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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 ‘로맨스가 필요해’ 등 이제는 연기자로 더욱 친숙한 UN 출신 김정훈이 앨범 ‘나의 이야기’를 발표하고 오랜만에 가수로 돌아왔다. 2005년 UN해체 후 무려 7년만이다.
하지만 거창하게 ‘가수로 컴백’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싶지는 않단다. 7년만에 발표한 앨범 역시 그가 학창시절을 보낸 90년대 유행하던 곡 중 정수만 모은 리메이크 앨범이다. 이오공감의 ‘한사람을 위한 마음’, 미스터투의 ‘하얀겨울’, 이브의 ‘너 그럴 때면’등 90년대를 보낸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흥얼거렸을 법한 노래를 엄선했다.
“왜 리메이크 앨범이냐, 요즘 유행하는 복고에 편승하는 것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건 아니에요. 제대 뒤 1년 여동안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해왔어요. 처음에는 신곡발표를 염두에 두고 작곡가들을 만났죠. 하지만 요즘 아이돌이 부르는 음악을 하자니 엄두가 안났고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 트렌드에 뒤쳐질 것 같아요. 그러던 찰나, 예전 감성을 리메이크로 표현하자는 생각이 들었죠. 당시 노래들이 워낙 좋았았잖아요.”
앨범에 들어가는 곡들은 김정훈이 직접 선곡했다. 그의 설명을 빌자면 김정훈의 10대 시절을 수놓은 BGM같은 곡들이라고. 이오공감의 ‘한사람을 위한 마음’은 김정훈이 처음으로 용돈을 모아 구입한 기념비적인 카세트테이프다. 이외에도 각각의 곡들이 리메이크되기까지는 각각의 사연이 오롯이 내제돼 있다.
“이오공감의 ‘한사람을 위한 마음’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즐겨듣던 노래에요.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는 천안에 계신 하덕규 선배님을 직접 찾아 가서 리메이크 허락을 받았어요. 2000년대 빅히트했던 조성모 씨의 ‘가시나무’도 좋지만 원곡의 매력은 쫓아갈 수가 없는 것 같아요. 고민 끝에 선배님을 찾아 보고 리메이크를 허락받았죠. ‘너 없는 동안’의 김원준 선배님은 가끔 만나는 사이죠. 모두 제가 학창시절 즐겨들었던 노래들이에요. 공부만 했던 것 같지만 제게도 ‘응답하라 1997’같은 시절이 있었죠. 아! 이오공감 테이프 구입 뒤 두 번째로 산 테이프는 서태지와 아이들 2집이었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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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 ‘엄친아’보다 연예인 김정훈이 좋아김정훈은 연예계 자타공인 엄친아다. 경남 진주의 내로라하는 수재였던 그는 1998년, 서울대학교 치의예과 진학 뒤 길거리캐스팅을 통해 UN으로 데뷔했다. 곱상한 외모, 부담스럽지 않은 가창력에 서울대 치대생이라는 배경은 그를 단숨에 스타덤에 오르게 했다. 하지만 그는 서울대를 자퇴하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에 편입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길, 보장된 미래를 뿌리치고 불투명하고 험난한 연예계 생활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저는 어린 시절부터 망원경으로 별을 보는 것을 좋아했어요. 하지만 학창시절, 치대 진학을 권유받은 뒤 제 적성과 무관하게 치대에 진학했죠. 현미경으로 세포를 들여다보는 것은 정말 곤혹스러웠어요. 저와 관련된 기사 댓글에 아직도 ‘다시 치대로 돌아가라’는 내용이 많지만 이제 그런 댓글에 흔들릴 나이는 지난 것 같아요. 이제는 다른 일 하라 그래도 못할 것 같습니다.”
공부만 했을 것 같은 김정훈이 스스로의 내제된 끼를 알아챈 것은 데뷔 후 예능 프로그램 ‘서세원쇼’의 토크박스 코너를 통해서였다고. 김정훈은 “‘토크박스’ 코너 출연을 위해 모창을 이십개 넘개 준비해 갔다. 그 때 내 안에 있는 끼를 극대화한 것 같다”라고 회고했다. 이어 “연기도 내 안에 있는 일부분을 꺼내 키우는 것”이라며 웃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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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로 데뷔했지만 지금은 연기가 좋아요. 2006년 드라마 ‘궁’에서 발연기로 시청자들 앞에 섰을 때는 잘 몰랐는데 군대 제대 후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연기에 재미를 붙였어요. 더 많은 캐릭터를 해보고 싶고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꼬리표도 떼고 싶다는 소망이 들어요. 이래서 나이를 괜히 먹는 게 아닌가 봐요. (웃음)
학창시절 1등만 달렸던 김정훈이지만 이제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행여 음반이 대박이 안나도, 드라마 시청률이 저조해도 ‘다음에 잘하자’라고 생각하는 낙천주의자가 됐다고. 그는 스스로의 변화에 만족한다며 “지금의 내가 좋다”라고 강조했다.
[BestNocut_R]“드라마 ‘궁’ 촬영 당시 만약 작품이 망하면 공대에 재입학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궁’의 반응이 좋았고 저는 군 제대 후 마음의 안정도 찾았어요. 이제 연예활동으로 수입을 얻게 되면 연구소를 차려서 우리나라 공학 발전에 이바지하고 싶어요. 학창시절 가졌던 꿈을 미약하나마 지원하는 게 제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