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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쉬고 싶어요. 근데 다른 사람이 하면 질투 나서 죽을 것 같아요.”
이렇게 연기만 해도 될까 싶다. 2010년, 자신을 가장 핫한 배우로 만들어준 ‘거침없이 하이킥’ 이후 쉼없이 작품에 출연해 연기를 하고 또 했다. 영화 ‘푸른소금’과 ‘비상’을 찍고,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에 출연했다. 그리도 새해 벽두부터 드라마 ‘패션왕’ 촬영에 돌입한다.
지난 연말 종영한 ‘뿌리깊은 나무’ 이후 며칠간의 짧은 휴식을 갖게 된 배우 신세경(22)을 만났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꾀 할 말이 많은 모양이었다. 그녀의 말처럼 지금까지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줘야 할 것들이 더욱 무궁무진할테니 말이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신세경이 맡은 소이는 끝내 죽음을 맞았다. 소이뿐만 아니라 채윤(장혁)도, 무휼(조진웅)도, 가리온 정기준(윤제문)도 죽었다.
“재밌는 결말이라기보다 소이라는 캐릭터가 가진 목적과 의도를 가장 여지없이 보여준 결말이 아니었나 싶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남아있는 이도(한석규)가 안쓰럽긴 하지만, 24부 내내 만족했듯이 결말 역시 만족해요.”
유독 신세경은 작품 속에서 자주 죽는다. 영화가 아닌 TV 드라마에서 한 번 죽기도 힘든데 ‘거침없이 하이틱’ 이후 또 죽었다. “아직 작품을 많이 안했는데, 그 중에 거의 죽으니 다 죽었다고 생각하시나봐요. 앞으로는 사는 작품이 더 많아 지겠죠(웃음). 슬픈 결말들이긴 하지만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건 작가님들에 대한 믿음인 것 같아요.”
죽는 것 말고 신세경이 연기한 캐릭터들의 특징은 또 있다. 가난하고, 나이보다 성숙해보인 다는 것.
“제가 (나이가)들어보는 편인가봐요”라고 담담하게 말한 신세경은 “제가 아직 어려서 그런지 나이 들어보인다는 말이 그다지 기분 나쁘지 않아요. 소이는 극중 서른살 정도인데, 정작 보는 사람들이 소이의 나이를 정확히 모르는 것 같아 선입견 없이 연기했어요. 간혹 소이가 살아온 인생의 성숙함에 비해 너무 어리게 연기하는 것 아닐까 고민한 적은 있지만, 일부러 나이를 들어보여야겠다는 생각은 한적 없어요. 감정이 더 우선이었으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동안 함께 연기했던 상대배우들이 연륜이 있는 터라 더욱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푸른소금’에서 23살이나 많은 송강호와 로맨스를 펼쳤던 신세경은 ‘뿌리깊은 나무’에서 대선배 한석규, 14살 연상의 장혁과 호흡을 맞췄다.
“보통 저희 또래의 배우들이 대선배들과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저는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하이킥’ 이후 정말 큰 사랑을 받았지만 내 스스로 일궈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송강호 선배님과 연기할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배우로서 영광이었고, 이번에도 한석규 선배님, 장혁 선배님과의 연기는 다신 없는 기회이자 행운이죠.”
‘뿌리깊은 나무’는 훈민정음 반포를 둘러싼 임금 이도와 밀본 정기준, 그리고 겸사복 강채윤의 싸움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속에서 소이는 ‘양념’ 같은 역할을 했다.
“모든 캐릭터는 등장하는 신이 많고 적음의 차이일 뿐이지 다 중요한 역할과 임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연기자들 모두 빈틈없는 수비로 시청자들을 끌어들였죠. 처음부터 제가 주목을 받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것이라는 기대도 바람도 없었어요. 이 방대한 역사적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 자체가 주였죠. 근데 소이의 역할이 이 만큼 강조되고 작가님이 애착을 쏟아냈다는 자체가 감사할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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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작품에서 스스로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극중 불거진 존재감 논란도 다른 배우들과 비교해 모자란 연기력도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들이댄 엄격한 잣대 때문이었다.
“매번 나에게 좀 더 객관적이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려고 했나봐요. 좋은 선배님들을 만나고 연기를 할수록 식견이 넓어지다 보면 만족하는 게 아니라 어느 게 문제인지 더 도드라지게 판단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죠. 그렇다 보니 자꾸 예민해지고 날이 서서 뾰족해지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다음에는 무조건 더 완벽해야 할 것 같은 강박.
너무 지나치게 자신감이 넘쳐도, 너무 부족함만을 알아도 안되는 데 이제는 그 중간지점을 찾아야 할 것 같아요. 평생 내 자신에게 만족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뿌리깊은 나무’를 끝낸 지 3일 만에 신세경은 SBS 드라마 ‘패션왕’ 대본 리딩에 들어갔다. 영화 ‘비상:태양가까이’ 개봉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또 새로운 작품에 들어간 것이다.
“생각해보니 3년 정도 정말 쉬지 않고 계속 작품을 했더라고요. 그렇다보니 스스로 몸이 망가져가는 걸 느끼기도 해요. 이번에는 정말 쉬어야지 했는데 ‘패션왕’ 대본을 보니 그렇게 안되더라고요.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냥 그 작품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하면 질투가 날 것 같아서 선택했죠(웃음).”[BestNocut_R]
이쯤 되면 작품을 보는 눈이 있다고 해야할까. 작품성이든 흥행성이든 탄탄한 작품을 골라내는 눈이 있는 것 같다는 말에 그녀는 “감히 흥하고 망하고를 평가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어요. 상업적인 것은 제가 계산하고 싶지도 할 수도 없는 일 같아요. 저는 작품으로 성공해야겠다, 인정을 받아야겠다 하는 악바리 같은 욕심은 없어요. 그저 지금 눈앞에 있는, 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 먼저에요”라고 답했다.
다만 그녀는 스스로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거 아닌가 싶어요. 적당한 휴식과 호흡, 여유를 가져야 하는데 너무 달리기만 하는 거 같아서. 주위사람도 만나고 나에게 시간을 좀 주고 싶기도 한데, 말했듯이 질투나는 작품을 만나면 어쩔 수가 없어요. 뭐 이렇게 바쁜 것도 한 때겠죠? 언젠가는 하고 싶어도 쉬어야 할 때가 올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