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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천운영, 고문기술자 이근안 소재로 소설 '생강' 쓴 이유?



정치 일반

    소설가 천운영, 고문기술자 이근안 소재로 소설 '생강' 쓴 이유?

    생강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1년 4월 1일 (금)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소설가 천운영


    ▶정관용> 시사자키 2부 시작합니다. 오늘 2부는 아주 특별한 분을 한 분 모셨는데요, 데뷔작 <바늘>, 그리고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 단편집 <그녀의 눈물사용법=""> 등등 그동안 발표하는 작품마다 화제를 몰고왔던 소설가 천운영 씨입니다. 이번에 고문기술자 이근안 씨를 모델로 하는 <생강>이라는 소설을 들고 또 한번 우리들에게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데요, 소설가 천운영 작가를 함께 만납니다. 어서 오십시오.

    ▷천운영> 예, 안녕하세요?

    ▶정관용> 장편소설로는 이번이 두 번째이지요?

    ▷천운영> 예, 두 번째예요.

    ▶정관용> <잘 가라="" 서커스="">를 내신 게 언제였지요?

    ▷천운영> 아, 2004년인가요. 거의 6년, 7년 가까이 됐지요. 첫 장편 내고.

    ▶정관용> 굉장히 오랜만에 소설 또 한편 들고 오셨네요.

    ▷천운영> 예, 좀 오래 걸렸어요.

    ▶정관용> 원래 이렇게 오래 걸려요? 늦게 쓰세요?

    ▷천운영> 예, 좀 다른 사람들에 비해선 천천히 내는 편이네요.

    ▶정관용> 고문 당해보셨어요?

    ▷천운영> (웃음) 어, 생활이 고문이기도 하지요.

    ▶정관용> 그런 거 말고, 진짜 고문.

    ▷천운영> 아니요.

    ▶정관용> 옛날 운동권이셨어요?

    ▷천운영> 아니요. (웃음) 제가 90학번인데요, 그 시절에는 글쎄요. 운동권, 이라기보다는 누구나 다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그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한 시절이었지요. 무엇을 하고 있든 간에.

    ▶정관용> 90학번이면 그때는 학교에서 운동을 하더라도 잡혀가서 고문당하고 이런 일은 별로 없었던 시기이기는 한데.

    ▷천운영> 어, 그러니까 박종철 열사 사건이 87년이었고요. 그리고 고문당하다 죽는 일은 없었지만 91년에 시위 도중에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요. 학생들이... 그 시기에 학교를 다녔어요.

    ▶정관용> 그런 91년 중 시위 중 사건 같은 것도 기억하시는 것 보니까 운동권이긴 운동권이셨네요? 약간 주변부였을 지는 몰라도.

    ▷천운영> (웃음) 예... 잘 모르겠습니다.

    ▶정관용> 어쨌든 그 당시 젊은 친구들의 고민들, 80년대, 90년대 초반 다 그랬었다, 그 정도로 두고요. 제가 뭐 난데없이 고문당해보셨어요, 라고 한 것은 왜 이런 모티브를 잡았을까. 고문기술자 이근안. 과거에는 꽤 유명한 분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다 잊혀진 분인데, 왜 이걸 가지고 소설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까, 이게 제일 궁금했거든요.

    ▷천운영> 어, 내용적인 면에서는, 예전에 고문을 하고, 당하고 그런 시절이 있었다, 라는 걸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요, 저를 자극했던 건, 그 당시 한참 고민했었던 선과 악, 혹은 악행의 문제에 관한, 내용적인 면에서 고문기술자의 이야기가 저를 끌어당겼고요. 그런데 나중에 쓰고보니까 선과 악, 혹은 악행의 문제만이 아니라 아까 처음 질문하셨듯이, 어쩌면 내가 보냈던 그 시절의 감추고 있었던 것. 그것을 이제는 뭔가 꺼내보고 싶은 맘이 있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그 고문기술자가 11년 가까이 도피생활을 했는데, 그 동안에 다락방에 숨어지냈다, 라는 것이 저를 또 자극했어요. 그것은 제 소설의 가장 원천적인 다락방과 연결이 되어 있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나중에 알았는데.

    ▶정관용> 본인이 어렸을 때 다락방이 있었어요?

    ▷천운영> 예, 있었어요.

    ▶정관용> 다락방에서 뭐 숨어서 책읽고 이런 걸 좋아했어요?

    ▷천운영> 예, 저에게 다락방은 되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요. 숨어서 책읽고 보물을 숨겨둔 공간이기도 하고, 몰래 혼자서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했고요. 방이 하나밖에 없어서 더 그랬었고.

    ▶정관용> 그게 어느 시절이에요? 중고등학교 때? 그보다 어렸을 때?

    ▷천운영> 예, 한 중학교 때까지 있었지요. 그리고 또 아픈 기억도 있고요. 그것은 다른 단편소설, <모퉁이>, 혹은 <그녀의 눈물="" 사용법="">이라는 소설에도 나와있는데, 가족의 아픈 기억도 거기 숨겨져 있어요.

    ▶정관용> 다락방에?

    ▷천운영> 예.

    ▶정관용> 어떤 아픔이에요?

    ▷천운영> 어,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요. 말해도 되려나 모르겠는데, 칠삭둥이로 태어나서 하루를 살다 갔어요. 그런데 그 하루를 다락방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는데, 그게 저한테는 어릴 때 충격이었나 봐요.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인데. 그것이 뭔가 이상하게 죄책감 같은 것. 내가 잘못한 건 아니었는데.

    ▶정관용> 예, 알겠습니다. 그런 나쁜 기억, 게다가 혼자만의 공간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그런 공간인 다락방. 그런데 이근안이 다락방에 11년 동안이나 숨어있었다?

    ▷천운영> 예.

    ▶정관용> 그걸 한번 어떻게 그려보자, 이렇게 된 거로군요.

    ▷천운영> 예.

    ▶정관용> 지금 세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첫 번째, 선과 악, 악행의 문제. 두 번째는 90년대 초반 뭔가 감추고 있었던 것을 한번 이야기해보자. 감추고 있었던 것은 뭐예요?

    ▷천운영> 어, 젊은 시절, 혹은 대학시절을 생각하면은요,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그 청년시절에 그냥 도망만 가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소설 쓴 것도 도망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던 것 같네요.

    ▶정관용>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대학 시절에? 본인이?

    ▷천운영> 예.

    ▶정관용> 그런데 이 소설에 그런 게 그려지나요?

    ▷천운영> 어, 다른 방식이기는 하지만요. 딸아이의 고난, 혹은 어쩔 수 없이 자기와는 상관없이 겪어야 했던 일들, 그것에 좀 들어가 있지요.

    ▶정관용> 고문기술자의 딸?

    ▷천운영> 예.

    ▶정관용> 그래서 그 딸의 행동이 어떤 의미에서는 천운영 작가가 대학시절에 했던 모습이 지금 들어가 있군요?

    ▷천운영> 예, 그런 모습도 들어가 있고요. 사실은 지금 현재의 모습과도 더 닮아있는 것 같아요.

    ▶정관용> 지금도 열심히 도망다니고 계세요?

    ▷천운영> 예. (웃음)

    ▶정관용> 맨 첫 번째 이야기한 것이 선과 악, 악행의 문제. 정말 어렵네요.

    ▷천운영> 음... 네. 겁도 없이 어려운 문제에 덜컥 손을 댔어요. 악행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은 언제 나쁜 짓을 하지? 이런 고민, 질문이었어요.

    ▶정관용> 답은요?

    ▷천운영> 음... 제가 내린 답은요, 궁지에 몰렸을 때. 그것이 자신의 믿음과 연결됐을 때,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서 발버둥칠 때, 그것이 나쁜 방향으로 나아갔을 때 악행을 저지른다. 아주 평범하게요.

    ▶정관용> 천성이 악인인 것이 아니고?

    ▷천운영> 예. 천성이 악인이어서 그 속에 가진 것을 내뿜는 게 악행인 게 아니라요, 누구나 다 저지를 수 있는 것이..

    ▶정관용> 악행이더라?

    ▷천운영> 예. 크건 작건 간에. 물론...

    ▶정관용> 앞에 설명하신 것이 상황이 닥쳤고, 거기에 대한 자기 확신이 있고, 그리고 어떨 때요?

    ▷천운영> 궁지에 몰렸을 때.

    ▶정관용> 그리고 자기의 확신이 있을 때?

    ▷천운영> 예.

    ▶정관용> 그럴 때 누구나 그런 짓을 하더라?

    ▷천운영> 나쁜 방향으로 갔을 때는요. 그러니까 그 믿음을 의심하지 않을 때, 궁지에서 벗어나려고 내 것이 아니라 다른 것에 해를 가해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때. 뭐 여러 가지 방식으로 나오겠지요.

    ▶정관용> 왜 고문기술자를 모티브로 쓰고자 했느냐는 첫 질문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세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첫 번째 선과 악, 악행의 문제. 두 번째 내가 뭔가 도망다니려고 했던 감추고 싶은 모습 같은 것을 드러내보고 싶은 것. 또 하나는 다락방이라고 하는 공간. 이게 다 들어있어요, 이 소설에? 그러니까?

    ▷천운영> 예.

    ▶정관용> 그래서 이것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있습니까, 혹시?

    ▷천운영> 어, 음... 공포를 똑바로 쳐다보라는 것. 그것이 나아갈,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혹은 악행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

    ▶정관용> 아, 공포를 똑바로 바라보라?

    ▷천운영> 예, 그리고 다락방에 숨긴 것이 무엇인지 그것도 똑바로 쳐다보라.

    ▶정관용> 자기 각자 마음 속 어딘가에 숨겨놓은 것?

    ▷천운영> 예.

    ▶정관용> 천운영 씨는 지금 그렇게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요?

    ▷천운영> 제가 이 소설을 쓰면서 얻은 것은요, 내가 못할까봐 전전긍긍한 것, 가지지 못해서 갖고 싶어서 안달냈던 것, 그러나 가질 수 없었던 것, 잘하고 싶은 것, 이런 것들 때문에 두려워서 소설을 잘 못 쓰던 시기가 한 시기가 있었는데요. 마치 슬럼프처럼. 이 소설을 다 쓰고 나니까 내가 못 가진 것이 뭔지 알겠고요, 그리고 내가 잘하는 것을 알겠어서 조금 더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 공포가 없어지니까 자신감이 붙어서... 소설을 이제 더 써도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니까 저 개인적으로도 이 소설을 다 마치고 났더니 어떤 공포감에서 벗어난 것 같아요.

    ▶정관용> 그러니까 이게 고문기술자를 소재로 했다, 라고 해서 그 시대의 시대상황 같은 것을 그리고 이 시대의 시대상황 같은 시사적인 어떤 메시지를 던지는 그런 것으로 보통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이 아니라 어떻게보면 지극히 인간 본성의 문제, 그것도 어찌 보면 다들 나약할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어떻게 하다가 악행으로 가게 되고, 또 누구는 도망가게 되고, 그리고 그 도망으로부터 자기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얼 해야 하는가, 그런 걸 그리셨다?

    ▷천운영> 예. 그 시기에 이런 일이 있었다, 라고 진실을 밝히는 것, 이것은 르포이거나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요.

    ▶정관용> 제가 직업이 시사평론가이다 보니까 그런 것 아닐까, 라고 했는데. 저도 작품을 봤습니다만, 확실히 그런 건 아니더라고요.

    ▷천운영> (웃음)

    ▶정관용> 그런데 이근안 씨를 만나보셨어요?

    ▷천운영> 직접 만나보지는 못했고요. 만나려고 애를 썼으나, 전화통화만 했어요.

    ▶정관용> 전화통화하면서 당신을 소재로 소설 쓰겠습니다, 했어요?

    ▷천운영> 예.

    ▶정관용> 그랬더니 뭐라고 하시던가요?

    ▷천운영> 어, 목회자로 사시겠다고. 조용히 살게 내버려달라고 하시면서...

    ▶정관용> 그러니까 쓰지 말아달라는 얘기지요?

    ▷천운영> 그 쓰지 말아달라는 것이 아니고요. 만날 수 없다... 뭘 하든지 상관은 없으나 나는 조용히 살고 싶다, 가 답이었어요.

    ▶정관용> 음.. 딱 한번 통화를 하셨군요, 그러니까?

    ▷천운영> 어, 두 번 했어요.

    ▶정관용> 혹시 책 나오고 나서는?

    ▷천운영> 안 했어요. 저는... 보내드리고 싶은데, 예. 그것까지는...

    ▶정관용> 자료를 보니까 실제 이근안 씨는 아들밖에 없다고 하던데요.

    ▷천운영> 예, 아들이 셋 있었다고 하대요. 딸은 없었어요.

    ▶정관용> 딸은 없고.

    ▷천운영> 예.

    ▶정관용> 그런데 그 딸과의 관계는 그러니까 완전히 허구인 거지요?

    ▷천운영> 예, 그렇지요. 보통 아들과 아버지와의 관계는 너무 익숙한 게 있어요. 역사 혹은 이런 것으로 생각되어지는 게 많아서. 지금 현실의 젊은이들을 생각한다면 역사와 상관없이, 나는 역사와 무관해, 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생각한다면 아들보다는 딸의 이야기가 더 적당할 것 같았어요.

    ▶정관용> 그러니까 실제로 도피 과정에 그 가족 내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그런 것을 바탕으로 한 건 전혀 아니군요, 그러니까?

    ▷천운영> 예, 그렇지요. 그러니까 도피 기간, 혹은 그가 퇴직금을 얼마를 받을 예정이었다, 라든가 이런 상황들 말고 다른 이야기들. 도피를 어디로 했고, 다락방에 들어왔고, 이런 것들은 거의 대부분 허구예요.

    ▶정관용> 그러니까 다락방에서 숨어있었다고 하는 것은 하나의 팩트인데, 그 다락방에서 이렇게 이렇게 했다, 라고 하는 것은 전부 창작인 거고?

    ▷천운영> 예.

    ▶정관용> 그러니까 고문기술자가 고문을 했었다, 그리고 그 고문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어떠어떠한 행동들을 그 후에 했다, 그리고 숨어있는 동안의 기간이 어떠했다, 이러한 몇 가지 빼면 전부 가짜군요, 그러니까?

    ▷천운영> 예.

    ▶정관용> 하긴 그러니까 소설이지요.

    ▷천운영> 예, 그러니까 소설, 이지요.

    ▶정관용> 그 딸을 통해서, 딸과 고문기술자와의 관계를 통해서 아까 쭉 던지신 선과 악, 악행의 문제, 공포를 바라보느냐, 안 바라보느냐의 문제, 이런 것들이 그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 투영되어서 나타나는 거지요?

    ▷천운영> 예, 그 둘의 관계와 그리고 그 주변에 나타난 피해자.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타나는 거지요. 흔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혹은 악행을 저지른 사람과 그것을 당한 사람의 이야기가 있을 때는 이들을 어떻게 화해시킬 가에 사람들이 자꾸만 몸이 가게 되는데요, 화해인지 뭔지는 모르겠으나 그 가운데에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그러나 전혀 무관하지 않은 딸이 그 중심에 서서 그 둘을 바라보게 되지요.

    ▶정관용> 결국 화해했나요? 이 소설에서는?

    ▷천운영> 음... 화해라기보다는 위로를 받았을 것 같아요.

    ▶정관용> 피해자가? 그 딸을 통해서 위로를 받았다?

    ▷천운영> 예.

    ▶정관용> 직접 고문기술자에게서 위로를 받은 것은 아니고?

    ▷천운영> 그렇지요. 그리고 취재하면서도 느꼈고, 쓰면서도 생각해봤지만, 십년의 기간 동안 도피를 하고 복역을 하고 나서 이후의 행보들을 보면 저는 반성했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그래서 그것이... 그리고 또 피해를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말로는 할 수 있지만 정말 용서라는 건 할 수 없는, 몸에 각인된 고통이 있기 때문에, 그런데 딸에게 이야기를 하고, 혹은 딸의 이야기를 듣고 딸과 함께 있으면서...

    ▶정관용> 위로를 받는다?

    ▷천운영> 예.

    ▶정관용> 위로를 받았을 뿐이지 용서를 한 건 아니고?

    ▷천운영> 예.

    ▶정관용> 책 시작이 아주 생생한 고문 장면으로 시작을 하던데, 그건 고문피해 입으신 분들을 많이 취재를 하셨나봐요?

    ▷천운영> 예, 고문... 이근안에게 고문을 받은 사람도 취재를 했고요, 그 외에 간첩단 사건, 요즘에 다시 재판 과정에 있던, 고문당한 사람들, 재판과정 찾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그것도 그 후에는 어느 정도 지나고 나서 그만뒀는데요, 그때 시절을 떠올리면 눈물부터 나오더라고요. 여전히. 십년, 이십년이 지났어도. 그래서 그 고통이 저한테 자꾸만 전달되니까. 소설을 쓰면서 어떤 중립을 유지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후에는 그 고통을 외면하자가 아니라, 내가 어떤 선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만...

    ▶정관용> 그만 만나야겠다?

    ▷천운영> 예, 그만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거를 고문하는 사람 입장에서 쓰다보니, 이것이 고문을 아름답게 미화하는 건 아닐까, 이런 걱정을 좀 하면서, 그러나 자기가 가진 기술을 마음껏 발휘하는 고문기술자의 그 모습을 정확히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아름답지만 처절하게 쓰자, 쓰면서도 많이 고통스러웠어요. 저 자신도. 제가 직접 누군가를 고문하는 느낌... 이었지요.

    ▶정관용> 그런데 또 그게 진짜 고문하는 사람의 속마음인지도 모르는 거지요?

    ▷천운영> 예.

    ▶정관용> 그냥 그렇게 규정을 한 거지요?

    ▷천운영> 예.

    ▶정관용> 이게 처음 그 작품을 구상하고 기획해서 취재하고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걸렸어요?

    ▷천운영> 어, 처음 얘기를 듣고 조금씩 조금씩 살을 부풀려간 게, 그리고 취재를 한 게 한 일년 정도 걸렸고요, 그리고 창비 문학 웹진에 5개월 동안 일일 연재를 했고요, 그 후에 한 7개월 정도 전면적인 수정을 거쳐서 그러니까 한 2년 정도 걸렸네요.

    ▶정관용> 일일 연재는 이번에 처음이셨지요?

    ▷천운영> 예, 처음이었어요.

    ▶정관용> 어떠셨어요?

    ▷천운영> 실은 많이 써놓고 시작을 했어야 했는데, 재고가 없이 시작을 하는 바람에, 매일 매일 일수 찍는 기분으로 하루 벌어 하루 찍는 일을 5개월 가까이 했더니 무지 힘들었어요. 힘들었는데, 즐거웠던 건...

    ▶정관용> 펑크를 내지는 않았어요?

    ▷천운영> 아, 이틀 펑크를 냈습니다. 그런데 아주 당당하게.

    ▶정관용> 그래도 대단하시네요. 5일을 매일... 몇 매 정도씩을 발표하신 거예요?

    ▷천운영> 하루에 열 매 정도 매일매일.

    ▶정관용> 그런데 딱 2번 펑크를 냈다?

    ▷천운영> 예. 펑크를 낸 게 못 써서라기보다는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서... 라고 하면서. 어쨌든 펑크 없이 연재를 했고요, 아주 단순한 시간들이었어요. 자고, 먹고, 쓰고. 자고, 먹고, 쓰고. 그 시간이 참 좋았어요. 그래서 일일 연재가 힘들었지만 저에게는 아주 소중한 시간들이었어요.

    ▶정관용> 또 하실래요, 그러면은?

    ▷천운영> 어, 이번에는 거의 다 쓰고 나서 고치는 과정으로 일일 연재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관용> 그래서 그런지 아까 연재가 끝나고도 거의 7개월? 거의 새롭게 쓰신 셈이라고도 봐야 되나요, 어떻게 봐야 하나요?

    ▷천운영> 음... 캐릭터가 아주 바뀌었고요. 그리고 이야기 구성도 조금 더 정리가 됐고. 많이 바뀌었지요. 그 기본은, 골격은 그대로 있지만 구성과 캐릭터, 그 다음에 작은, 결말을 향한 흐름들 이런 것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한 7, 80%가 바뀐 것 같은데요.

    ▶정관용> 7, 80%나? 그럼 완전 새로 쓰신 거네요, 거의.

    ▷천운영> 예. 그런...

    ▶정관용> 장편 두 편을 쓰신 셈이네요, 그러니까.

    ▷천운영> 어, 맞아요. 그런 공력이 들었네요.

    ▶정관용> 그럼 연재가 사실 별로 도움이 안 되었을 수도 있네요? 아닌가요? 연재를 해놓고 나니까 뭔가 보여서 이게 이렇게 된 건가요?

    ▷천운영> 예, 그렇지요. 그리고 생활의 리듬을 아주 간결하게 하는, 그런 습관적인 것도 좋고.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연재는, 어떤 면에서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너무 몰려서, 무언가를 쏟아내는 느낌.

    ▶정관용> 알겠습니다. 아까 90학번이라고 스스로 말씀하셨으니까 이제 나이가 드러난 셈인데요.

    ▷천운영> 아, 그러네요.

    ▶정관용> 우리나이로 40대 초반. 처음 등단하신 게 몇 년이었지요?

    ▷천운영> 2000년이요. 그때가 서른살이었어요.

    ▶정관용> 2000년. 그러니까 벌써 11년이 됐고. 등단작품이 <바늘>?

    ▷천운영> 예, <바늘>이요.

    ▶정관용> 그 작품이 굉장한 주목을 받았잖아요.

    ▷천운영> 예, 지금 이게 고문기술자 이야기라면, 그 다른 기술을 가지고 있는데, 문신하는 여자의 이야기였지요. 저는 몰랐는데, 어쨌든, 충격이었었나 봐요.

    ▶정관용> 그 다음해인가, 언제인가 아무튼 주요 일간지의 문학평론, 신춘문예 당선작들이 거의 다 <바늘>을 소재로 쓴, 그런 해도 있지 않았습니까?

    ▷천운영> 한 2003년, 4년쯤 된 것 같은데 신춘문예 평론 당선된 사람들 중에 셋이 <바늘>로 평론을 썼었지요. 그런 적이 있었네요.

    ▶정관용> 그러니까 뭔가 문제작이라고 꼽혔던 작품이었던 것 같고.

    ▷천운영> 예, 뭔가 해석하고 싶은 요소가 있는 걸까요. 뭐 그런 생각을 잠깐 해봤네요.

    ▶정관용> 그래서 그런지 주로 장편을 잘 쓰시지 않고 단편집들을 쭉 몇 권 내시다가 <잘 가라="" 서커스="">라고 하는 장편을 하나 내셨고. 솔직히 <잘 가라="" 서커스="">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문단에서.

    ▷천운영> (웃음) 저는 주목했습니다.

    ▶정관용> 그래서, 많은 분들이 또 소설가 천운영 씨의 작품을 쭉 분석하는 문학평론가들이 데뷔작인 <바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소설가 천운영에게 끼치고 있는 어떤 트라우마 같은 게 있다, 거기에서 좀 벗어나서 더 발전해야 할 텐데,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도 있지 않았습니까?

    ▷천운영> 예, <바늘>로 처음 등단했을 때 어떤 선배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소설이 너에게 소설가의 길을 열어주겠지만, 너에게 아마 평생 지고 갈 족쇄일 거다,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그 말을 이해를 못했거든요. 그런데 매 작품 발표할 때마다 첫 작품과 비교를 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뭔가 더 강렬한 것, 더 센 것, 이런 걸 원하는... 아니, 무엇을 원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런 게 있었어요. 그리고 나서... 그래서 더 강렬한 것이 아니라 저는 이게 한 시기를 갈무리하는, 그리고 <바늘>이 소설가의 길을 열어줬다면, <생강>은 제 생각에는 앞으로 소설가를 계속해도 될 거라는 그 길을 열어준 소설 같아요.

    ▶정관용> 지평이 좀 열리셨군요?

    ▷천운영> 예.

    ▶정관용> 그런데 왜 제목이 <생강>이에요?

    ▷천운영> (웃음) 생강, 하면 각자 떠오르는 맛과 향과 느낌을...

    ▶정관용> 아, 그게 좀 다양하지요, 사실.

    ▷천운영> 예. 그 다양한 기억을 떠올려보게 하라고요. 예, 뭐 생강, 왜 생강이냐는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았는데요, 그래서 이래요, 라고...

    ▶정관용> 여러 맛이 있다, 여러 맛을 각자 생각해봐라, 이 소설에도 그런 여러 맛을 담았다, 그런 말이로군요.

    ▷천운영> 예.

    ▶정관용> 다음 작품은 뭘 또 기획하고 계십니까?

    ▷천운영> 이번에 장편소설 쓰는 데에 재미가 좀 나서요, 다음 작품도 장편을 지금 기획하고 있고요, 몇 가지 이렇게 자극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아직 몸을 부풀리는 단계는 아니어서 내용을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 이 소설의 어쩌면 해결하지 못한 것을 해결하는 연장선상이 될 것 같아요.

    ▶정관용> <생강>의 연장선상으로? 역시 선과 악, 공포, 인간의 도망감... 이런 등등이 막 나오는 겁니까? 어려워요, 어려워.

    ▷천운영> (웃음) 자꾸 어려운 것에... 해결이 안 되었으니까요. 한번 더 해보지요.

    ▶정관용> 소재는 뭐가 될지 아직 모르고요?

    ▷천운영> 음, 아이들 이야기인데요... 예, 아이들 사이에서...

    ▶정관용> 알겠습니다. 지금 이제 서서히 준비하시고 있는 단계이니까. 여기까지만 여쭤보기로 하고요.

    ▷천운영> 예.

    ▶정관용> 이번에 <생강> 만드시느라고 참 수고 많으셨고, 다음 번에도 좋은 작품 기대하겠습니다.

    ▷천운영> 예, 고맙습니다.

    ▶정관용> 독자들의 좋은 반응 있기를 기대하고요, 고맙습니다. 소설가 천운영씨와 만났고요, 잠시 뉴스 들으시고 35분에 다시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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