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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이은주의 죽음, "언론은 더 드라마틱한 사연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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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故이은주의 죽음, "언론은 더 드라마틱한 사연 원했다"

    • 2005-02-24 10:36

    죽음의 원인 두고 추측기사, 선정적 기사 난무

    22일 오후 세상을 떠난 故 이은주의 분당구 정자동 R아파트 현관 앞에서 취재진들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류승일기자/노컷뉴스)

     


    휘영청 대보름달이 추운 대지를 비추고 있다. 이제 25년간의 삶을 접고 남은 이들의 가슴에서 떠나려는 샛별을 가리는 듯해 대보름달마저 야속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연예계의 수많은 별들이, 우리들 곁을 떠나려는 이은주라는 샛별을 지켜주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스스로 죽음을 결심한 영화배우 이은주의 발인이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이제 이은주의 육신이 가족의 곁에 머무는 것도 이 새벽이 마지막이다. 가족뿐만 아니라 영화인 그리고 그녀의 연기를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마지막이다. 이제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의 영화배우 이은주는 자신의 모든 것을 영화로만 기억될 순간이 가까이 온 것이다.

    고인이 숨을 거둔 자택에서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까지 한순간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물론 취재를 위해서였다. 취재라는 목적 때문에 눈물도 흘리지 못했다. 이제 몇 시간 후 그녀를 보낸 후, 맘껏 울 작정이다. 같은 여자라는 이유로, 20대라는 이유로 또 기자이기 전에 한 사람의 영화팬으로서 맘껏 울 작정이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할 일이 있다. 그녀를 보내기 전 먼저 사과를 해야할 것이 있다. 그녀의 죽음을 바라본 언론의 문제다. 이것은 나역시 비껴갈 문제가 아니다. 그렇기에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먼저 밝힌다.

    그의 죽음 직후부터 쏟아져나왔던 기사들. 사실 확인이나 당사자 취재없이 추측과 예단과 고인의 명예에 관한 보도들이 넘쳐났다. 경찰이 고인의 죽음을 자살로 종결하기 전부터 ''죽음의 원인''에 대한 언론사들의 추측보도가 넘쳐났다.

    ''''제발 고인을 생각해서라도 소설은 쓰지 말아주십시오''''

    고인의 죽음을 처음 목격한 담당 형사의 말이다.

    모 통신사는 지난 22일 ''''이은주 자살, ''주홍글씨'' 출연도 주요 원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이는 ''''22일 사건 발생 후 입수한 이은주의 유서에서 발견됐다. 모두 3장으로 쓰여진 유서 속에는 "근본적인…원인… 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 없을 텐데. 왜 내게 그런 책을 줬는지. 왜 강요를 했었는지. 왜 믿으라고 했었는지"라는 문구를 담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책''이라는 단어는 영화계에서는 통상 시나리오를 일컫는 말''''이라고 친절하게 부연설명했고 ''''지난 1년간 출연한 영화는 ''주홍글씨'' 한 편이었다. 이 같은 표현을 볼 때 이은주가 영화 ''주홍글씨'' 출연 이후 심각한 정체성 혼란을 겪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모언론에서 시나리오로 추정한 ''책''이라는 단어 정작 유서엔 없다

    이밖에도 고인의 유서를 마치 암호문이나 연구용 텍스트인양 저마다의 해석을 덧붙인 보도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의문점이 있으면 경찰이 해야할 일이고, 고인의 유지가 담긴 내용은 유족에게 전해지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현장을 감식하고 수사한 분당경찰서 고위 관계자는 ''''맹세코 유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다''''며 ''''''''책''''이라는 단어조차 들어가지 않았다''''고 분명히 밝혔다. 또 "여러 가지 고민이 담겨있으나 일부 언론이 바라는 그런 내용은 없다. 일부 언론은 유서에도 없는 내용을 유추 해석해 보도했다"고 지적했다. 그 관계자는 "돌아가신 분을 위해서라도 언론의 확대해석은 금물"이라며 ''''언론 보도를 접하면 참 황당할 정도''''라고 심경을 토로했다.

    모 스포츠지도 22일 오후 ''''이은주, 인터뷰에서 죽음 언질 했었다''''라는 기사를 통해 "자신의 실제 삶을 자살로 마감해야 했던 아직 여리지만 내면의 성숙함으로 관객에게 다가갔던 이은주가 죽음에 관해 말한 인터뷰가 새삼 살아있는 이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며 "~인터뷰에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 ''연애소설'' ''하늘정원'' 등의 영화에 출연하면서 ''죽음''에 대해 보다 깊게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것도 모자라 모 연예 인터넷뉴스는 ''''이은주, `번지점프~''에서 죽은 날도 2월 22일''''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자살한 故 이은주(25)는 영화속에서 유난히 죽는 역할이 많았다''''며 ''''특히 ''번지점프를 하다''에서는 극중 교통사고를 당한 날짜가 2월 22일로 그녀가 실제 사망한 날짜와 같아 운명론까지 느끼게 하며 슬픔을 더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그후 이같은 낭설이 일간지 신문에까지 등장했다. 그 누구도 영화관계자에게 정확하게 확인한 적이 없다.
    이 문제가 제목으로 뽑을 만큼 그토록 중요했다면 ''번지점프...''와 ''2월 22일''에 관한 연관성을 제작사나 제작관계자에게 물어어야 했다. 그러나 ''관계가 없다''는 관계자들의 이야기는 철저히 무시했다.

    일부 네티즌과 언론에 의해 불거진 故 이은주의 ''''2월 22일 사망 운명설''''에 대해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의 제작자인 눈엔터테인먼트 최낙권 대표는 ''''전혀 터무니없는 말''''이라며 부정했다. 최 대표는 ''''영화에는 2월 22일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고 암시조차도 준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네티즌의 근거 없는 이야기, 확인 않고 보도한 언론 여러 곳

    ''''2월 22일 운명설''''을 네티즌이 유포했고 이를 언론이 확인 없이 다시 받아 유포시킨 셈이 되고 말았다.

    ''스물다섯의 영화배우, 영화속 숨진 날에 자살''. 정말 드라마틱한 이야기다. 아무런 연관성이 없음에도 사람들은 왜 그렇게 생각했고, 몇몇 언론은 이런 내용을 확인도 없이 썼어야 했을까? 그녀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까워서? 허망한 죽음이어서 그렇게 치장했어야만 할까?

    유서에서 언급된 "마지막 통화 언니… 꼭 오늘이어야만 한다고 했던 사람. 고마웠어-"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모 통신사는 23일 오후 ''''이은주와 마지막으로 통화한 ''언니''는 누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또 다른 의문인 22일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몇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며 ''''2월22일은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이은주가 사고로 죽었던 날''''이고 ''''다른 한 가지 추측은 그녀가 전작 ''주홍 글씨''의 출연에 부담감을 느꼈다는 사실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고 추측했다. 한마디로 예단과 추측으로 일관한 기사다.

    또 몇몇 언론은 ''죽음의 배역''을 내세워 ''영화속의 죽음, 실제로 이어지다''라는 논리를 전파했다. 사실 이은주는 몸이 아픈 배역, 죽음에 이르는 배역을 많이 연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녀의 가녀린 이미지, 차분한 이미지 덕분에 그런 배역이 주어졌던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어느 언론사 한곳도 지적하지 않았다.

    영화 ''주홍글씨'' 책임론도 마찬가지다. 신고자인 故 이은주의 친오빠가 경찰 1차 조사에서 "''주홍글씨''로 인해 고민을 많이 해왔다"고 진술한 것은 사실이다. 책임이 필요하고, 원인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배우가 자신이 기꺼이 맡은 배역의 어려움 때문에 자살까지 결심했다고 표현하고 싶었을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단 한가지 문제만을 놓고 고민해 죽음을 선택했을까?

    ''''경찰의 1차 자료에 ''''주홍 글씨''''가 있어 그렇게 보도했지만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 모두를 떠나는 자살을 결정하며 프로인 영화배우이기 전에 한 여자로서 노출신 때문에 자살을 한다.''''

    그런 스토리를 언론은 원했다. 철저히 여성비하적인 논리다. 여자나 남자나 인생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죽음을 앞두고선 말이다. 유서를 그리도 꼼꼼히 봤다면 영화 ''주홍글씨''에서의 노출신이 자살의 직접적 계기라고 기사를 작성할 수 있었을까 말이다.

    한마디로 고인이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에 대한 취재보다는 언론이나 네티즌이 이미 꾸며놓은 스토리에 이은주의 행적과 유서에 대한 느낌, 이미지 등을 이미 꿰맞춰 놓고 추측과 예단만으로 보도한 것이다.
    그렇다. 인기 여배우의 갑작스런 요절은 언론의 구미에 맞는 소재며 대중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죽음의 원인에 대해 결정적 단서인 유서 내용을 통해 얼마든지 이리저리 기사를 끼워 맞출 수 있다.

    아예 우리 연예계에 검게 드리우고 큰 상처를 낸 이른바 ''연예인 X파일'' 관련성을 내세운 글에선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아예 논외로 치자.

    죽음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현장으로 달려가 경찰서와 병원에서 밤을 샜지만 경찰이 발표한 우울증에 의한 일반 변사로 결론내리기엔 왠지 아쉬운 마음이 들 수 있다. 유서의 내용을 토대로 얼마든지 추측해 추리소설을 만들고 싶은 욕망에 빠질 수도 있다.

    어쩌면 고인을 이렇게 보내기가 아쉬운 건지도 모른다.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마지막 밤, 고인이 가족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으로 육신으로 함께 하는 이 밤, 더 이상 기자로서 그녀를 만날 수 없게 됐다는 슬픔인지, 연예인 이은주를 이제 만날 수 없다는 안타까움인지, 그녀의 빈소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야하는 현실 때문인지 착잡하기만 하다.

    이제 우리 모두 그녀에게 드리웠던 포장을 걷어내고 순수했던, 가족들의 표현대로 ''여린 성격의 착한 아이''로, 영화인들의 표현처럼 ''영화를 너무나 사랑했던'' 순수한 이은주의 모습으로 먼 길 떠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

    이제 고인을 편히 보내줘야

    언론은 고인의 죽음에 대해 더 드라마틱한 사연을 원했지만 죽음의 원인은 우울증에 의한 자살로 추정되는 일반 변사 사건으로 결론지어졌다.

    하지만 고인의 짧은 삶은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만큼이나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이제 고인을 붙잡고 유서와 네티즌을 끼워 맞춰 죽음의 원인에 대해 더 이상 추측하고 덧칠하기보다는 그냥 편히 고인을 보내주는 것이 진정 고인을 위하는 길일 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노컷뉴스 방송연예팀 곽인숙 기자 cinspain @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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