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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에서]트럼프는 강경파도 대화파도 아니다



칼럼

    [워싱턴에서]트럼프는 강경파도 대화파도 아니다

    • 2018-01-29 07:09
    '맥매스터-폼페오' vs '틸러슨-매티스'
    트럼프는 상황에 따라 취사선택…한 쪽의 목소리만 들으면 혼란만 가중될 뿐

    마이크 폼페오 미 CIA 국장이 23일(현지시간) 미국기업연구소(AEI)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장규석 워싱턴 특파원)

     

    얼마 전 마이크 폼페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근거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있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기업연구소(AEI)가 주최한 강연에서였다.

    그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거의 매일 정보 브리핑을 한다고 강조했다. 자신이 현 정권의 실세 중의 실세임을 시사했다. 당당하고 여유있는 모습이 강연 내내 묻어났다.

    ◇ 남북 대화는 안중에 없었다

    이날 강연에서는 북한과 관련한 언급이 여러차례 있었고, 청중들이 던진 질문도 대부분 북한과 관련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목할만한 점은 남북 대화나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등 남북 간 긴장완화 분위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안중에도 없었다. 폼페오 국장 그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이 급속도로 진전됐고, 이제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미 본토를 공격할 시점이 '몇 달 남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록 '몇 달 남지 않았다'는 말이 숫자적인 의미는 아니고 '1년 뒤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오해를 경계하는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날 강연과 이어진 토론, 질의응답은 북한의 도발과 이에 대한 선제군사공격 가능성에 집중됐다.

    폼페오 국장은 "김정은은 합리적 인물"이라고 평가하면서, "(김정은이 생각할 수 있는) 논리적 다음단계는 동시다발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능력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핵개발의 이면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체제 보전을 넘어 한국을 적화 통일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우려도 나타냈다.

    마이크 폼페오 미 CIA국장(왼쪽)이 23일(현지시간) 미국기업연구소(AEI) 초청 강연에 참석해 토론하고 있다. (사진=장규석 워싱턴 특파원)

     

    누군가가 퍼뜩 생각났다. 남북 고위급 회담을 앞두고 비슷한 발언을 내놓은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그는 지난 3일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개발의 목적은 한반도에서의 미군 축출과 적화 통일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가감없이 드러낸 바 있다.

    폼페오 국장과 맥매스터 보좌관의 연결고리는 이날 강연에서 찾을 수 있었다. 폼페오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보 브리핑을 할 때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과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DNI)이 참석하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도 출장계획이 없으면 브리핑에 온다"고 말했다.

    이른바 '대북강경파'로 분류되는 인물들이 백악관에서 거의 매일 열리다시피하는 정보 브리핑에 포진해 있는 셈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백악관 내부에서 북한이 역공을 하지 않는 수준에서 핵과 미사일 시설을 외과수술식으로 정밀타격하자는 이른바 '코피작전(bloody nose)'이 검토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북한을 바라보는 또 다른 조합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남북 대화 100%지지', '남북 대화가 평창 올림픽을 넘어 진전되기를 기대한다'는 메시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이것은 틸러슨-매티스 두 장관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자신의 대북 접근법을 '평화적 압박 전략(peaceful pressure campaign)'이라고 부르고 있다. 군사행동을 가하지 않고도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를 통해 북한이 핵포기를 위한 대화에 두 손 들고 나오도록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해 3월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담 전 미소를 짓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제공)

     

    그리고 틸러슨 장관의 평화적 압박 전략은 이것이 실패했을 경우에는 군사 옵션이 실행될 것이라는 최후의 장치로 뒷받침되고 있다. 이 장치는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의 몫이다.

    이 두 사람은 최근 북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밴쿠버 외교장관 회의에도 동석, 이른바 좋은 경찰(굿캅)과 나쁜 경찰(배드캅)의 역할을 분담하는 등 환상의 케미를 보여줬다.

    틸러슨 장관은 "첫 폭탄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외교적 노력을 지속하겠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북한이 일정기간 도발을 중단하고, 대화 의사를 표명해온다면 일단 탐색적 대화는 가능하다고 지속적으로 북한에 신호를 보내고 있다.

    남북 대화와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이런 측면에서 북미 대화를 시작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제로 틸러슨 장관은 지난 17일 스탠포드대 강연에서 북한의 최근 노력이 그간의 어색함을 깨기 위한 '아이스 브레이킹(break the ice)'이라고 평가했다. 상황이 더 진전될 수 있다는 기대가 묻어난다.

    ◇ 트럼프 행정부에 하나의 입장이란 없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상황에 따라 '맥매스터-폼페오' 조합과 '틸러슨-매티스' 조합을 전략적으로 취사선택하고 있다.

    대북 압박을 위해 중국의 협조를 끌어낼 필요가 있을 때는 "북한과의 대화는 시간낭비"라고 말하다가도, 남북 대화로 긴장완화 국면이 찾아오자 "남북대화를 100% 지지한다"며 태세를 전환했다.

    (사진=백악관 제공)

     

    트럼프 대통령은 태세 전환이 매우 빠르다. 앨라배마 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성추문에 휩싸인 공화당 로이 무어 후보를 지지했다가도 그가 낙선하자 '내가 로이 무어는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바로 표변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불사하는 인물이다.

    평창 올림픽 이후 북한이 도발을 감행하면 바로 "봐라 내가 북한과의 대화는 시간낭비라 하지 않았느냐"고 돌변할 것은 뻔한 수순이다.

    현재 남북 해빙 무드가 조성되는 시점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트럼프 대통령은 2개의 조합을 모두 운용하고 있으며, 미국에서 나오는 어느 하나의 목소리가 트럼프 행정부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단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보수적 시각에서는 북한의 핵개발이 적화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맥매스터-폼페오' 조합이야 말로 미국의 진의라고 생각할 것이고, 진보적 시각에서는 폭탄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외교적 노력을 계속한다는 '틸러슨-매티스' 조합이야말로 미국의 입장이라고 믿고 싶을 것이다.

    각자의 진영논리에 따라 '미국의 생각은 이것'이라고 확신하고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면, 국내에서는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과연 어느 쪽이 미국의 생각인가. 트럼프 행정부는 강-온 2개의 조합을 놓고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움직인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현재 변곡점을 맞고 있는 북한관련 상황을 지켜보고 대응책을 만들어가야 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포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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