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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영화관인가…빼앗긴 '볼 권리'



영화

    누구를 위한 영화관인가…빼앗긴 '볼 권리'

    • 2015-02-02 06:00

    [한국 영화 안녕한가요 ①] "이 좋은 영화를 왜 못보나요?"

    한국 영화산업이 3년 연속 관객 1억 명을 넘어서며 최고의 호황입니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는 지금 안녕할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관객들은 잔뜩 화가 나 있고 좌절한 영화제작자들도 울분을 삼키고 있습니다. CBS 노컷뉴스가 화려함 속에 감춰진 한국 영화의 불편한 민낯을 연속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자료사진. 황진환기자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 사는 40대 가정주부 김소희 씨는 지난 30일 성남시 분당에 있는 오리 CGV의 상영관(125석) 하나를 학부모들과 함께 빌려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개훔방)'을 자녀와 함께 봤다.

    초등학생 딸과 함께 개봉 전부터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막상 수지지역에서는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영화를 보고 나서 '대관 상영하기' 잘 했다는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 "이 좋은 영화를 왜 아이들과 못보나요?"

    서울 한남동에 사는 변유정(42·여) 씨도 지난 27일 친구들과 함께 홍대 CGV에서 '개훔방' 대관상영회를 열었다.

    "아이와 함께 보기 좋은 아주 따뜻한 영화였어요. 전 소설도 읽었거든요. 주변에도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했던 아이들과 학부모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 좋은 영화를 왜 아이들과 함께 못보나요?"

    이처럼 개봉 초기부터 상영관 확보에 애를 먹던 영화 '개훔방'을 응원하기 위한 '대관 상영'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는 안철수 의원과 김수미, 타블로, 박휘순 씨 같은 유명인들도 포함돼 있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상영회에서 "'개훔방'이 좋은 작품인데 흥행성적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결국 대기업이 영화 제작도 하고 배급도 하고 영화관까지 독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개훔방'의 배급사 삼거리픽처스 엄용훈 대표도 SNS(사회관계망)을 통해 CJ와 롯데 등 대기업 배급사와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스크린 장악 전횡을 막아달라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호소문을 보내기도 했다.

    지난달 27일 홍대 CGV에서 열린 '개훔방' 대관 상영회(사진 제공=변유정 씨)

     

    ◈ "한국 영화산업 성장? 관객은 행복하지 않아요!"

    춘천영상공동체 '미디콩' 이민아 대표도 지난해 11월 황당한 경험을 했다.

    회원들의 관심이 컸던 영화 '다이빙벨'이 춘천에서 극장 상영 소식이 없어 CGV 춘천 명동점에 대관을 문의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그런데 며칠 후 CGV 본사영업지원팀에서 연락이 와 'CGV는 개봉작에 한해 대관을 승인하기 때문에 다이빙벨 대관상영은 불허한다'고 통보해 왔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은 지난해 10월 23일 선보인 이래 개봉 18일 만에 3만 관객(현재 5만)을 돌파하며 독립영화로는 보기 드문 흥행세를 보인 작품이다.

    하지만 당시 CGV와 롯데시네마 등 대형 멀티플렉스는 상영관을 단 한 곳도 열어주지 않은데 이어 대관 상영 요청도 거부하면서 관객들과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했다.

    영화 '다이빙벨'과 '개훔방'은 최근 IPTV와 VOD 다운로드 시장에서 전체 1, 2위를 다투며 영화팬들의 높은 관심을 입증하고 있다.

    이민아 대표는 "춘천은 독립영화 전용관이 없어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영화만 보는 '영화편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영화산업의 한 주체인 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를 고를 수 있는 권리가 지금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면서 "영화산업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영화팬들은 지금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 권력 눈치보며 관객 ' 볼 권리' 외면하는 멀티플렉스

    '다이빙벨'의 경우처럼 권력과 자본에 조금이라도 부담스런 영화는 멀티플렉스가 관객들의 볼 권리를 외면하고 앞장서 차단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한 젊은이의 제주 강정마을 여행을 담은 영화 '미라클 여행기'(감독 허철)의 경우 지난 15일 개봉했지만 서울시내 멀티플렉스 극장 가운데 롯데 시네마 서울대입구점과 CGV 압구정점 등 단 두 곳에만 걸렸다.

    특히 이들 대형극장은 개봉 전 영화 제작·배급사 등이 일정 금액을 주고 상영관을 빌려 진행하는 '언론시사회'까지 거부해 비난을 샀다.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생을 마감한 故 황유미 씨의 실화를 소재로 지난해 2월에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도 개봉 초기 상영관을 확보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롯데시네마는 개봉 이틀 전까지 상영관을 확정하지 않고 있다가 개봉시 단 7개 극장에만 배급했다. 또 대관 요청과 광고 집행까지 거부하다 시민단체에 의해 공정위에 신고를 당하기도 했다.

    지난 2013년 9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도 멀티플렉스에 의해 홀대받기는 마찬가지였다.

    CGV와 롯데시네마는 상영관을 단 한 곳도 배정하지 않았고 메가박스도 '천안함 프로젝트'를 개봉 이틀 만에 '관람객들 사이에 충돌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상영을 돌연 중단했다.

    네티즌들은 이에 항의해 '상영관을 늘려달라'는 온라인 청원운동을 벌여 5000명이상 참여하기도 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사무처장은 "영화는 보통 한 나라의 문화적 역량이 총체적으로 반영된 결과물"이라면서 "영화대기업들이 정권이 좋아할 만한 돈 되는 영화에만 매달리게 된다면 영화생태계가 초토화되고 문화강국의 길도 더욱 멀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리마오픽쳐스 제공

     

    ◈ 용산참사 다룬 영화 '소수의견'…언제 빛 볼까?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소수의견'처럼 애써 만들어 놓고도 개봉이 마냥 늦어지는 경우도 있다.

    '소수의견'은 CJ엔터테인먼트가 투자와 배급을 맡았다. 이 영화는 2012년 초 투자가 결정돼 이듬해인 2013년 3월부터 6월까지 촬영을 마쳤다.

    이후 후반작업을 거쳐 그해 10월 영화가 완성됐지만 1년 3개월이 지난 지금도 개봉시점이 정해지지 않았다.

    최근 '소수의견'의 제작사인 하리마오픽쳐스 임영호 대표는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CJ 측과는 올 상반기 안에 좋은 시기를 찾아 어떤 식으로든 개봉을 하자는 쪽으로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계에서는 이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이 우세하다. 영화계의한 인사는 "CJ그룹 이재현 회장이 실형을 선고 받고 상고심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CJ엔터테인먼트가 사회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소수의견'을 섣불리 개봉할 수 있겠냐"며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RELNEWS:right}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 이원호 사무국장은 "용산참사와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선 안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영화가 왜 개봉이 지연되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영화 대기업이 시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에 대해 지나치게 몸을 사리면서 국민의 '볼 권리'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참연연대와 민변, 청년유니온이 '영화관에 불만 있는 시민·네티즌 다 모여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다음 아고라에서 '영화관 개선 프로젝트' 캠페인을 시작해 그 결과가 주목된다.

    캠페인을 기획한 민변 성춘일 변호사는 "영화 대기업이 스스로 변할 의지가 없다면 결국 시민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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