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
#1. 경기도 안산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김 모씨는 지난 4월 30일쯤 A 업체의 SC제일은행 계좌로 약품대금 1억 1천만 원을 잘못 송금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몇 시간 후 송금이 잘못 된 사실을 알게 된 김 씨는 곧바로 지급정지 신청을 한 뒤 SC제일은행 측에 송금된 돈의 반환을 요청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처리 절차가 복잡했다. A 업체는 SC제일은행으로부터 수십 억 원의 대출을 받고, 제 기일에 상환하지 못해 부도처리된 상태였던 것.
SC제일은행 측은 "A 업체 계좌로 송금된 돈 1억 1천만 원을 A 업체의 채무와 상계처리했다"며 돌려주기를 거부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 씨는 곧바로 법원에 A 기업 통장에 대한 압류 신청을 했고, 6개월 여 뒤인 10월 말 '은행 측은 김 씨에게 돈을 돌려주라'는 부당이득금반환과 함께 채권압류 및 추심결정 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SC제일은행은 "A 기업의 채권자로서 채무자의 통장에 입금된 돈을 정상적으로 인출해 간 것"이라며 "압류 판결 효력은 법원에서 압류문서가 은행에 도달하는 시점에 발생되므로 그 전에 입금된 돈은 정상적으로 상계 처리된다"고 버텼다.
#2. 중소기업인 B사는 2006년 7월 거래업체에 물품대금을 송금하는 과정에서 직원이 계좌번호를 잘못 입력해 예전 거래회사의 계좌로 1억7천여만 원을 송금해버렸다.
하지만 예전 거래회사는 부도로 인해 폐업한 후 보험료 미납을 이유로 예금채권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근로복지공단에 압류된 상태였고, B사는 "착오로 인해 잘못 송금됐다"며 은행 측에 송금액 반환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처럼 한 번 송금을 잘못하면 나중에 이 사실을 알았더라도 이를 돌려받지 못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일단 어떤 계좌로 돈이 입금되면 그 돈은 원인관계를 떠나 그 계좌의 주인 즉, 예금주에게 소유권이 있다.
SC제일은행 관계자는 "인터넷뱅킹이나 텔레뱅킹, CD기로 입금된 돈에 대한 예금 반환 의무는 예금주가 지게 돼 있다"면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대포통장으로 돈이 잘못 들어갔어도 은행이 임의로 통장에서 돈을 빼내 피해자에게 돌려줄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오입금을 확인한 피해자들은 일차적으로 은행에 '지급정지'를 신청하지만, 지급정지는 일시적으로 은행 거래를 막기만 할 뿐 법적인 효력이 없어, 채권자가 이를 인출해가더라도 법적으로 제재할 수는 없다.
결국 피해자가 예금주를 상대로 손해배상 및 부당이득반환의 민사소송을 통해 돈을 되찾는 수밖에 없지만 이를 진행하는 데 6개월 이상 걸릴 뿐 아니라, '이체된 돈이 실수로 인해 잘못 입금된 돈'이라는 확정판결을 받더라도 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오입금된 계좌의 예금주가 신용불량자이거나 대출 연체자, 세금 등 체납자라면 국가나 은행, 국세체납 기관들이 채권을 갖게 돼 이를 근거로 해당 통장에 입금된 돈을 압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원이나 일선 은행들은 "피해자들이 판결까지 시간이 오래걸리는 압류 절차 대신, 미리 오입금된 계좌의 예금주 재산을 압류해 거래를 금지하는 '가압류' 절차에 나설 것"을 조언한다.
이정호 변호사는 "지급정지신청은 법적인 효력이 없지만, 가압류 신청을 하게 되면 은행이나 다른 기관에서 오입금된 돈을 인출해 갈 수 없다"면서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법원을 찾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