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한국의 슈바이처'라고 불리는 장기려 박사를 알고계신가요?
성탄절인 장기려 박사 20주기를 앞두고 그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장기려 박사의 제자인 박상은 원장을 만나,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닮고자 치열하게 살았던 장기려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조혜진기잡니다.
장기려 박사
[기자]
아프리카미래재단을 설립해 의사 한 번 못 만나고 죽어가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의술을 베풀어온 박상은 원장.
지난해에는 대통령직속 국가생명윤리위원장직을 맡아 생명존중 문화를 만드는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박 원장의 이러한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바로 장기려 박사입니다.
[인터뷰] 박상은 /안양샘병원 의료원장, 아프리카미래재단 상임대표
"틈만 나면 봉사하러 나가셔서 런닝셔츠 차림으로 무의촌 진료봉사도 하시고 마지막에는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들어서 근본적으로 사회 제도를 바꾸는 일에 앞장서신 것을 보면서 저도 봉사의 삶을 살아야 되겠다고 생각했죠"
박 원장은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장기려 박사가 있는 부산복음병원을 찾아가 수련을 받으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과 가난한 사람을 품는 법 등을 배웠습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장 박사는 6.25전쟁 직후인 1951년, 전국에서 몰려든 피난민들을 위해 무료 천막 진료소를 열었고 이는 부산복음병원의 전신이 됐습니다.
돈 없는 환자들을 위해 자신의 사재를 터는 것은 장 박사에겐 늘상 있는 일이었습니다.
[인터뷰] 박상은 /안양샘병원 의료원장, 아프리카미래재단 상임대표
"그 당시는 돈이 없으면 퇴원을 안시켰거든요. 돈을 갚을 때까지요. 인질 비슷하게 잡고 있었는데..밤중에 회중전등을 들고 오셔서 잠자는 환자를 깨워서 가족들과 함께 짐을 챙기라고 그러시고 뒷문을 열어주시면서 빨리 도망치라고"
타인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장기려 박사는 자신에게만은 엄격했습니다.
세상을 떠날 땐 재산 한 푼 없었고, 가진 자나 없는 자 모두를 평등하게 대했습니다.
그런 만큼 자신에 대한 특별대우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북에 두고 온 아내를 평생 그리워하면서도 그 아내를 만나게 해주겠다는 정부의 특별제안을 거절했던 일은 유명한 일화로 남았습니다.
[인터뷰] 박상은 /안양샘병원 의료원장, 아프리카미래재단 상임대표
"'어디 이산가족이 나 뿐이겠는가? 이 땅의 많은 이산가족들이 다 사랑하는 가족을 만날 때 그 때 나도 아내를 만나리라”그러면서 결국은 아내와의 만남을 한사코 거절하시고 사랑하는 아내를 결국 보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셨죠. 자신만이 어떤 특별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우리나라 최초로 대량 간 절제술을 성공시킨 탁월한 의료인이자 소외된 이들에게 의료혜택을 주기 위해 국민건강보험의 효시인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든 사회개혁자 장기려 박사.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했던 그는 예수그리스도를 닮고자 치열하게 살았던 ‘작은 예수’였습니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