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가 비싼 대가를 치루고 2년간 이어진 미국에서의 연비과장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미국 환경청과의 합의를 통해 1억 달러의 벌금을 내기로 했고, 온실가스 규제 차원에서 적립한 2억 달러 상당의 포인트를 삭감 당하게 됐다. 연비 과대 표시 관련 벌금으로는 사상 최고 액수라고 한다. 이와는 별도로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연비와 관련한 집단소송에서 소비자들에게 3억 9천 5백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한 바 있어 벌금과 합의금을 포함해 연비 문제로 5억 달러 가까운 돈을 날리게 된 셈이다.
미국에서 현대·기아차의 연비 과장 논란은 지난 2012년 소비자들의 문제 제기로 시작됐다. 이후 미 환경청은 당시 미국에서 팔리던 2011~2013년형 모델 20개 차종 가운데 싼타페와 엑센트, 리오, 소울 등 13개 모델의 연비가 부풀려졌다며 하향 조정할 것을 권고했다. 현대·기아차는 규정 해석과 시험 방법의 차이에 따른 오류일 뿐 법규위반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자발적으로 연비 표기를 수정하고 소비자들에 대한 보상에 이어 이번에 최종적으로 벌금에 합의하게 된 것이다.
연비 문제는 미국 시장에서 승승장구 하던 현대·기아차의 발목을 잡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성능 좋고 연비도 괜찮은 차로 인식되던 상황에서 악재가 된 것이다. 미국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시장 점유율은 연비 문제가 터지기 전인 2011년 8.9%로 역대 최고수준을 보였지만 이후 계속 하락세를 보였고, 올해는 7%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만큼 소비자들의 신뢰에 금이 갔다고 볼 수 있다. 연비에 대한 미국의 엄격한 잣대와 제재는 자국의 자동차 업계 보호를 위한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소비자를 외면한 편의주의적 발상의 연비 표기가 근본적 원인이 됐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내에서도 그동안 ‘뻥연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자동차업계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산자부와 국토부의 밥그릇 다툼에 묻힌 측면도 있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은 업계의 책임이 크다. 국내 소비자가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현대·기아차는 지난 8월 뒤늦게 산타페 2.0디젤 2WD AT모델의 연비를 낮추고 소비자 보상 방안을 밝혔다. 한국GM도 최근 정부의 연비 검증 결과 발표를 앞두고 뒤늦게 4년간 팔아온 쉐보레 크루즈의 연비과장을 인정하고 자발적 보상 방안을 발표했다.{RELNEWS:right}
현대·기아차는 지금 원화 강세와 내수부진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미국 시장은 엔저를 등에 업은 일본차들이 활개를 치고 있고, 국내 시장은 수입차의 비중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경제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연비는 자동차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기술력으로 승부해야 한다. 꼼수를 통해 소비자를 속이려는 것은 엄청난 비용을 떠안게 되는 것은 물론 신뢰를 저버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