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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또 쓰고'…살생물질 깜깜이, 화학제품 묻지마 사용



사건/사고

    '쓰고 또 쓰고'…살생물질 깜깜이, 화학제품 묻지마 사용

    [화학공화국, 당신은 안녕하십니까②]

    수천명의 사상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부터 흡입독성 향균필터, 실명을 야기할 수 있는 차량 메탄올 워셔액까지 생명을 노리는 화학물질제품이 도처에 널려있다. CBS노컷뉴스는 화학물질이 넘처나는 '화학공화국'의 현실을 조명하고, '사회 디톡스' 해법을 모색해 보는 연속기획을 마련했다. [편집자주]

    지난달 26일 정씨 장바구니에 담긴 검은 비닐봉지들. (사진=김기용 기자)

     

    # 일주일에 2번 재래시장을 찾는 정모(63.여) 씨. 지난달 26일 오전 채소가게에 들러 깻잎과 알배추 등을 사고 소금 가게를 거쳐 고깃집에 왔다. 이날 정 씨가 20여분 동안 산 식재료는 7~8가지. 각각의 식재료는 검은 비닐봉지에 따로 담겨 있었다.

    # 안모(30.여) 씨는 친구 결혼식장에 가기 위해 바쁜 아침을 맞았다. 동창이 잔뜩 모이는 이날 안 씨는 특별히 화장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미 전날 밤 마스크팩으로 피부의 수분을 보충해 준 안 씨는 비비크림부터 컨실러, 하이라이터, 볼터치까지 17가지 화장품을 사용했다.

    # 서울 동작구 노량진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51.여) 씨는 공짜라고 섬유탈취제 '페브리즈'를 물쓰듯 쓰는 손님들을 흘겨본다. 하루 평균 500㎖ 한 통이 쓰인다.

    전 세계 화학제품 동향을 파악하는 사이트 '글로벌인포메이션'에 따르면, 2012년 한국은 플라스틱 제품에 주로 사용되는 '가소제' 사용량이 단일 국가로는 중국과 일본에 이어 세 번째를 차지했다.

    석유화학공업의 가장 기본적인 원료인 '에틸렌' 사용량도 2014년 기준 역시 3위다. 다시 말해, 미국과 중국, 일본을 제외하면 세계 1~3위를 다투는 화확물질 소비국가인 셈이다.

    순천향대 환경보건센터 문정숙 교수는 "한국 사회는 화학제품 사용에 관대한 것이 사실"이라며 "정부 주도로 전자나 IT 등 화학물질이 많이 쓰이는 산업분야가 발달하면서 화학소비량도 많은 편"이라고 분석했다.

    ◇ '살생물' 함유돼도 몰라…화학물질에 눈먼 소비자들

    화학제품 사용량은 세계 상위권을 다투고 있지만, 생활화학제품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특히 주방 세제나 욕실 세제, 방부제, 탈취제 등에 대한 성분 표시가 부실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CBS노컷뉴스가 실제로 마트에서 판매되는 주방 세제의 성분 표기를 살펴본 결과, 성분 표시란에 대부분 '계면활성제', '[고급]알코올계', '식물성 고급 아민계' 등으로만 적혀있다.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주방용 세제. (사진=김구연 기자)

     

    문제는 '알코올계'나 '아민계'의 하위 물질에는 수십 가지에서 수백 가지나 되는 화학물질이 포함돼 사실상 어떤 물질이 쓰였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아민계의 경우 일부 물질은 분해되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이 발생해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 알코올계는 에틸알코올과 메틸알코올로 나뉘는데, 메틸알코올은 공업용 알코올로 생활제품에 사용되기에는 부적절하다.

    또 제품에 살생물질이 포함돼 있어도 구체적인 명시 기준이 없는 상태다. 살생물질이 호흡을 통해 흡수될 경우, 폐기종이나 폐섬유화 등이 발생할 수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화학물질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진 만큼 화학물질 성분표시에 대한 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라며 "올해 말쯤 살생물질에 대한 성분명과 기능, 함유량 등을 표시하도록 기준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 같은 문제의식, 다른 대책…"시민 참여한 공론화가 핵심"

    많은 전문가들이 현 정부의 성분표시 기준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에는 동의하면서도 대책에 대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한국자원경제연구소 손미경 대표는 "성분 표시 기준이 보다 선진화돼야 한다는 방향성에 공감하지만, 모든 성분을 일일이 적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의문"이라며 "일반 소비자들 입장에서 빼곡한 성분 표시는 제품 선택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모든 성분을 적기보다 성분에 함유된 독성이나 유해 수준을 간단히 표시해 소비자들이 쉽게 알아보도록 하고 있는 사례들이 있다"고 전했다.

    캘리포니아에서 판매되는 컵 후면에 유해화학물질이 함유돼 있음을 알리는 경고 문구가 부착돼 있다. (사진=TheSmartMama.com)

     

    실제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주법에 따라 유해화학성분이 일정 기준치를 초과한 제품에는 경고 메시지를 부착하게 돼 있다.

    반면 시민단체 '환경정의' 이경석 팀장은 "향후 제품에 대한 성분표시 기준이 점차 강화돼 종국에는 '전 성분 표시'가 원칙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팀장은 "어려운 용어가 가득한 성분 내용을 일반 소비자 개개인이 해석하지 못할 수는 있지만, 시민단체 등이 나서서 성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국 비영리단체 'EWG'(Environmental Working Group)는 화장품 성분 등에 대한 물질을 분석해 일반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다방면에서 선진 모델로 불리는 사례가 없는 실정이어서 생각은 분분하지만, 관련 논의가 시민의 눈높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의견이 모였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임상혁 소장은 "화학제품의 소비자이면서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반 시민이 화학물질관리에 대한 공론장에 참여하는 게 핵심"이라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있었던 만큼 시민 사회에서도 화학물질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생활화학물질의 위험성에 대한 공감대가 분명히 형성된 가운데 각기 다른 해법은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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