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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조선왕조실록] 풍년에는 쌀 값을 내리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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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력 7월 24일

    조선왕조실록, 오늘은 풍년이 들어도 쌀 값이 낮아지지 않자 정조가 가격 조절에 나섰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1790년(정조 14)에 당시 시중 쌀 값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상소가 올라왔습니다.

    풍년이 들었는데도 쌀 한포대의 값이 내려가지 않고 평년이나 흉년일때와 똑같이 3냥 7전으로 고정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가난한 선비와 궁한 백성들은 풍년임에도 배부른 기쁨을 누릴 수 없고, 장사치들만 배를 불리는 실정이라고 상소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상소문에 따르면 당시 균역청에서는 공납할 쌀을 일정한 가격을 정해놓고 미리 사들였었는데, 공납인들이 이를 악용해 풍년이나 흉년이나 같은 가격에 팔았던 것입니다.

    이에따라 상소문의 작성자는 "균역청에서 금년 8월부터 다음해 정월까지는 쌀을 사들이지 말게 하고, 공납인에게는 식량을 시장에서 싯가대로 매매하게 해서 모든 백성들이 풍년에 배불리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국왕에게 건의했습니다.

    이에 정조는 상소의 내용대로 즉시 시행하도록 지시하면서 "이렇게 되면 쌀 한 말에 3전씩 한다는 것은 비록 장담하지 못하겠지만 지금의 쌀값에 비하여 훨씬 떨어질 것이고, 가난한 선비와 궁한 백성들에게 큰 혜택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 세종 5년 (1423) : 한 껍질에 두 알이 든 검은 기장 종자를 전국에 보급하다
    ⇒ 옹진에서 우연히 발견된 껍질 하나에 알맹이가 2개인 검은 기장을 여러 해 심어 종자를 많이 모아 전국에 보급했다

    ■ 광해 5년 (1613) : 영창대군을 죽이라고 건의하자 위리안치 하라고 지시
    ⇒ 영창대군 : 선조의 적자. 광해군이 세자로 책봉된 이후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일부 세력이 세자 교체를 꾀했으나 선조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무산됐다
    ⇒ 위리안치:죄인이 유배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로 만들고 그 안에 가두는 것

    ■ 정조 14년 (1790) : 균역청이 일정한 값으로 쌀을 구입해 쌀값이 내리지 않는다는 상소
    ⇒ 균역청이 풍흉에 관계 없이 일정한 값에 쌀을 사들이자 풍년이 들어도 상인들이 쌀값을 내리지 않아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상소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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