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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의 눈으로 본 '카트'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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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트의 눈으로 본 '카트'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엄혹한 시대 '같이의 가치'에 눈뜨는 사람들의 외침…"함께 살자"

    영화 '카트'의 한 장면(사진=명필름 제공)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카트입니다. 대형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손수레죠.

    저는 하루 하루를 무료하게 보내는 때가 참 많답니다. 수많은 친구들과 한 곳에 모아져 있다가 마트를 찾는 이들의 손에 밀려가 짐을 싣고 다시 되돌려지는 일을 반복하니 그렇게 된 듯싶네요. '나도 이렇게 쓸모가 있구나'라는 생각에 나름 뿌듯한 마음이 든 적도 있지만, 다 한때더군요.

    최근 제 이름을 딴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내가 주인공인가' 싶어 호기심에 봤는데, 마트에서 함께 일하는 계산원, 청소원과 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얘기더라고요.

    매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생활해 왔지만 각자 맡은 일에 쫓겨 서로 별다른 관심을 둘 수 없던 처지인지라 몰랐는데, 영화 속 그들도 저만큼이나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고 있더군요. 뭐, 저야 쓰임새가 확실히 정해진 물건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영화에서 회사가 노동자들을 무슨 물건처럼 취급하는 모습에 사실 몹시 놀랐어요.

    스크린에 비친 회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하루 아침에 외주용역으로 돌려 버립니다. 그 와중에 들려온 "문제 있으면 법무팀에 문의해요"라는 한 간부의 말은 마치 '법은 우리 편이니까 아무 걱정 마'라는 선언처럼 느껴져 섬뜩했죠. 문득 '법은 최소한의 상식'이라는 통념이, 어쩌면 강요된 장밋빛 믿음일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극중 아침마다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 "고객은 왕이다"라는 최면 같은 구호를 외쳐 온, 각기 다른 이유로 대형마트 비정규직 노동자가 된 여성들의 꿈은 정규직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언제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벗어나 자식들 급식비나 수학여행비 마련할 걱정도, 가스비 전기세 수도세 낼 걱정도 덜 수 있을 테니까요.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데 사람이야 말해 무엇할까요.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내몰려 생계를 잇지 못할 처지에 놓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대접 해달라" "함께 살자"고 외치는 일밖에는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트를 점거하고 농성에 들어갑니다.

    하루면 끝날 거라 믿었던 점거농성은 법과 공권력, 그리고 언론매체를 등에 업은 사측의 버티기로 장기화됩니다. 사측은 "아줌마들이 해 봤자지"라며 그들을 마치 투명인간처럼 취급하고 지쳐서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립니다.

    한편으로는 불법으로 규정된 대체인력을 쓰고, 마트의 전기 공급을 끊고, 노조 집행부에 수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당신은 정규직으로 써 줄게"라며 몇몇 노동자들에게 접근하는 식으로 "봐라, 법 위에 있는 우리에게는 무기가 많지"라고 과시하기도 하죠.

    영화 '카트'의 한 장면(사진=명필름 제공)

     

    하지만 노동자들은 그동안 애써 외면해 왔을지도 모를 서로의 살아 온 이야기에 귀기울이고, '진상' 고객을 소재로 한 연극을 상연하기도 하면서 농성장을 해방구로 탈바꿈시킵니다. 고도로 분업화되고 규격화된 일터에서 앵무새처럼 "사랑합니다, 고객님"을 외치던 때는 볼 수 없던 웃음꽃이 그들의 얼굴에 피어난 것도 그러한 이유였겠죠.

    카메라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고용불안에 내몰리게 된 마트 정규직 노동자들의 합류, 농성장에 발이 묶인 가장의 부재 탓에 막막해진 생계를 잇고자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든 자식들의 처지까지 비추며, 이것이 단순히 비정규직 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님을 부각시킵니다.

    고용불안이 일상이 된 이 시대에 노동 문제는 특정 부류가 감당해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이 걸린 화두로 떠올랐다는 점을 들춰내는 셈이죠.

    이 영화가 던지는 물음은 분명해 보이더군요. "그러면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영화는 극 말미에 그 해답까지 넌지시 건넵니다. "자기들 문제로 닥치기 전까진 나서지 못했죠" "앞장서 줘서 고마워. 나라면 꿈도 못 꿀 일을 니 덕에 했어" "낙숫물이 바위 뚫는다"와 같은 극중 인물들의 대사, 그리고 함께했기에 바꿀 수 있다 믿고 행동으로 옮겼던 그들의 실천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연대'라 부르더군요.

    소위 1%로 표현되는 이들을 제외한, 일을 한 대가로 돈을 받아 살아가는 모든 이는 노동자라 불린다고 들었어요. 그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묶인 사람들은, 어느 광고 문구로도 쓰여 익숙해진 '같이의 가치'를 공유할 때 세상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힘을 얻게 된다는 말도요.

    이 영화에서도 드러나듯이 1%는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여타 생산시설처럼 사람인 노동자들까지 효율이라는 틀로 묶어두는데, 그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듯합니다. 어쩌면 옆에 있는 사람의 고통이 결국 내 고통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증명하면서 사람들에게 같이의 가치, 곧 연대의 필요성을 자연스레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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