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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88세 여운택 할아버지의 통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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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

    '일제 강제징용' 88세 여운택 할아버지의 통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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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정부.기업의 반성 더 바래…위안부 문제도 해결됐으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이 나오자 당시 일본제철에 끌려갔던 여운택(88) 할아버지는 목 놓아 울었다.

    이번 소송의 원고인 여 할아버지는 판결 직후인 24일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때 노예처럼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한 채 매일 공장에서 일을 해 가시 같이 말랐었다"며 "70여 년 전의 일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뼈가 갈리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여 할아버지는 이날 대법원 선고를 직접 나와 지켜보고 싶었지만 고령인데다 건강이 좋지 않아 집에 머무른 채 판결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는 "일본 정부와 기업이 잘못했다고 고백했으면 하는, 보상금보다 더 큰 바람이 있다"고도 했다.

    이어 "일본군 위안부에 끌려갔던 여성들 가운데 살아계신 분들도 적절한 조치와 보상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이번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한 피해자는 여 할아버지를 비롯해 모두 5명으로, 지난 1941~1943년 사이 일본 오사카제철소 등으로 강제징용 됐다.

    여 할아버지 등은 화로에 석탄을 넣고 깨뜨려 뒤섞거나 철 파이프 속으로 들어가 석탄찌꺼기를 제거하는 위험천만한 일을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맡았다고 했다.

    일을 하고서도 한 달에 2~3엔 정도의 용돈만 받았을 뿐, 월급통장과 도장은 기숙사 사감에게 빼앗겼다.

    이후 공습으로 제철소가 파괴되자 여 할아버지 등은 청진에 건설중이던 제철소로 배치됐고, 12시간 동안 토목공사를 하면서도 임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고 박창환 씨를 비롯한 또다른 소송의 원고 6명은 일본 히로시마에 위치한 미쓰비시 중공업으로 끌려가 다다미 12개 넓이의 방에서 많게는 12명이 함께 생활했다.

    숙소 주변에는 철조망이 쳐져 있었고, 근무시간은 물론 휴일에도 헌병이나 경찰 등에 의한 감시가 삼엄했다.

    한 달에 이틀만 빼고 매일 철판을 자르거나 동관을 구부리는 일을 하다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돼 파괴되자, 부상을 입은 채 밀항선 등을 이용해 귀국했다.

    이후 강제징용 전 다니던 직장을 잃는 등 어려움을 겪었을 뿐 아니라 피폭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호흡곤란, 피부질환, 시력 감퇴 등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 할아버지의 소송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해마루의 장영석 변호사는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나서지 않는 것에 위헌 결정을 내렸듯이 과거사 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의지를 밝힌 시금석과 같은 판결"이라며 "원고들께 축하드리고 사법부에도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이어, 일본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손해배상에 임할 것으로 보이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피고측 소송대리인인 법무법인 김앤장 측에서 재판과정에서는 모든 주장을 들어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 판결문을 기다려보자는 입장도 보였다"면서 "신일본제철은 국내 기업인 포스코와 상호 투자를 하기도 하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판결을 수용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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