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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률의 스포츠레터]홍아란과 슬램덩크 정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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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종률의 스포츠레터]홍아란과 슬램덩크 정대만

    '농구가 하고 싶어요...' 지난 4일 국민은행이 임의탈퇴를 발표하면서 여자프로농구 논란의 중심에 선 국가대표 출신 가드 홍아란(왼쪽)과 만화 '슬램덩크'에서 코트를 떠났다가 방탕한 생활을 접고 복귀한 북산고 가드 정대만.(자료사진=WKBL, 슬램덩크)

     

    WKBL이 '뜨거운 감자' 홍아란(25 · 174cm) 때문에 시끌시끌합니다. '삼성생명 2016-2017 여자프로농구' 시즌이 한창인 지난 4일 소속팀 청주 국민은행이 홍아란에 대한 임의탈퇴를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올 시즌 잔여 경기에 뛸 수 없게 된 겁니다.

    그동안 WKBL에서 임의탈퇴는 심심찮게 들려왔습니다. 그러나 시즌 도중 그것도 팀 간판 선수가 코트를 떠나는 것은 지극히 이례적입니다. 더군다나 국민은행은 올 시즌 최하위로 처진 상황.

    때문에 홍아란의 임의탈퇴는 프로 선수로서 무책임하다는 비판 여론을 키웠습니다. 위성우 아산 우리은행 감독도 5일 "욕을 먹어도 할 말은 해야겠다"면서 "시즌 중 이탈은 동료들에 대한 배신"이라며 작심한 듯 질타했습니다.

    물론 홍아란에 대한 동정론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달 발목 부상을 당한 뒤 힘겨운 재활 과정을 소화하면서 홍아란은 구단에 "심신이 지쳤다. 농구가 싫어졌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은행 센터 양지희는 "홍아란이 어떻게 코트를 떠나게 된 건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선수 입장에서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즌 도중, 그것도 팀이 어려운 상황에 있는 가운데 주축 선수로서 성급한 행동이었다는 의견이 대부분입니다. 위 감독은 "시즌 중 이탈은 국민은행뿐 아니라 다른 팀에게도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안덕수 국민은행 감독도 "남은 선수들로 분위기를 잘 가다듬어 시즌을 치르겠다"고 했지만 5일 우리은행과 경기에서는 무기력하게 20점차 대패를 안아야 했습니다.

    ▲홍아란-정대만, 부상 재활 중 이탈

    홍아란은 WKBL을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입니다. 전체 9순위로 국민은행에 입단한 홍아란은 두 번째 시즌인 2013-2014시즌부터 주전을 꿰찼습니다. 2014-2015시즌에는 생애 첫 라운드 MVP에 오르는 등 평균 10.5점 2.8도움으로 정규리그 베스트5의 영예를 안았고,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습니다.

    성장하는 기량과 함께 빼어난 미모를 갖춰 WKBL과 구단에서는 간판 선수로 도약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014-15 올스타전에서 홍아란은 또 다른 '얼짱 가드' 부천 KEB하나은행 가드 신지현과 함께 드레스를 입고 '거위의 꿈'을 부르는 특별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깜찍한 외모 덕에 홍아란은 '청주 아이유'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2014-2015시즌 올스타전에서 홍아란(왼쪽)이 KEB하나은행 가드 신지현과 함께 특별 공연에서 '거위의 꿈'을 부르는 모습.(자료사진=WKBL)

     

    하지만 홍아란은 WKBL 5시즌을 채우지 못한 가운데 코트를 떠났습니다. 선수로서 한창 전성기에 접어들 시점에서 더없이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홍아란은 올 시즌 평균 8.7점으로 슛 난조로 잠시 주춤했던 지난 시즌(6.3점)보다 나은 모습을 보였던 터였습니다.

    홍아란의 행보는 일본의 전설적인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한 캐릭터를 떠올리게 합니다. 주인공 강백호(편의상 번역본 이름으로 표기하겠습니다)이 소속된 북산고의 슈팅가드 정대만입니다.

    만화에서 정대만은 중학교 시절 도대회 MVP 출신으로 한껏 기대를 모았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지도자(안 감독)가 지휘봉을 잡고 있던 북산고로 지원해 전국 제패를 꿈꿨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농구부를 떠나게 됩니다. 무릎 부상이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농구부 내 갈등이 진짜 원인이었습니다. 줄어든 존재감에 대한 불안과 서운함이 컸습니다. 정대만은 같은 학년 채치수와 차세대 에이스를 놓고 자존심 대결을 펼쳤고, 부상으로 재활을 하는 사이 안 감독을 비롯해 팀 동료들이 채치수에 대해 더 큰 관심을 보이면서 말없이 농구부를 떠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홍아란도 부상으로 재활을 하는 동안 코트를 떠나게 됐습니다. 부상 외의 임의탈퇴 요인도 어쩌면 홍아란과 정대만이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팀에서의, 또 홍아란 내부에서의 갈등입니다.

    ▲홍아란, 왜 코트를 떠나야 했을까

    사실 농구계 일각에서는 홍아란이 코트를 떠나게 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얘기가 들립니다. 바로 동료들과 불화 때문이라는 겁니다.

    단체 운동에서는 동료들의 친소 관계에 차이가 나기 마련입니다. 같은 팀이라고 해서 모든 선수가 다 친밀하게 지내기는 어렵습니다. 알게 모르게 친분에 따라 함께 지내는 선수들이 나뉩니다. 이는 학교나 직장 등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특히 여자 선수들일 경우 이런 관계와 지형도가 상대적으로 뚜렷하다고 합니다.

    국민은행은 지난 시즌 뒤 팀에 적잖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서동철 감독이 건강 문제로 재계약을 고사하면서 코칭스태프가 바뀌었습니다. 무엇보다 베테랑 변연하(37)가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정신적 지주로 팀을 이끌던 변연하의 부재는 은연 중에 팀 분위기가 바뀌는 변수가 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홍아란은 변연하를 크게 믿고 의지했던 선수. 홍아란은 2014-2015시즌 정규리그 시상식에서 베스트5에 오른 뒤 "내가 리딩 능력이 부족해 연하 언니가 포워드 대신 가드 역할을 했다"면서 "미안하고 감사하다"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내 뒤를 이어다오' 변연하(오른쪽)는 현역 시절 홍아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며 차세대 에이스로 기대감을 드러냈다.(자료사진=WKBL)

     

    그 시즌 플레이오프 때는 변연하가 위기에 처한 홍아란을 보호한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홍아란과 신한은행 하은주(은퇴)의 신경전을 벌어지자 변연하가 나서 "무서우면 내 뒤로 숨으라"며 챙겼습니다. 지난 시즌에도 홍아란은 변연하의 조언을 듣고 부진에서 벗어났다는 일화를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변연하의 은퇴. 홍아란에게는 믿고 따르던 언니가 떠나간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에 서 감독도 바뀌면서 박재헌, 박선영 등 코치진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서 감독은 홍아란을 주전으로 키워준 지도자였습니다. 물론 안 감독을 비롯한 현 코칭스태프도 면담을 하는 등 신경을 썼지만 홍아란에게는 적잖은 변화였습니다.

    한 농구계 관계자는 "현재 WKBL은 알게 모르게 코치나 선수에 따라 묘하게 뭉치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 같다"고 귀띔했습니다. 어쩌면 이런 환경이 홍아란이 코트를 떠나게 된 배경일 수 있다는 겁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기량과 스타성을 갖춘 홍아란이 간판으로 대우를 받으면서 팀 워크에 묘한 균열이 생길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일각에서는 한국 스포츠의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에 뛰어드는 여자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아직 성숙하기 전이라 힘겨울 수 있다는 겁니다. 운동뿐인 합숙 생활의 무료함, 일반인들의 생활에 대한 동경으로 흔들리기 쉽다는 겁니다. 어쨌든 홍아란의 임의탈퇴는 WKBL에 아쉬움과 함께 현 시스템에 대한 반성의 계기도 안겨준 것임에는 분명합니다.

    '다시 돌아올까' 홍아란(왼쪽)이 만화 슬램덩크의 정대만처럼 혼란스러운 방황을 끝내고 돌아와 제 2의 농구 인생을 펼칠지 관심이다.(자료사진=WKBL, 슬램덩크)

     

    P.S-슬램덩크에서 정대만은 북산고 농구부에 폭력을 행사하며 거대한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농구에 대한 애정과 열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정대만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뒤 등장한 안 감독을 보자 눈물을 쏟아냅니다. "농구가 하고 싶어요"라며 코트에 주저앉습니다.(지금도 잊을 수 없는 명대사입니다.)

    WKBL에도 '돌아온 탕아'들이 꽤 있습니다. 배혜윤(삼성생명), 홍보람, 이선화, 최은실(이상 우리은행) 등입니다. 최은실은 5일 국민은행과 경기 뒤 "운동이 힘들어서 코트를 떠났지만 내 생각이 짧았고 정말 농구장 밖 삶이 힘들더라"면서 "내가 잘 하는 것을 하는 코트로 돌아와 보니 좋다는 것을 알았다"고 경험담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홍아란도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국민은행도 "선수의 의견을 존중해 충분한 휴식 뒤 복귀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물론 지금은 힘들고 코트가 지긋지긋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을 견디지 못해 떠나간 사람이 다른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있을까요?

    코트로 복귀해 멋지게 제 2의 농구 인생을 펼친 정대만처럼 홍아란도 언젠가 돌아와 당찬 플레이를 펼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재능을 버려두는 것은 개인이나 한국 여자 농구에서나 큰 손실이기 때문입니다.

    P.S의 P.S-공교롭게도 국민은행은 올 시즌 대형 신인 박지수(193cm)가 입단해 큰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동안 홍아란이 받았던 큰 관심이 박지수에게 몰리고 있습니다. 정대만과 농구부 입단 초기 차세대 에이스 경쟁을 펼친 채치수의 상황과 묘하게 맞물립니다. 당시 1학년이던 채치수와 박지수의 신장은 우연하게도 193cm로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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