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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안의 나는 男일까 女일까'…고민한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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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컷 리뷰]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세상 묵은 때 씻어내는 '참된 나' 찾기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신작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수입 영화사 찬란)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오랫동안 사랑받는 영화 '헤드윅'(2002)을 떠올리게 만든다.

    여장 남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이 그렇고, 영화를 관통하는 노래 한 곡이 극장을 나선 뒤에도 귓가를 맴돈다는 점 또한 그렇다.

    인류의 탄생과 맥을 같이 해 온 동생애 코드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주제의식은 두 영화를 닮은꼴로 만드는 핵심 요소다.

    헤드윅이 음악영화로서 강렬한 록 비트를 확성기 삼아 메시지를 강화했다면,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는 서스펜스 드라마의 긴장감을 활용해 몰입도를 높임으로써 주인공들의 삶에 공감하게 만든다.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는 헤드윅의 성 정체성 탐구를 확장시켜 보다 보편적인 인간의 정체성을 탐사하려 애쓴다는 인상을 준다.

    헤드윅이 이성애, 동성애 등으로 명확히 구분된 성 정체성을 바탕으로 사랑의 가치를 논한다면,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는 그러한 성 정체성조차 모호하게 설정해 둔 채 사랑을 이야기한다.

    이를 통해 이 영화는 자연스레 성뿐 아니라 계급, 인종까지 초월하는 인간의 조건으로서 보편타당한 사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짙은 화장을 하는 남자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 준다. 뒤 이어 카메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웨딩마치가 흐르는 가운데 치러지는 장례식장으로 옮겨간다.

    이 두 장면은 파이프를 그려 놓고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는 식으로 일상을 낯설게 만들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법, 제도처럼 우리가 살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것들이 사실은 그 시대 누군가의 필요에 의해 강제된 것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인 의문, 그것은 이 영화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인물은 클레어(아나이스 드무스티에)와 데이빗(로망 뒤리스)이다.

    데이빗은 클레어가 어린 시절 영원한 우정을 약속한 로라의 남편이다. 로라는 어린 딸을 담겨 두고 일찍 세상을 떠난다.

    영화는 초반에 어린 클레어와 로라가 처음 만나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자라면서 사랑에 울고 웃고, 각자 이성과 결혼을 하고, 결국 로라가 죽게 되는 긴 삶의 여정을 10여 분으로 압축해 보여 준다.

    이를 통해 클레어가 로라에게 몹시도 특별한 애정을 품어 왔다는 점을 일러 준다. 로라를 잃은 클레어의 아픔은 상상 이상이었으리라. 그것은 로라의 남편 데이빗도 마찬가지였다.

    영화 '나의 사적인 여자친구'의 한 장면. (사진=영화사 찬란 제공)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클레어는 어느 날 죽은 로라의 집을 찾았다가 뜻밖의 모습을 한 데이빗을 보게 되고, 남들에게 쉽게 말 못할 비밀을 공유하게 된 둘은 묘한 삶의 활력을 느끼며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이 영화는 사랑의 상실이 남긴 깊은 상처와 새로운 사랑이 가져다 주는 치유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그 안에서 클레어와 데이빗은 그동안 애써 외면하려 했던 참된 나를 찾아나선다.

    비밀의 공유가 삶의 활력으로 이어진 데는 클레어와 데이빗이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려 한 덕이 커 보인다.

    극중 세상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당당해지고 자유로워지려는 둘의 노력은 쇼핑을 하고, 별장으로 밀월여행을 떠나고, 클럽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 등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진다.

    영화는 중반 이후 클레어의 꿈과 상상을 통해 그녀 내면의 자아가 바라는 욕구나 걱정거리 등을 들려 준다.

    사람들의 시선, 다시 말해 성·계급·인종 등과 관련한 사회적 편견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지만, 그것으로부터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나약함은 이를 통해 오롯이 드러난다.

    데이빗이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 이유도 흥미롭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 자신을 이해해 주는 이가 바랐기에 기꺼이 남성도, 여성도 될 수 있었다. 그렇게 클레어도, 데이빗도 서로의 모습을 통해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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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은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하면서 각자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클레어와 데이빗의 언행과 복장은 내내 남녀 구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결국 이러한 노력은 극 말미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탄생시킨다.

    이 영화의 엔딩이 "내가 바라는 따뜻한 세상의 모습에 관객들도 공감하는가"라는 프랑수아 오종 감독의 의미심장한 물음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1월 8일 개봉, 108분 상영, 청소년 관람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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