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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30도에 가까운 초여름 날씨를 보이고 있지만 방송가 내부는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할 만큼 썰렁하다. 지난 봄, 방송 3사는 경제불황에 따른 광고수주 악화로 대다수 프리랜서 진행자들을 하차시켰다. 이에 따라 허참, 왕종근, 정은아, 김성주 등 시청자들에게 친숙했던 MC들이 익숙한 브라운관을 떠나게 됐다.
하지만 이 여자, 최은경은 뭔가 다르다. 올 초 MBC 시트콤 ‘태지, 혜교, 지현이’로 생애 첫 연기에 도전하더니 연이어 MBC 라디오 FM4U(91.9Mhz) ‘최은경의 음악동네’ DJ자리까지 꿰찼다. 기존에 진행하던 MBC ‘해피타임’도 방송가의 칼바람을 피해 벌써 4년째 출연하고 있다.
이쯤되면 그녀만의 비법이 궁금해진다. ‘웁스’라는 유행어로 시트콤계를 평정하고 KBS 아나운서 출신으로 MBC 라디오 DJ를 맡은, 유난히 하이톤의 웃음소리를 자랑하는 최은경을 만나봤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나운서 최은경은 지난 1995년 KBS 공채 21기 아나운서로 방송가에 첫 발을 내딛었다. 김재원 아나운서 ,김홍성 아나운서, 한상권 아나운서 등이 그의 동기다.
예나 지금이나 아나운서가 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경쟁률을 뚫어야 하지만 당시 사회 초년생이었던 최은경은 ‘뭘 모른 채’ 아나운서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저는 소위 말하는 ‘끼’라는 게 없었어요. 학교 다닐 때도 오락시간을 가장 싫어하고 발표하는 걸 두려워하는 학생이었죠. 만약 아나운서가 오락적인 요소가 있는 걸 알았다면 시험을 안 봤을지도 몰라요. 물론 시험도 극적으로 붙었지만요. (웃음)”
‘끼’가 없었다고 토로하지만 그는 KBS에서 가장 튀는 여자 아나운서였다. 보수적인 KBS 아나운서실에서 유일하게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 아나운서였다.
“지금은 옷차림에 대한 규제가 덜하지만 당시만 해도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 아나운서는 저 하나였어요. 키는 남자만큼 크지, 천방지축 나다니는데 리포팅 등 ‘기본’이 안 돼 있어서선배들이 옷차림까지 혼낼 여유가 없었나 봐요. 3개월의 수습기간동안 야단을 정말 많이 맞았는데 옷차림 때문에 야단맞은 기억은 없네요.”
최은경의 첫 방송 데뷔작은 1995년 ‘지구촌 영상세계’.그의 말을 따르면 “남산에 가서 전파를 온몸으로 막고 싶을 정도로 창피한 기억이었다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 괴로워요. 녹화장에 가면 예쁘게 꾸며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녹화장에 가니 바로 녹화에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머리에 세트를 말다 바로 뛰쳐나갔죠. 나를 왜 뽑았나 싶을 정도로 후회되는 기억이에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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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회사생활, 미련없이 던진 사직서KBS 재직 시절 최은경은 최고 인기 아나운서였다. 재치있는 말솜씨와 통통 튀는 애드리브, 연예인 뺨 치는 다양한 표정은 그만의 장기였다.
98년 3살 연상의 이상엽 씨와 웨딩마치를 울린 뒤 남편의 박사학위 유학을 위해 미국으로 떠날 때도 그는 휴직을 택했다. 하지만 2001년 돌아온 그는 결국 2002년 사직서를 제출하고 말았다.
“복직 후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몸과 마음이 다 지쳐 버렸어요. 남편과 얼굴 볼 시간조차 없을 뿐만 아니라 2세도 가져야 할 때라 판단해 결국 사표를 제출하고 말았어요.”
하지만 방송가는 여전히 그녀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다. 그는 KBS 퇴사 후 프리랜서 아나운서로서 전성기를 맞았다. 게다가 소원하던 아기까지 가졌으니 일거양득인 셈이다.
◈시트콤 출연은 새로운 도전방송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던 최은경은 최근 ‘연기’에 새롭게 도전했다. MBC 시트콤 ‘태희혜교지현이’는 박미선, 홍지만, 김희정, 정선경, 최은경 등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섯아줌마들을 중심으로 수도권에 사는 소시민들의 삶을 조명한다. 최은경은 극 중 공주병 끼가 있는 아줌마 ‘은경’ 역을 맡아 독특한 영어 발음과 제스처로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웃음을 선 보이고 있다.
“사실 저는 방송을 볼 때마다 너무 부끄러워요. 그동안 계속 방송일을 했지만 MC만 하다보니 시트콤은 새로운 영역이었던 거죠. 아마 그렇게 무지했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어요. 다행히 주변 분들의 반응이 무척 좋아서 고마울 따름이죠. 앞으로 TV 속에서 연기하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안하려고요.(웃음)”
엄살과 달리 최은경은 ‘태희혜교지현이’의 후광을 업고 라디오DJ까지 입성했다. 과거 KBS ‘가요광장’ 등을 진행한 바 있는 그는 특유의 통통 튀는 하이톤의 목소리로 청취자들과 교감을 나누고 있다.
“일주일이 어떻게 가는지 몰라요. 녹화를 마치고 라디오를 진행하다 보면 딴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무슨 일을 하든 즐겁게 사는 게 좋아요. 하하하 큰 소리로 웃으면 그날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싹 날아가죠.”
‘즐거움’. 이것이 최은경이 프리랜서 아나테이너로서 장수하는 비결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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