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인 혼혈'이라는 놀림을 받으며 생긴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연쇄 방화를 저지른 10대가 경찰에 붙잡혔다.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정 모(17)군. 태어난 지 얼마 안돼 아버지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정 군을 버렸다.
결국 정 군은 한국인 조부모 품에서 자랐지만 성장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외모가 한국인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
초등학교에 들어간 정 군에게는 졸업할 때까지 '러시아 XX'라는 별명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중학생이 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친구들의 따돌림은 계속됐고 심한 우울증에 빠지기도 했다. 설상가상으로 사춘기까지 겹치면서 정 군은 가출과 범죄를 일삼았고 결국 중학교 2학년 2학기 때 자퇴를 했다.
그래도 정 군은 희망을 놓지는 않았다. 2년 간의 방황 끝에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지난해에는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도 했다.
하지만 남다른 외모와 출생에 대한 열등감은 그를 계속 외톨이로 만들었다. 입학한 지 3개월도 못 채우고 다시 정 군은 학교를 떠났다.
그러던 지난 해 6월, 설상가상으로 가출한 정 군을 찾아다니던 할머니가 교통사고로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정 군은 어머니와 다름없는 존재인 할머니가 자신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것에 무거운 죄책감을 가지게 됐다.
게다가 할아버지까지 정 군을 질책하고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정 군은 또다시 집을 뛰쳐나왔고 노숙을 하기 시작했다.
정 군은 세상이 자신을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나섰다. 겨우 찾은 돌파구가 하필이면 '방화'였다.
정 군은 지난 3월 3일 밤 12시쯤 광진구 화양동의 한 연립주택 주차장에 쌓인 종이박스에 불을 붙여 2,200만원 상당의 재산상 피해를 입히는 등 이날 1시간 동안에만 3차례에 걸쳐 불을 낸 혐의를 받고 있다. [BestNocut_R]
정 군은 또 지난 1월 16일 친구인 전 군과 함께 영화 '괴물'에서 화염병을 던지는 장면을 똑같이 해보자며 모교인 ㅇㅇ부속중학교에서 화염병을 던져 학교 건물 일부를 태운 혐의도 받고 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왕따와 놀림을 받자 출생에 열등감을 가진 다문화 가정 자녀가 주택가 빌라 등에 수차례 불을 지른 혐의로 정 모(17)군을 구속하고 범행에 함께 가담한 전 모(17)군을 불구속 입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