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튼 박사
일제 강점기 일본에 맞서 독립운동에 나섰던 한 외국인의 사연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다.
화제의 주인공은 윌리엄 린튼(한국명 인돈.1891-1960) 박사.
대전 한남대학교 설립자로 선교 활동을 위해 1912년 한국을 찾은 인돈 박사는 1919년 3.1운동 당시 선언문 작성을 도운데 이어 같은 해 5월에는 미국 애틀란타에서 열린 미국 남부지역 평신도대회에 참석, 한국의 실상과 독립운동 정신을 국제사회에 전하고 지지와 지원을 호소했다.
군산 신흥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37년 인돈 박사는 일제의 신사 참배를 거부, 학교를 자진 폐교했고 40년에는 이 같은 항일 운동으로 일제로부터 추방되기도 했다.
45년 해방과 함께 한국을 다시 찾은 인돈 박사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당시 일본의 신사터에 공중화장실을 만든 것.
인돈 박사는 이 같은 항일.독립 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제91주년 3.1절을 맞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됐다. [BestNocut_R]
한남대 인돈학술원 천사무엘 원장(철학박사)은 “인돈 박사는 일본에 의한 조선 멸망의 역사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며 “일본이 가장 신성시하는 신사가 있던 자리에 공중화장실을 만든 것은 일제 만행에 대한 박사의 분노가 얼마나 깊었는지를 잘 대변해준다”고 말했다.
56년 대전기독학관을 설립하고 59년 대전대학(현 한남대학교)으로 인가를 받아 초대학장으로 취임한 인돈 박사의 한국사랑은 후손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선배 선교사 유진 벨(수피아여학교 설립자)의 딸인 샬롯 벨(한국명 인사례)과 결혼해 낳은 4형제 가운데 셋째 휴 린튼(한국명 인휴.1924-84)과 넷째 드와이트 린튼(인도아.1927-2010)은 미국 유학을 마친 뒤 한국에 돌아와 교육과 의료봉사활동을 펼쳤다.
휴의 부인 베티(인애자.83) 여사 역시 순천에서 결핵재활원을 운영하며 30년 이상 결핵퇴치 사업에 기여했으며 그 공로로 국민훈장과 호암상을 받기도 했다.
린튼 아들들
이와 함께 휴의 아들 스티브(인세반.59)는 지난 94년 유진벨 재단을 설립해 지금까지 북한 의료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 동안 그가 북한에 지원한 의약품과 의료 장비만 400억원 어치가 넘는다.
1912년부터 시작된 인돈 박사의 한국 사랑이 세대와 세기를 넘어 100여년간 이어져오고 있는 셈.
천사무엘 원장은 “인돈 박사를 비롯해 당시 충청과 호남지역에서 한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외국인 선교사가 450명이 넘는다”며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부국(富國)으로 발돋움하는데 이들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는 점을 한국 사회는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인돈 박사의 국민훈장 애족장 추서식은 1일 제91주년 3.1절 기념식이 열리는 천안 유관순 기념관에서 거행되며 추서는 인요한 신촌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이 유족을 대표해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