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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 선물은요?" 끝내 못 벗은 폭염의 유광점퍼



야구

    "감독님, 선물은요?" 끝내 못 벗은 폭염의 유광점퍼

    '다음에는 꼭 벗고 말 거야' LG 열혈 팬인 강성화(왼쪽), 김지헌 씨가 2일 두산과 경기에서 LG의 승리를 기원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역대 최악의 폭염이 몰아친 최근 3일 내내 LG 가을야구의 상징이자 동복인 유광점퍼를 입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응원했다. 강 씨의 이마에는 쿨링파스가 붙여져 있다.(잠실=노컷뉴스)

     

    '2018 신한은행 마이카 KBO 리그' 두산-LG의 시즌 11차전이 열린 2일 잠실구장. 이날 경기 전 류중일 LG 감독은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팬들에 대한 미안함을 드러냈다.

    이번 주중 시리즈부터 유광 점퍼를 입고 응원을 펼치고 있는 두 남성 팬들에게다. 이 팬들은 기상 관측 이래 111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폭염이 기승을 부린 전날에도 늦가을, 겨울에나 입는 유광점퍼를 입고 땀을 비오듯 흘리며 열성적인 응원을 펼쳤다. '유광을 벗기려거든 두산전 첫승부터'라는 문구도 관중석 테이블에 내걸었다.

    LG는 올 시즌 두산과 대결에서 10번 모두 패하는 등 지난해부터 상대전 12연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실 라이벌'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 이에 팬들도 두산을 이겨야만 점퍼를 벗겠다며 필사의 연패 탈출 의지를 보이고 나선 것이다.

    류 감독은 "어젯밤 경기 후 지인을 만났는데 유광 점퍼를 입은 팬들이 중계 화면에 잡힌 모습을 보여주더라"면서 "그렇지 않아도 두산에 연패를 당해 미안한데, 정말 미안해 죽겠더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밝혔다. 이어 "이 더위에 점퍼까지 입으면 얼마나 고생이겠느냐"면서 "나중에 선물이라도 드려야겠다"고 말했다.

    취재진 사이에서는 "가장 좋은 선물은 오늘 이겨서 유광점퍼를 벗겨주면 것"이라는 말이 나왔다. 이에 류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승리 의지를 다졌다.

    이날도 열성 LG 팬들은 유광점퍼를 입고 LG 응원석에 자리를 잡았다. 김지헌(31), 강성화(32) 씨다. 역시 땀을 비오듯 흘리는 가운데 강 씨는 이마에 파스형 아이스팩까지 붙였다. "3회가 지나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붙였다"는 게 목이 쉰 강 씨의 설명이다.

    '오늘은 벗을까' 군대 훈련소 동기인 두산 팬 이영동 씨(왼쪽부터)와 LG 팬 강성화, 김지헌 씨가 2일 두 팀의 시즌 11번째 맞대결을 관전하고 있다. 이 씨가 다소 여유로운 표정인 반면 둘의 얼굴은 자못 심각하다.(잠실=노컷뉴스)

     

    살인적인 찜통 더위에 유광점퍼까지 입는 고생을 사서 하는 이유는 뭘까. 역시 뜨거운 팬심이다. 김 씨는 "그동안 LG가 두산에 너무 많이 졌다"면서 "그래서 이번만큼은 이겼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다 선수들도 힘든데 우리도 그 힘겨움을 함께 하자는 생각으로 유광점퍼를 입고 나섰다"고 말했다. 강 씨는 "어차피 유광점퍼를 입든 안 입든 더운 것은 마찬가지"라면서 "LG가 이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결코 선수들을 비난하자는 뜻이 아니다. 김 씨는 "열심히 하는 선수들을 탓하자는 게 아니다"면서 "팬들의 간절한 뜻을 선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진심을 전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옆에는 두산 유니폼을 입은 팬이 함께 관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영동 씨(31)로 이들과는 ROTC 군대 동기들이다. 김 씨가 "4개월 훈련을 하는 동안 가까워졌고, 사회에 나와서도 야구장 응원을 오고 있다"고 설명하는 동안에도 이 씨는 두산 선수가 안타를 때려내자 일어서서 환호성을 질렀다.

    이들 3명은 모두 골수 팬들이다. 김 씨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모태 LG 팬"이라고 했고, 강 씨는 "부모님이 해태 팬이셨지만 나는 (LG가 두 번째로 우승한) 1994년부터 쌍둥이 군단 팬이 됐다"고 말했다. 여유로운 표정의 이 씨는 "20살 때부터 두산 팬"이라고 웃었다. 당시 두산은 SK와 함께 스피드로 한국 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꾸던 시기였다.

    류 감독의 사과와 성의를 전해들은 팬들의 생각은 어떨까. 강 씨는 "이미 기사를 통해서 류 감독님의 말을 알고 있다"고 했다. 김 씨는 "감독님께서 선물을 해주시겠다는 마음은 고맙다"면서 "가장 크고 좋은 선물은 오늘 이겨서 우리들의 유광점퍼를 벗게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다음엔 두산 팬 이영동 씨(왼쪽부터)와 LG 팬 강성화, 김지헌 씨가 2일 두 팀의 시즌 11번째 맞대결에서 각 팀의 선전을 기원하고 있다.(잠실=노컷뉴스)

     

    이들은 유광점퍼 안에 무엇을 입고 있을까. 경기 전 류 감독과 취재진 사이에서는 "아마 안에 쿨링팩이 있지 않을까"라는 추측도 나왔다. 너무 덥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의 유광점퍼 안에는 LG 유니폼이 있었다. 둘은 "유니폼과 목에 두른 수건으로 버틴다"고 말했다.

    테이블 위에 이들이 내건 문구는 "오늘로 끝낼래? 9월로 넘길래?"였다. 두산 팬 친구인 이 씨도 "곰돌이들아 내 친구들 좀 살려줘"라는 문구를 걸었다. 라이벌 대결에서 을의 간절함과 가진 자의 여유가 그대로 묻어나는 표현이었다.

    과연 이들의 마음이 그라운드에도 통했을까. 그러나 이들은 끝내 점퍼를 벗지 못했다. 삼복더위에 고행을 택한 팬들의 간절한 염원에도 LG는 이날 5 대 6 패배를 안았다. 올 시즌 LG는 두산전 11전 전패에 지난해부터 13연패 수렁이다.

    경기 전 김태형 두산 감독은 "유광점퍼 입은 LG 팬들 구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농담섞인 취재진의 말에 "야구가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두산 팬 이 씨마저 LG의 승리를 바랐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덕분에 이들 팬은 다음 잘실 맞수 대결에도 유광점퍼를 입고 오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음 대결은 오는 9월 20, 21일이다. 더위는 이미 물러가 스산한 바람이 불어올 때다.

    경기 후 두 LG 팬은 허탈한 표정으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4 대 6으로 뒤진 8회 이형종이 추격의 솔로포를 날리고 9회 1사 1루 기회를 맞았지만 대타 김재율이 삼진 아웃되고 이천웅도 도루 아웃되면서 경기가 끝났다. 탈진한 모습의 둘은 "정말 아쉽다"는 말을 반복했다.

    오는 9월에도 잠실을 찾을 예정이다. 김 씨는 "다음 경기는 LG 홈 경기라 좌석을 예매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꼭 오겠다"고 말했다. 두산 팬인 이 씨는 "그때는 아마 자리가 많을 것"이라고 놀리면서도 "없으면 두산 쪽으로 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과연 9월에는 이들이 유광점퍼를 벗는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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