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오늘은 한국 최초의 근대식 학교인 육영공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1886년(고종 23)에 육영공원의 학제가 결정됩니다.
좌원과 우원으로 나누어 좌원에는 나이가 젊은 문무관들을 특별 선발하고, 우원에는 똑똑한 유생들을 선발해 교육하도록 했습니다.
고종은 육영공원이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기관으로 빨리 자리잡기를 바랬던 것 같습니다.
고종은 "10일 이내에 육영공원 학생 정원을 채우라"고 특별히 지시했습니다. 입학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아들이나 조카가 시골에 있으면 제때에 빨리 데려오라고 독촉했습니다.
특히 상중에 있다고 하더라도 공부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라며, 똑같이 학습하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고종은 또 만약 지시를 어기고 늦게 입학해 학원 운영을 지연시킬 경우 그 학부형이 중한 죄를 받게 될 것이라고까지 하교했습니다.
고종이 이렇게까지 공을 들였지만 육영공원은 영어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지체높은 양반 자제들만 입학시키는 한계를 안고 있었고, 재정난까지 겹치면서 결국 8년만인 1894년에 폐교되고 말았습니다.
■ 세종 6년 (1424) : 계집종과 양민 사이의 자식은 양민이 될 수 없도록 하자는 건의를 불허
■ 광해 8년 (1616) : 왕이 몸소 무과 24명을 뽑고 문과 10명은 영의정이 뽑다
⇒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라 왕이 무과 합격자를 직접 뽑고 문과 합격자는 영의정이 책임지고 선발하도록 했다
■ 고종 23년 (1886) : 육영공원에 좌원과 우원의 학제를 두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