨가 손을 들어 기뻐하며 서울 대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번 판결은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8개월 만이자 재상고심이 시작된 지 5년 2개월만의 판결이다. (사진=박종민 기자)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 판결에 대한 일본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일본 전현직 관료들은 이번 판결이 한일 청구권 협정을 뒤집는 것이라며 정면 대응하고 있다.

    일본 외무상을 역임했던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의원은 지난달 31일 “청구권 협정을 뒤엎는 것은 국제 상식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국은 국가로서의 형체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했고, 고노 외무상은 4일 "한일청구권 협정을 토대로 징용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한국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은 1990년대까지는 국가간의 청구권 협정과는 별개로 개인청구권은 존재한다는 입장이었다. 다름아닌 일본과 소련 간 체결됐던 공동선언에서다.

    일본은 과거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일본인 피해자의 소련에 대한 보상 청구권과 관련해 국가각 협정과 개인 청구권은 별개의 것으로 봤다.

    지난 1991년 3월, 다카시마 유슈 당시 외무대신 관방심의관은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일본인 피해자가 소련에 대한 청구권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의에, “일본-소련 공동 선언에서 청구권 포기는 국가가 자동적으로 갖는 것으로 생각되는 ‘외교 보호권’의 포기”라며 “일본 국민 개인이 소련이나 소련 국민에 대한 청구권까지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의 말에서 일본과 소련을 한국과 일본으로 각각 바꾸면, 우리 정부가 주장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만큼 우리와 비슷한 조약 해석이다.

    일본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하 한일협정) 체결 당시부터 '협정 체결 후에도 개인 청구권은 유효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일본 외무성의 내부 문서에서 확인됐다.평화조약에서 국민의 재산 및 청구권 포기의 법률적 의미'의 일본 정부 비밀문서. 일본 정부가 최근 비밀지정을 해제한 문서(붉은선 1). 일본 정부가 1965년 4월 6일(쇼와 40년 4월6일) 작성한 비밀 문서(붉은선 2). '개인이 상대국의 국내법상 청구권을 갖는지 여부와는 관계 없다'(붉은선 3). '보상청구권을 포기하는 경우 이 청구권은 국가의 청구권인 것으로 생각된다'(붉은선 4). (사진 출처=연합뉴스 제공)

     

    또 1965년 한일협정 전후에 작성한 외무성 내부 문서에서 ‘외교보호권’과 ‘개인청구권’의 개념을 법적으로 구분했던 사실도 드러나기도 했다.

    지난 2010년 3월 “한일청구권협정 2조의 의미는 국제법상 국가에 인정된 고유한 권리인 외교보호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약속이고, 국민의 재산(개인청구권)으로 국가의 채무를 충당한 것은 아니다”고 일본 외무성이 밝혔던 사실이 국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 8월 27일 일본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야나이 순지(柳井俊二) 당시 외무성 조약국장이 "청구권협정은 한일 양국이 국가가 가지는 외교보호권을 서로 포기한 것이지 개인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로 소멸시킨 것이 아니다"라고 답한 내용이 담긴 참의원 회의록. (사진 출처=연합뉴스 제공)

     

    이와 함께 지난 1991년 8월, 당시 야나이 순지(柳井俊二)외무성 조약국장이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 그 자체를 국내법적 의미에서 소멸시킨 것은 아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 밖에 1994년에는 일본 외무성 조약국 법규과장이 ‘외무성 조사 월보’에서 “한일청구권 협정 등의 조약에서 규정하는 ‘국가가 국민의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의미는 개인이 갖는 국내법상의 개인 청구권 자체를 포기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히기도 했다.

    청구권협정의 대일청구요강은 제 5항 중 ‘피징용 한국인의 미수금, 보상금’을 통해 피징용자에 대한 체불임금과 보상금을 지급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일본은 이제서야 이를 근거로 “해당 청구권은 1965년 청구권 협정을 통해 모두 해결된 사안”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번 판결에서 청구권협정이 일본의 식민지배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 4조에 근거하여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 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하여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았다.

    “불법적이고 노예적인 강제 동원 위자료 청구권이 협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협정 이후 양국의 문헌에도 “식민지배 배상 청구가 아니라, 양국 간의 재정적 민사적 채권, 채무 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협약”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해당 협정은 강제 노역 등 일본의 불법 행위에 대한 배상을 포함하지 않고 있으며, 일제의 국민징용령을 전제로 한 ‘징용’으로 발생한 미지급 임금, 보상금 등에 대한 협정으로 볼 수 있다. 식민지배를 ‘합법’으로 규정한 테두리 내에서 이뤄진 협정이라는 거다.

    때문에 국민징용령의 규범적 효력 자체에서 벗어난 불법적 ‘강제노역’을 원인으로 한 위자료 성격의 배상금은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김창록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문제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것은 '일제에 의한 35년간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대립"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강제동원과 징용은 법적으로 분명 다르다. 일본의 '징용공'이라는 용어는 일제강점기의 국가총동원법이나 징용령이 합법적이었음을 전제한다"며 "우리 대법원에서는 이들이 대한민국 헌법정신에 반하기에 효력을 인정할 수 없고, 그런 불법행위(강제동원)에 대해서는 65년 협정에서 해결한 적이 없다는 입장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문제는 65년 협정 당시에는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덮었던 사항인데, 법정에서 구체적인 판결이 나고 강제집행이 될 수 있는 사안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서야 본격 폭발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대법원의 판결은 강제징용 피해자의 청구권이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애초에 배제되어 있었다는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

    때문에 일본의 ‘이번 판결은 청구권 협정을 뒤엎는 것’이라는 주장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일본은 오랜 시간 정부간 외교협정은 외교적 보호권의 포기에 불과하고,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별개로 보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때문에 이제 와서 ‘국제법상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주장을 펴는 것 또한 설득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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