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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

5개의 시선으로 읽는 유전자가위와 합성생물학

 

몇 년 전, 안젤리나 졸리는 유방암을 유발할 수 있는 유전자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실제로 유방 절제 수술을 해 화제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유전자가위를 이용해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만 싹둑 잘라내면 그만이다. 크리스퍼 유전자가위가 생명과학에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정확히 잘라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암, 에이즈, 실명, 루게릭병 등 난치병 치료가 가능해졌거나 임상 시험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태어날 아기의 유전자에서 질병 유전자를 미리 제거하는 일도 머지않아 가능해질 것이다.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는 국내 연구진들이 과학계의 빅 이슈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와 합성생물학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유전자가위와 합성생물학에 특히 주목한 5명의 필자들은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생명과학의 이슈가 과학계 안에서만 논의되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지난 2년 간 유전자가위와 합성생물학을 주제로 지속적인 세미나를 진행해온 이유이다. 그 결과물이기도 한 이 책은 과학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과 함께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윤리, 철학, 종교, 제도의 문제를 제시하고 질문한다.

얼마 전, 국내 연구진이 실명 치료에 성공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전체 실명의 5%를 차지하는 노인성 황반변성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에서는 유전자가위로 암 세포를 탐지하는 유전자를 T면역세포에 삽입해 직접 암세포를 공격하게 하는 방법을 임상시험 중이며, 조만간 결과 발표가 있을 예정이다.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에이즈 치료에 성공한 사례가 발표되기도 했다. HIV 바이러스는 면역세포에 존재하는 CCR5라는 수용체를 통해 세포 내부로 침입한다고 한다. 유전자가위를 통해 CCR5를 제거한 조혈모세포를 이식하는 방법으로 실제 에이즈 환자를 치료하였고, 현재도 연구가 진행 중이다. 또한 유전자가위 기술을 이용해 바이러스 감염이나 거부 반응의 위험 없이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할 수 있는 돼지를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암, 에이즈뿐만 아니라 루게릭병, 치매 등 다양한 난치병 치료에 유전자가위가 활용되고 획기적인 성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책에서는 구체적인 연구 내용과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유전자를 정확히 잘라내고 다른 유전자를 대체해 넣을 수 있는 기술이 도입되면서, 머지않아 태어날 아기의 유전자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중국에서는 인간의 수정란에서 특정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실험에 이미 성공한 상태이다. ‘맞춤아기’ 혹은 ‘디자이너 베이비’가 이미 이론적으로는 가능해진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대형마트나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듯, 태어날 아기의 유전자를 고를 수 있게 될까? 이 문제와 관련해 인간 수정란을 실험 대상으로 이용해도 되는지, 치료 외의 목적으로 유전자를 선택하는 게 윤리적으로 옳은지 등 생명윤리를 둘러싼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만들 수 없는 것은 이해하지 못한다” 리처드 파인먼의 이 말은, 합성생물학의 주요 명제이다. 이제 과학자들은 ‘인간 복제’에서 더 나아가 ‘인간 창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에서는 직접 인간을 설계하고 만드는 ‘인간 유전체 합성’ 계획을 이미 발표한 바 있다. 2016년에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인간 유전체 합성 연구에 관한 비공개 회의를 열어 논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과학과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가능해질 변화들에 관해 이 책에서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하며, 각각의 입장을 전개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핵무기와 기후 변화보다 인류에게 훨씬 위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바이오테러’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미 인터넷에 공개된 유전자 정보를 통해 레고 블록을 맞추듯 쉽게 생명체를 조립하고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유전자 정보의 데이터화와 맞물려 누구든 쉽게 세포를 합성할 수 있는 이러한 환경은, 과학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바이오 테러리스트들에게도 기회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이 책에서는 북한의 바이오테러 위협으로부터 한국 또한 안전하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규제를 위해 어떤 정책들이 필요한지에 관해서도 말하고 있다.

앞으로 합성생물학이 발전할수록 유전자가 일부 편집된 생명체뿐만 아니라 기존에 생태계에 존재하지 않던 합성생명체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합성생명체들이 생태계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또한, 합성생물학으로 인한 결과물은 지구온난화와 같이 전 지구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기 때문에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고 이 책의 필자는 말한다.

김응빈, 김종우, 방연상, 송기원, 이삼열 지음 | 송기원 엮음 | 동아시아 | 292쪽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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