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 오늘은 조선 후반기 민란의 시대에 만연했던 화적떼 이야기입니다.
1875년 고종 12년의 기록을 보면 명화적(明火賊) 30~40명이 경기 고양의 한 점포에 난입해 군용자금과 장사꾼들의 물건을 약탈해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3명이 양주에서 체포됐는데, 1명은 병으로 죽고 2명은 처형됐습니다.
명화적(화적)은 말 그대로 주로 횃불을 들고 약탈을 자행했었는데요, 조선 전기에도 나타났지만 주로 19세기 후반에 집중적으로 발생했습니다.
명화적은 주로 빈농들로, 지주 및 관료들의 수탈이 심해지면서 명화적의 세력은 더 커졌고 주로 봉건지주와 관료, 여각, 객주 등이 약탈 대상이었으며 때로는 관청을 직접 공격하는 사례도 생겨났습니다.
고종 12년때 약탈의 대상이 됐던 점포도 소규모 상점이 아니라 대규모 위탁매매를 하던 일종의 객주였던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객주는 일반 백성들을 수탈하는 첨병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표적이 된 것은 아닐까요.
■ 세종 원년 (1418) : 상왕이 심온이 자결하게 하다
⇒ 태종이 외척세력을 없애서 세종이 편하게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왕비의 아버지 심온을 죽였다. 다만 왕비의 아버지라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다
■ 세종 7년 (1425) : 집성소학 100권을 중국에서 사오게 하다
⇒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중국에 가서 소학을 쉽게 풀이한 '집성소학' 100권을 사오게 했다. 이처럼 세종은 백성들의 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 고종 12년 (1875) : 무뢰배들이 고양군에 들어가 군용자금과 장사꾼들의 물건을 약탈
⇒ 화적떼가 고양의 한 점포에 난입해 상인의 물건 등을 약탈해갔다
도움말 : 김덕수 (통일농수산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