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7일자 '유전질환으로 장애가 발생한 경우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의 글이 소개된 이후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유사한 피해를 입은 여러분들이 센터로 연락을 주었다. 본 글은 그 후속 기사다.
A 씨가 독서확대기를 통해 책을 보는 모습.
망막색소변성증은 개그맨 이동우 씨의 사연이 보도되면서 많이 알려진 병이다. 야맹증을 보이는 대표적인 유전질환으로 망막을 구성하고 있는 시세포층 가운데 빛을 감지하는 기능을 하는 세포들의 급격한 퇴화로 인해, 밤에 사물을 구별하기가 힘들어지고, 눈부심, 눈 흔들림 증세가 동반되면서 점차 시야가 좁아지면서 최종적으로 시력을 잃게 되는 질환이다.
일반적으로 10세 전후 야맹증으로 시작하여 수십 년에 걸쳐 서서히 진행하지만, 유전 방식, 합병증의 유무에 따라 진행 속도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 (출처: 한국망막학회 홈페이지)
A 씨(55)도 망막색소변성증 환자다. 1980년 병무청 징병신검 결과, 망막색소변성증과 유양돌기근치수술 후유증을 이유로 병역면제 처분을 받았다. A 씨의 당시 시력은 0.8, 1.0으로 일상 생활을 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다.
1990년부터 회사 생활을 시작했고 영업, 재무, 생산관리 등의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해왔다. 그러다가 2010년 시력이 갑자기 나빠진 탓에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현재 A 씨는 한빛맹학교에 다니고 있다. 강북구 수유동에 위차한 시각 장애 학생을 위한 사립 특수학교이다. 이 학교에서는 늘어나는 중도장애인의 자립 지원을 위하여 10년 전부터 이료(안마, 침) 재활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A 씨는 이료재활 과정에 입학하면서 '취업'이라는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되었고, 가족을 생각하며 열심히 교육을 받고 있다.
망막색소변성증 환자와 장애연금
정상적으로 생활하다가 갑자기 시각장애인이 되었을 때의 심정은 어땠을까.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웠다. 컵라면을 사러 학교 근처에 나갔다가 30분을 헤매다 끝내 빈손으로 돌아왔을 때, 이게 현실임을 깨닫고 참담함을 느꼈다.", "사람은 서로 인정하고 인정받으며 살아가는데, 나는 지금 아무 것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 우울할 뿐이다." A 씨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다.
A 씨는 현재 한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이고 좋은 눈의 교정시력은 0.02로, 독서확대기 없이는 글씨를 읽을 수 없다. 그리고 두 딸은 아직 학생이다. 이제 생계유지는 배우자인 부인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경력이 없는 부인이 직장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그나마 구한 직장에서 받는 급여로는 최소한의 생계유지도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얼마 전 출근 길에 교통사고까지 당했다. A 씨는 '가정이 풍비박산 날 수도 있겠구나'하고 위기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국민연금공단에 장애연금 급여 신청을 하게 되었고, 결과는 자격미달로 거부당했다.
국민연금법상 장애연금 수급권자는 '가입 중에 생긴 질병'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에서는 망막색소변성증 환자라도 급격히 시력이 저하된 시점을 구체적으로 따진 후 그 시점을 의학적·객관적으로 질병이 발병하였다고 볼 수 있는 시기로 보아서 장애연금의 수급권 부여를 결정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대법원 2006. 7. 28. 선고 2005두16918 판결[국민연금장애미해당결정처분취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공단에서는 '장애가 발생한 시점이 국민연금 가입 중이어야 하는데, 선천성질환으로 연금 가입 전인 병무청 신검에서 이미 확인되었다'는 이유로 여전히 거부 처분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