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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학술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 심야 편의점에서 보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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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밤의 제주는 즐거워>는 제주에 사는 젊은 작가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모은 에세이다. 최소한의 ‘밥벌이’와 ‘글쓰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시작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9시까지 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편의점에 이렇게 기기묘묘한 사람들이 찾아올 줄 누가 알았을까? 24시간 편의점에는 물건도 많고, 이야기도 많다. 술을 따르라고 하면서 “내가 왕년에 말이야”로 시작되는 자신의 과거사를 풀어놓는 ‘진상 1호’, 고물 자전거를 싸게 팔겠다며 매일같이 찾아오는 화가 아저씨, 본인의 오해로 고성과 욕설을 퍼붓고도 사과 한 마디 없는 아저씨, 중요 부위에 소시지를 숨겨 도망가려던 청년, 이른 새벽부터 편의점에 찾아와 자신들의 교리를 세뇌시키려던 모 종교 열혈 신자들, 편의점 안에서 격정적인 입맞춤을 하는 커플 등. 작가는 자신의 알바 경험을 녹여내 편의점에서 펼쳐지는 에피소드를 생생하게 그렸다. 제주에서의 삶도 그려지는데, 고기국수와 흑돼지를 먹는 장면은 정말이지 침을 꿀꺽 삼키게 만든다.

    작가는 우리가 삭막하게 스쳐 지나갔던 편의점의 순간들에 온기를 채워 넣었다. 도시의 편의점에서는 인간미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곳 제주도 바닷가 마을에서 펼쳐지는 편의점의 일상은 역동적이면서 따뜻하다. 한 성깔 하지만 열혈 알바생인 ‘차 작가’는 손님들의 친구가 되기도 하며 기발한 방법으로 진상 손님들로부터 편의점을 지켜낸다.
    누군가의 눈에는 하찮게 보일 수 있는 편의점 알바. 흔히 편의점 알바생을 ‘편돌이’나 ‘편순이’로 낮춰 부르기도 하지만, ‘차 작가’는 자신의 꿈을 위해 오늘도 편의점에 출근한다.

    책 속으로

    신인 작가인 내가 글쓰기만으로 고정적인 수입을 갖기란 튜브 하나를 의지해 망망대해에서 큰 파도와 맞서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둘 다 놓친다는 옛말을 그저 옛말로만 남겨두고 싶었다. 한동안 고뇌의 시간에 빠져 지내던 중 우연히 G편의점 구인 광고를 발견했다. _21~22쪽

    “저기…… 손님,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내가 한마디 내뱉자 다음 과정(?)으로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가벼운 입맞춤을 예삿일처럼 반복하며 컵라면과 삼각김밥, 우유 등을 골랐다. 심지어 계산을 하는 중에도 애정행각을 멈출 기미가 없었다. 서로를 바라보며 만들어낸 뜨거운 시선을 온도로 환산한다면, 난 이미 3도 화상에 걸렸을 것이다. _82~283쪽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은 단순히 물건만 사러 오는 것만이 아니라 종종 마음을 나누러 온다. 그래서 난 그들을 더욱더 정성껏 맞이할 수밖에 없다. “어서 오세요!” “다음에 또 오세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_298쪽

    제주도에 살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외로움이었다. 제주도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른 지역보다 배타성이 훨씬 짙다. 태생이 ‘육짓 것’인 나 같은 사람에게 제주 토박이들은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제주 이주민 중 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오래 살지 못하고 떠났던 경우가 많다. 결국 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단 하나, 이 땅에 오래도록 함께할 사람인 걸 알게 해주는 것뿐이다. _299~300쪽

    우리 삶에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그 순간들을 바람처럼 스쳐 지내고 살아간다. 바람은 붙잡을 수 없지만, 난 내 삶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잠시라도 붙잡아두고 싶다. 이 글은 나만의 순간이 아닌 편의점에 함께한 사람들과, 지금쯤 어딘가에서 나와 닮은 삶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순간들이다. _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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