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안성기가 'OK'를 하면서부터…."
2007년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석궁 사건'을 소재로 한 법정실화극 '부러진 화살'을 들고 13년 만에 돌아온 '노장' 정지영 감독. 그간 꾸준히 영화를 준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사석에서 만난 문성근이 추천한, '석궁 사건'을 다룬 르뽀 소설을 접한 뒤 "초저예산으로라도 꼭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로 영화화에 착수했다.
정지영 감독은 노컷뉴스와 만나 "책을 읽기 전에는 어떤 '똘끼'있는 교수가 판사를 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발생했구나라고 생각했다"며 "책을 읽고 나서는 완전히 생각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이어 "무엇보다 '테러'란 단어로 인해 진실이 묻혀버린다. 언론의 책임도 크다. 지금부터라도 '석궁 사건'으로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소재면에서 상업성은 물론 투자와 캐스팅 등 모든 부분에서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 정 감독은 "안성기가 OK를 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돌아봤다.
그는 "주위에서 '(안성기와) 친하니까 부딪혀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시나리오를 들고 찾아갔다"며 "'당신과 두 작품('하얀전쟁', '남부군')을 했고, 그 작품 모두 당시 정치, 사회적으로 껄끄러웠지만 성공했다. 이 작품도 정치, 사회적으로 걸끄러울 거다. 그러고 아마 성공할거다'라고 설득했다"고 설명했다.
"안성기는 연기만하다 죽어갈 사람인데 평생 이런 캐릭터 만나는 게 쉽지 않다. 연기자가 안 해 본 캐릭터를 해본다는 것, 그게 가장 컸던 것 같다."
안성기를 비롯한 박원상, 김지호, 나영희 등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참여했지만 캐스팅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다. "안성기 덕분에 설득이 쉬웠던 것 같다"는 게 정 감독의 말이다. 다만 박준 변호사 역의 박원상의 경우엔 우여곡절이 있었다.
정 감독은 "박원상은 처음부터 후보군에 있었는데 안성기가 결정되면서 좀 더 인지도 높은 배우를 캐스팅하고 싶었다"며 "여러 명을 알아봤는데 쉽지 않았고, 결국 다시 박원상한테 가게 됐다. 얼마나 서운했겠냐. 만나자마자 '나한테 연기로 복수하라'고 했다"고 웃음을 보였다.
'부러진 화살'은 사법부에 정면으로 날 선 칼을 들이대는, 묵직한 메시지를 담고 있으면서도 유쾌하다 못해 시종일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정 감독은 "난 유머가 별로 없는 사람"이라며 그 웃음의 근원을 김경호 교수(안성기)와 박준 변호사(박원상)의 캐릭터로 꼽았다.
정 감독은 "공판 공방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도 정말 재밌었다"며 "다만 드라마를 끌고 가야할 중심 인물이 문제였다"고 돌아봤다. [BestNocut_R]
김명호 교수, 한 명만으로 영화 전체를 끌고 가기엔 단조로울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 정 감독은 "자료를 구하기 위해 실제 인물인 박훈 변호사를 만났는데 이 친구가 '물건'이더라. 그래서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두 사람의 캐릭터를 연구했다"고 밝혔다.
영화계 진보인사인 정지영 감독이 연출을 했다는 점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낳기도 한다. 정 감독은 "보수의 가치를 존중하는 김 교수과 진보적 성향의 박 변호사가 만나 '법대로 하자'는 거다"라며 "보수와 진보 성향의 사람이 같은 목적을 향해 가는 게 재밌지 않나"라고 대신했다.
일각에선 '제2의 도가니'의 탄생을 예측하기도 한다. 정 감독은 "사실 '도가니' 흥행을 보고 놀랬다"며 "그만큼 오늘날 사람들이 이 사회에 울분이 있다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부러진 화살'도 기대해 볼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솔직하게 전했다. 1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