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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일' 김수현 작가는 왜 끝까지 불친절했나

    • 2011-12-2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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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연의 죽음으로 막내린 '천일의 약속'

     

    김수현 작가는 잔인했다. 시청자들을 위한 친절은 끝까지 베풀지 않았다.

    드라마 히트제조기라 불리는 김수현 작가는 4년 만에 멜로드라마 ‘천일의 약속’을 내놓았다. ‘청춘의 덫’을 시작으로 ‘불꽃’ ‘완전한 사랑’ ‘내 남자의 여자’ 등 파격적이면서도 애절한 사랑을 주로 그렸던 김수현 작가는 이번에 서른살 여주인공에게 찾아온 알츠하이머를 다뤘다.

    불치병에 걸린 여주인공 서연(수애)과 그녀를 곁에서 지켜주는 남자 지형(김래원)의 지고지순한 사랑. 더욱이 그 불치병이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란 사실은 처음부터 흥미로운 소재였다. 이 둘의 사랑이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리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그러나 김수현 작가는 한국 드라마에서 골백번은 더 등장했을(심지어 김수현 작가 자신도 ‘완전한 사랑’에서 다뤘던) 불치병이란 소재를 뻔하지만 뻔하지 않게, 슬프지만 눈물을 짜내지 않게 그렸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천일의 약속’이 친절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주인공 이서연이 그랬다. 서연은 처음부터 약혼자가 있는 남자 지형을 탐했다. ‘삼류 드라마 속 여주인공이 되기 싫다’며 스스로 끝을 정해놓고 만났지만, 예기치 못한 병으로 결국 지형과 결혼을 했다. 온갖 못된 말을 퍼부었지만, 병을 얻은 대신 그와 결혼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예정된 수순처럼 하루하루 기억을 잃어가는 서연은 충분히 불쌍했지만 동정 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자신의 기억을 더 빨리 단축시킴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고집해 낳은 딸 예은을 단 한번도 안아주지 않았다. 딸과 헤어지는 순간에도 통곡을 하거나 안아주는 대신 “안녕. 잘있어”라며 담담한 듯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웃었다. 지형의 말처럼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게 말이다.

    서연은 “어제보다 내일 더 사랑한다”는 지형을 잊고 그를 ‘아저씨’라고 불렀고, 자신을 친자식보다 더욱 아껴준 고모를 “자기 딸 주려고 내 옷을 훔쳐가는 아줌마”라고 생각하기도,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된 자신에게 지형이 기저귀를 권하자 “내가 애기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늦은 밤 홀로 나와 기저귀를 찼다.

    결국 그녀는 죽는 순간까지 마음껏 아파하지 못했다. 이를 보는 시청자 중 일부는 “뻔뻔한 이서연에게 동정이 가지 않는다”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고 늘 제 멋대로 인 여주인공을 보기 불편하다”는 반응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서연의 이러한 행동은 앞서 그녀의 삶을 통해 설명됐다. 남들보다 몇 배는 운 나쁜 인생을 살아온 서연은 늘 강한 척, 자신있는 척을 해야 했기에 죽음으로 가는 문턱에서 조차 ‘척’을 해야 했던 것이 아닐까. 스스로 불쌍해지는 것보다 못되게 변하는 것이 편했을 테니까 말이다.[BestNocut_R]

    마지막회 역시 김수현 작가는 친절하게 서연이 죽는 과정을 설명하지 않았다. 서연이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 주위 사람들이 어떻게 그녀를 떠나보냈는지, 지형의 해바라기였던 향기가 그녀의 죽음 후 어떤 길을 택했는지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지형이 서연의 무덤 앞에서 “나는 아직...아직이다 서연아”라고 말했을 뿐이다.

    이번 작품을 통해 김수현 작가는 극과 극의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천일의 약속’이 불치병을 소재로 한 여느 드라마들과는 같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이 극중 서연이 그랬듯 김수현 작가만의 고집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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