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
‘엄마’라는 역할에 충실한 지난 세월
크고 강렬한 눈빛은 그대로였지만, 그 속엔 세월의 깊이가 더해졌다.
탤런트 나현희가 시청자들 곁으로 돌아왔다.
지난 2003년 ‘이브의 화원’ 출연 이후 5년만이다.
19일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산남리에서 열린 SBS 아침드라마 ‘물병자리’ 야외촬영장에서 기자와 만난 나현희는 그동안의 근황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나현희는 한 아이의 엄마로서 충실하다보니 활동이 뜸해졌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실, 방송 출연을 두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5년 전 ‘이브의 화원’에 출연할 때 촬영 때문에 아이랑 떨어진 시간이 많았는데, 유독 엄마 없는 티를 많이 냈어요. 당시 일곱 살이었는데 엄마의 부재를 속으로만 삭이다 보니 원형탈모증까지 겪었어요. 하지만 병원에서는 특별한 병이 있어서가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라고 했죠. 그 말이 제겐 더없이 아팠어요”
지난 96년 결혼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라 연예계를 떠난 후 7년 만의 컴백이었지만, 엄마로서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 같은 죄책감에 그녀는 다시 시청자 곁을 떠났다.
이후 그녀는 가정에만 충실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울 청담동에 수입 아동복을 취급하는 멀티숍을 열어 사업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연기자로서의 삶을 포기한 대신 나현희는 ‘엄마’로서 소중한 것을 얻었다. 연기를 그만 두자 원형탈모증에 걸린 딸의 머리카락은 넉 달 만에 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연기는 내 천직한동안 한 아이의 엄마로만 살아온 나현희. 하지만 그녀를 기억한 PD들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출연 요청 전화를 해왔다고 한다.
연기에 대한 욕구가 꿈틀거릴 때 때마침 김수룡 PD로부터 연락이 왔고 아이도 엄마의 방송 출연을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사실 연기에 대한 갈증은 조금 있었어요. 하지만 엄마로서 연기자보다는 엄마로서 충실하고 싶었죠. 그런데 어느 날인가 아이 녀석이 ‘엄마, 나 엄마가 없어도 잘 참을 수 있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거예요. 전 마냥 어린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훌쩍 커버린 거죠. 지금은 제 상대배우 대사도 읽어주면서 연기 연습도 같이해요. 그러다보니 저도 시청자들에게 완전히 잊혀지기 전에 출연해야 되겠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용기를 내서 컴백했지만 촬영장에 돌아가면 어색할 것 같았다는 나현희. 하지만 2박 3일 정도 가볍게 여행하고 집에 돌아온 기분이라고 한다. 연기는 ‘하늘이 주신 내 천직’이라는 생각이라고.
ㅇㄹ
'여유 있는’ 중견연기자로 남을 터그렇게 다시 시청자들 곁으로 돌아온 나현희. 남편과 아이를 든든한 지원군으로 얻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지난 11년의 간극을 느끼고 있다.
특히, 한참 어린 후배들이 깍듯이 선배 대접을 할 때 어색함을 느낀다고.
“후배 연기자들이 ‘선배님’하면서 깍듯이 대접할 때는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사실, 11년 동안 꾸준히 연기를 한 게 아니었잖아요. 그래서 책임감이 더 커요”
어느 덧 불혹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는 나현희. 세월의 간극만큼 그녀도, 그녀를 둘러싼 방송 환경도 많이 변했다.
큰 눈망울을 빛내며 우수에 찬 여 주인공 역을 맡았던 그녀에겐 푼수끼 넘치는 ‘아줌마’ 역할이 주어졌다. [BestNocut_L]하지만 그녀는 이제 아줌마 역할이 ‘몸에 맞는 옷’이 되었다고 한다,
“예전 비련의 여주인공 역할을 했을 때는 가벼워 보일까봐 촬영장에서 농담도 안했어요. 솔직히 불편한 시간들이었죠. 그런데 11년이 지나고 나이도 먹고 살도 찌니까 한결 여유로워졌어요. 부리부리한 눈도 좀 작아진 것 같고, 무엇보다 살도 좀 찌고 성격도 둥글둥글해진 것 같아요. 의도한 건 아닌데 세월의 흔적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거죠”
트레이드 마크였던 큰 눈망울엔 어느덧 자글자글한 주름도 자리잡았지만 그녀는 “세월이 만들어 준 훈장”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나현희는 그렇게 중견 연기자이자, 한 아이의 엄마이자, 아줌마로서 40대로 접어든 자신의 삶을 채색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