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화
영화 '봄, 눈'으로 24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앞둔 윤석화. 하늘도 그녀를 반기는지 난데없이 봄눈을 뿌렸다. 봄눈이 내리던 지난 2일,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윤석화를 만났다. 봄눈을 직접 맞은듯한 백발의 숏커트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녀는 "봄눈은 일종의 기적"이라며 "영화 속에도 일상의 기적 같은 소망이 숨어 있다"고 소녀같은 감상에 젖어들었다.
윤석화의 영화 출연은 의외의 산물이다. 영국에서 연극기획과 제작에만 전념하던 그녀는 시나리오를 받은 즉시 출연 결정을 내렸다. 시나리오를 건넨 감독 및 제작사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간이다. 김태균 감독은 "만약 윤석화씨가 캐스팅을 거절했다면 영화의 운명도 사라졌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윤석화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고 전제한 뒤 "내가 시나리오를 읽고 난 느낌과 감독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은지 그런 확신이 필요했다"며 "이야기를 해본 결과 좋은 작품을 만들 감독이란 확신이 들었다"고 밝혔다.
'봄, 눈'은 평범한 엄마인 순옥이 가족들과 가장 아픈 이별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휴먼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등 엄마와 가족의 이별을 그린 영화는 꾸준히 관객들과 만나왔다. 즉, 새로울 게 없다는 뜻이다.
이에 윤석화는 "뻔하고 통속적인 이야기임에도 예술성 혹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메타포가 감동으로 전해질 수 있는 것은 결국 간발의 차이"라며 "그 차이가 진정성이라 생각하는데 이 영화에서 그걸 느꼈다"고 자신했다.
'봄, 눈'만이 가진 매력도 분명했다. 그녀는 "보통 엄마와 이별을 그린 작품에서는 엄마가 죽으면 끝나는데 이 영화의 백미는 엄마의 죽음 이후, 즉 에필로그에 있다"며 "단순한 슬픔이 아닌 슬픔이 만들어낸 흔적을 보여준다. 이게 바로 전달하고 싶었던 삶의 소망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기존 영화들이 장편 소설이었다면 이 작품은 단편 소설이라고 얘기하고 싶다"며 "짧지만 그 안에 심은 메타포들로 인해 자기를 이입시킬 수 있는 것 같다"고 비유했다.
주로 연극,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했던 터라 드라마나 영화 출연작은 손에 꼽을 정도다. 24년 만에 복귀도 복귀지만 카메라가 주는 낯설음도 만만찮다. 또 오랜 기간 연극 무대를 진두지휘했던 윤석화이기에 영화 현장에서 자신도 모르게 나서진 않았을까.
그녀는 "배우는 작품에 마음을 뺏기면 여지없이 몰입하고, 이야기에 대한 확신과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그냥 간다"며 "어색함이나 어려움은 없었다"고 베테랑다운 면모다. 또 "촬영 현장에선 정확하게 감독의 디렉션을 따라야 한다"며 "그리고 현장 뒤에선 작품을 위해 가감없이 생각과 의견을 주고 받는다. 감독님도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더라"고 선을 그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윤석화의 삭발이다. 실남가는 암 투병 환자를 표현하기 위해 자청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놀라움을 자아냈다. 그녀는 "여배우에게 머리를 자르게 한다는 게 힘든 일이다. 그래서 먼저 얘기를 했던 것"이라며 "이 나이에도 뭔가 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뿌듯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자긍심도 든다"고 웃음을 띄었다.[BestNocut_R]
그렇게 마음을 먹었어도 막상 손수 머리를 싹둑 짜를 때 느낌은 남다를 터. 윤석화는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막상 머리를 자를 땐 만감이 교차하더라"며 "하고 나니 감독님이 울먹거리면서 '영화 한편을 위해 많은 욕심을 부린것 같아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나 역시 참았던 눈물이 흐르면서 '내가 하겠다고 한거고, 제대로 전달될 수 있다면 괜찮다'고 했다. 마음이 따뜻해지더라"고 당시 순간을 떠올렸다. 앞으로 삭발을 또 해야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할거라고.
윤석화는 순옥을 연기하면서 자신의 엄마를 떠올렸다. 그녀는 "어머니가 암으로 4개월 선고를 받으셨는데 기적처럼 이겨냈다. 그리고 나중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며 "긍정적이고, 사랑의 방향으로 자식들을 생각하는 모습이 순옥과 엄마가 닮은 점"이라고 엄마를 그리워했다. 또 "언젠가 이 세상과 이별을 해야할때가 있을텐데 순옥처럼 삶을 남기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다짐했다.
윤석화는 또 하나의 선물을 스크린에 남겨뒀다. 엔딩 그레딧이 올라갈 때 흘러나오는 노래를 직접 불렀다. 윤석화는 "극 중 순옥의 엄마와 순옥의 애창곡이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다"라며 "순옥의 노래인 그 곡을 직접 불렀다"고 밝혔다. 26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