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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었지만 쓸모없진 않다"…스크린 달구는 '노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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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었지만 쓸모없진 않다"…스크린 달구는 '노익장'

    영화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아놀드 슈왈제네거·'더 리치' 마이클 더글라스 귀환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아놀드 슈왈제네거(왼쪽)와 '더 리치'의 마이클 더글라스(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더블앤조이픽쳐스 제공)

     

    1980년대, 90년대를 풍미한 할리우드의 두 명배우가 최근 잇달아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만나면서 노익장을 뽐내고 있다.

    지난 2일 개봉해 5일 만에 162만 관객을 동원한 '터미네이터 제니시스'의 아놀드 슈왈제네거(67)와 오는 16일 개봉하는 액션 스릴러 '더 리치'의 마이클 더글라스(70)가 그 주인공이다.

    ◇ 영원한 '터미네이터'…아놀드 슈왈제네거

     

    최근 터미네이터 제니시스 홍보차 한국을 찾기도 한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극중 T-800 역을 맡아 "나는 늘었지만 쓸모없지는 않다"는 대사를 여러 차례 반복하며 스스로 건재함을 과시한다.

    1947년생으로 오스트리아 출신인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열다섯 살이던 1961년 보디빌더로 데뷔한 이후 1970년부터 1980년까지 세계적인 보디빌딩 대회인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일곱 차례나 우승한 전력을 지녔다.

    당대 최고 보디빌더로 꼽히던 그는 1968년 미국으로 넘어가 이듬해 영화 '뉴욕의 헤라클레스'로 신고식을 치렀지만, 배우보다는 보디빌더 이미지가 강했던 탓에 10여 년간 스크린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배우로 각인시킨 작품은 '코난'(1982), 그리고 그 유명한 '터미네이터'(1984)다. 최근 내한 기자회견 당시 스스로 "배우로서 전환점이 된 작품"이라고 말할 만큼 터미네이터는 그에게 특별한 영화다.

    '터미네이터2 - 심판의 날'(1991)의 아놀드 슈왈제네거

     

    이후 그는 '코만도'(1985) 등을 통해 액션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자신이 세운 최고 출연료 기록을 여러 번 갱신하면서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액션 영화에 주로 출연해 왔지만, 코미디 '트윈스'(1988), '유치원에 간 사나이'(1990) 등에도 출연하며 연기 폭을 넓히려 애쓰기도 했다.

    그를 당대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 반열에 올려놓은 영화는 두말할 것 없이 '터미네이터2 - 심판의 날'을 꼽을 수 있다. 전편의 악역 T-800 역을 그대로 맡았지만, 미래의 지도자 존 코너를 보호하기 위해 보내진 새로운 존재로서 대반전을 선사한 덕이다.

    아놀드 슈왈제네거는 정치에도 발을 들였다. 오랜 공화당 지지파인 그는 2003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보궐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와 당선된 데 이어 2006년 재선에 성공하며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주지사 임기 동안 그는 몇몇 영화의 카메오 출연을 제외하고는 모든 영화 출연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011년 주지사 자리에서 물러난 그는 할리우드 복귀를 선언했는데, 2013년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라스트 스탠드'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리고 이번에 터미네이터 제니시스를 통해 '터미네이터3: 기계들의 반란' 이후 12년 만에 T-800으로 복귀해 새로운 터미네이터 3부작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 '원초적 본능' 서린 눈빛…마이클 더글라스

     

    샤론 스톤의 관능미로 뇌리에 깊이 박힌 영화 '원초적 본능'(1992)에서, 죽음을 직감하면서도 치명적인 유혹의 덫에 빠지는 형사 닉 커랜을 연기한 마이클 더글라스를 기억할 것이다.

    유명배우 커크 더글라스의 맏아들로 1944년 태어난 그는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 할리우드 명배우의 계보를 이어오고 있다.

    1966년 영화 '팔레스타의 영웅'으로 데뷔한 마이클 더글라스는 1970년대부터 복잡다단한 현대인의 삶을 다룬 영화에 큰 관심을 지닌 제작자이자 배우로서 할리우드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1975년에는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제작자로 참여해 작품상 등 아카데미상 5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차이나 신드롬'(1979), '로맨싱 스톤'(1984), '장미의 전쟁'(1989) 등을 제작·주연하며 독보적인 입지를 쌓아 왔는데, 1988년에는 영화 '월 스트리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2000년 마이클 더글라스는 스물다섯 살 연하의 미녀 배우 캐서린 지타 존스와 재혼해 세간의 이목을 끌기도 했다. 당시 전 부인과 이혼하면서 약 800억 원의 위자료를 지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블랙레인'(1989)의 마이클 더글라스

     

    그러던 그에게 커다란 시련이 찾아온다. 2010년 인후암 말기 진단을 받은 것이다. 이로 인해 "영화계를 은퇴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돌기도 했지만,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이듬해 완치 판정을 받고 영화계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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