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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뉴스

[오늘의 조선왕조실록] 이종무가 대마도 정벌을 시작하다

음력 6월 20일

조선왕조실록, 오늘은 이종무의 대마도 정벌 이야기를 전합니다.

1419년(세종 1년)에 이종무가 이끄는 대마도 정벌대는 강한 바람 때문에 전진 기지였던 거제도로 한차례 되돌아가야 했던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대마도에 상륙했습니다.

오시에 조선 군함 10여척이 먼저 대마도에 도착했는데, 왜적들은 처음에 일본 본섬에서 온 병력인 줄 알고 술과 고기를 베풀며 환영하다가 대군이 뒤이어 계속 정박하자 그제서야 사태를 깨닫고 도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벌대는 대마도 전역을 수색하면서 크고 작은 적선 129척을 빼앗아 20척만 남기고 모두 불살라 버렸습니다. 또 왜적의 가옥 1939채를 불태웠고, 이과정에서 적병 114명의 머리를 베고, 21명을 포로로 사로 잡았습니다.

이정무는 적들이 왕래하는 중요한 길목을 차단하면서 도주한 왜적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 세종 1년 (1419) : 대마도에 상륙하여 성과를 올리다

■ 세종 4년 (1422) : 공조참판이 정확한 저울 1,500개를 만들어 올림
⇒ 시중에서 사용하는 저울이 부정확 하자 공조에 정확한 저울을 만들라고 지시했고 이때 1,500개의 정확한 저울이 완성되었다

■ 세종 27년 (1445) : 행동지내시부사 엄자치에게 과전 25결을 더 주도록 하다
⇒ 내관 엄자치에게 과전을 더 주었는데 이런 은혜 때문에 나중에 단종을 끝까지 모신 것은 아닐까

■ 광해 10년 (1618) : 제주의 김만일이 기르고 있는 말 수천 필을 전마로 쓰도록 하다
⇒ 전쟁에 대비해 제주도에서 개인이 기르는 말 1만 여 필을 군용으로 쓰게 하였다

■ 정조 19년 (1795) : 북영에 머물며 신하들의 청대를 불허함
⇒ 정조는 강화에 유배 보낸 이복동생 은언군(철종의 할아버지)을 몰래 도성에 불러들인 것과 관련해 신하들이 상소를 올려 괴롭히자 창덕궁 북쪽에 주둔한 군부대(북영)에 머물며 아무도 만나 주지 않았다

■ 고종 11년 (1874) : 인천부에서 1장(3.1m) 정도 되는 큰 거북을 바치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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