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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된 예술가 된다는 건 저주, 기꺼이 그 길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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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독립된 예술가 된다는 건 저주, 기꺼이 그 길 가라"

    • 2008-02-19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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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

     

    시집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겨울 나무로부터 봄 나무에로, 게 눈 속의 연꽃’ 등을 통해, 80년대의 암울한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했던 시인 황지우 씨. 요즘, 그는 시인 황지우보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란 직함으로 우리나라 예술 교육의 발전을 위해, 바쁘게 뛰고 있는데요.

    올해로 개교 15주년을 맞는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요즘, 각광받는 젊은 예술가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는우리나라 최고의 전문 예술학교입니다. 실기 위주로 학생을 뽑는 한예종은 입학시험부터 다른 대학과는 많이 다르다죠. 틀에 박힌 예술 교육을 거부하고, 창의적인 수업을 하기로 유명한데요.

    ‘창조적 소수자, 전문예술가’를 키우고 더 나아가 한예종을 ‘아시아 예술교육의 허브’로 만들겠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 황지우 총장을 2월 16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문화역류의 시대 ‘웰컴 투 코리아'

    [BestNocut_R]▶ 해외출장도 많으시고 굉장히 바쁘시죠?

    한류지속이 우리나라의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잖아요. 아시아의 예술 영재들을 장학생으로 유치하는 ‘AMA 프로젝트’가 있는데 이번에 학생유치를 위해서 동남아에 다녀왔어요. 'Art Manager Asia(예술 전공 아시아)'는 유학 프로젝트로서 일종의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 제도라고 보시면 돼요. 조건이 꽤 좋아서 학생 1인당 2만 달러 정도 지원이 되는 장학제도인데 중국을 비롯해서 베트남, 캄보디아, 미안마, 몽골, 이제는 중앙아시아인 카자흐스탄, 우즈벡스탄에서까지 많은 아시아의 뛰어난 예술 영재들이 저희 학교로 유학을 오고 있어요.

    ▶ 다른 나라의 학생들이 우리나라에 유학을 오는 건 굉장한 변화인데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설립된 지 15년째인데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 예술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꼭 외국에 가서 유학을 하고 와야 필드에서 활동할 수 있었잖아요. 그래서 우리도 유학을 가지 않고 세계적인 예술가들을 만들어보자는 게 취지가 돼서 시작이 되었는데 취지에는 접근한 것 같아요. 아시아는 물론 최근 저희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콩쿠르에서 1등 수상을 하면서 미국, 유럽 등 백인 학생들까지 자청해서 유학을 오는, 일종의 문화역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 일반적으로 예술학교라고 하면 탤런트가 되기 위한 학교 정도로 생각하잖아요.

    음악, 미술, 연극, 영화, 전통예술, 무용 등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예술의 주요 6개 장르를 포함한 종합예술학교로써 국내에서 유일하고, 외국에서도 캘리포니아나 시카고에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예술장르만 특화해서 종합화하는 새로운 트렌드가 보이고 있어요. 마침 한국이 발 빠르게 움직인 덕에 새로운 트렌드에 앞장서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거죠. 중국, 대만, 일본에서 저희를 벤치마킹하러 자주 오기도 합니다.

    ▶ 총장님 이전에 ‘시인 황지우’로도 유명하신데 원래 자유분방한 성격이신가요?

    공직을 맡으면서 가장 힘든 게 아침에 일어나는 거예요. 7시에 일어나서 옷 갖추고 정시에 출근한다는 게, 야생에서 자유분방하게 살다가 마구간에 묶이는 게 힘들었는데 이것도 하나의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웃음)밤늦게까지 긁적거린다든지 읽든지 했는데 요즘은 파김치가 돼서 그냥 자요.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아내가 모이를 주면 먹고 챙겨서 나오고 그러면서 일상생활의 톱니바퀴에 끼여서 많은 사람들의 삶을 경험하는 거죠.

    ▶ 아침에 일어날 때 꼭 들으시는 음악이 있으시다고요?

    바흐의 <골드베르크 베리에이션>을 꼭 들었는데 요즘은 바빠서 못 듣고 있어요.

    ◇ 암울했던 현실, 상처 속에서 피어난 꽃 ‘시’

    ▶ 1999년 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있을 거다>를 끝으로 시집을 못 내고 계시는데 새로운 시를 기다리는 독자들도 있을 거 같아요.

    총장 일을 하면서 마치 제대 날짜를 기다리는 군인처럼 얼마 남았는지 손가락으로 세고 있어요. 절반쯤 온 것 같은데 마음속에서는 시가 부글거리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숙성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속에서 울컥하는 순간이 있어요. 이 일이 끝나면 다시 시의 자리로 돌아가야죠.

    ▶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겨울나무로부터 봄나무에로><게 눈 속의 연꽃> 등 많은 발표작들이 화제가 되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정작 시인으로서의 삶은 어떠셨어요?

    젊었을 때는 시에 포박이 돼서 20대에는 하루 종일 시만 생각했어요. 그런 모리배 시절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7,80대가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격동의 시절이자 청춘의 시절이라서 시대의 격랑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그걸 헤쳐 나가는 동안 개인의 삶은 많이 상처를 받았죠. 그런 상처 속에서 시라고 하는 조그만 꽃들이 피어난 것 같고 시에 끌려다닌 삶이었어요. 저는 좀 편한 길로 가고 싶었지만 시에 포박을 당한 이후로는 마치 시가 내 삶을 멱살을 끌고 어디론가 가는 것 같았어요.

    몇 년 전에는 강제로 청탁을 받아서 몇 편 쓴 적이 있는데 그때 제목을 <시>라고 했어요. 돌이켜보면 제 삶이 고통스러웠지만 시로부터 덕 본 게 많다, 그래서 이제는 갚아줘야겠다, 되갚아주는 시를 쓰고 싶은 생각이 속에서 내장돼서 부글거리고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시를 학대했다고 해야 할까, 못살게 군 측면이 있는데 이제는 시의 자리로 되돌려서 시다운 시를 써야 할 것 같아요. 정말로 쓰고 싶은 시를 아직 못썼다는 생각이 들어요.

    ▶ 격동기를 헤쳐 나오시면서 시대의 정신을 펜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셨나 봐요.

    모든 예술이 그렇잖아요. 작가 자신의 개성과 그를 둘러싼 시대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작품들이 나오는 건데 우리 세대는 아무래도 작가, 예술가를 둘러싸고 있는 사회적인 환경에서 요구받고 증언하고, 그런 의무감이 더 작용했던 시절에 살았던 거죠.

    ▶ 1952년 해남에서 출생하셨는데 지역적으로 떨어진 곳이라 6.25 전쟁의 영향은 별로 안 받으셨을 것 같아요.

    역사가 어느 지역을 외면해서 지나가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태어난 곳이 땅 끝에 가까운 바닷가라서 역사의 가장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일제시대에서부터 해방, 6.25 전쟁 등의 모순이 첨예화되었던 곳인 거 같아요. 절대적 빈곤에 속절없이 노출된, 저희 세대의 유년시절은 누구나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제 시에도 그렇게 썼는데, ‘가난은 하나의 관례였다’고요.

    ▶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이제는 두 분 다 여의었고 어머니 생각은 아직도 울컥 올라와서 목이 메일 때가 있어요. 특히 식탁에서 아내가 해준 음식이, 어머니가 해주셨던 음식하고 비슷한 게 올라오면 맛을 통해서 기억이 어머니한테 가죠. 그러면서 부재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하지만 음식의 맛을 통해서 어머니는 현존해 계신 거예요.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히 저 같은 경우는 어머니한테 받은 은혜라고 할까요? 그렇게 어려운 삶 속에서도 자식들에게 강요를 하지 않으셨어요.

    어쩌면 강요할 만큼 뚜렷한 삶의 목표가 없어서 그런 건지, 완전히 바닥난 민중의 삶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공부해라, 뭐 해라 하는 옵션이 거의 없었어요. 항상 자식들에게 칭찬을 해주셨어요. 돌이켜보면 자신이 교육을 받거나 하신 적도 없으셨을 텐데 타고난 어머니들의 지혜가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그런지 저희가 4형제인데 길이 각각이라 따로따로 가고 있어요.

    ◇ 귀족학문 ‘미학’ 시대의 가난을 열공으로

     

    ▶ 어렵고 가난한 환경 가운데에서도 서울대 철학과를 가셨어요. 등록금은 어떻게 마련하셨어요?

    저희도 등록금이 없었죠. 무작정 살았는데 또 그런 대로 살아지더라고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하고 또 속절없이 기다리다 보면 친구가 도와주기도 하고, 그러면서 겨우 시간의 매듭을 하나씩 지나온 것 같아요. 저희 때는 철학과 안에 미학이 있어서 미학 전공으로 입학해서 공부했고 서강대대학원을 가서 철학을 공부했어요. 박사과정은 홍익대에서 미학을 전공했고요.

    ▶ 미학이라고 하면 삶에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본래 미학이나 미술사는 외국에서 귀족학문이에요. 집이 부자거나 귀족출신들이 그걸 많이 해요. 그런데 저희 다닐 때 서울대 미학과 친구들은 다 똑같았어요. 찢어질 만큼 가난했어요. 윗 선배 중에 시인 김지하 씨도 있고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을 하고 계신 김윤수 선배님도 계시고요. 또 국립중앙박물관의 김홍남 관장님도 미학과를 나오셨어요. 성깔 있고 고집 있는, 말하자면 개성 있는 학생들이 미학과에 많이 모여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사람들이 철학과라고 하면 아는데 미학을 잘 몰랐어요.

    ▶ 그럼 취업도 어려웠겠어요?

    철학과, 사학과도 마찬가지였는데 저희 미학과 선배들이 가장 많이 간 곳이 두 곳이에요. 방송국의 PD와 광고회사로 갔고 그게 안 되면 연극판에 갔죠.

    ▶ 이미 중학교 3학년 때 문학상을 입상하셨다고요?

    사춘기 때 이미 시에 눈을 떴다고 해야 할까요? 저희 때 가장 열광하는 잡지가 있었는데 ‘학원’이라는 잡지였어요. 그 잡지가 나오기 일주일 전부터 도서관에서 줄서서 대관해서 보곤 했거든요. 거기에 학원문학상이라고 있었는데 투고를 했더니 박목월 선생님이 보시고 심사평을 써주셨는데 아주 안 좋았어요. 너무 상처를 받아서 지금도 기억을 하고 있어요.(웃음) “황군의 감수성은 소년답지 않다. 병적이다.” 조숙함을 나무라신 거였는데 그게 계기가 돼서 문예반에 들어가고 그러면서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워나가게 된 거죠.

    ▶ 생활이나 환경이 어려우면 오히려 돈이나 성공에 대한 열망이 더 크지 않을까요?

    개인의 성향도 작용할 수 있겠지만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가난하면 돈 버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가난해도 문화를 찾았어요. 제가 중학교 때가 60년대 중반 이후인데 가장 많이 읽은 책이 에세이집이었어요. 철학자 김형근 씨의 <고독에 이르는 병>이라든가 이어령 선생님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든가, 지금 상황과 비교해보면 6,70년대 국민들의 독서성향의 수준이 훨씬 높았어요.

    개똥철학이라 할지라도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책을 찾아서 읽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잖아요. 성공비결,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까, 처세, 심리에 관한 해설서 등 이런 부류가 독서 혹은 출판시장의 주류로 형성되고 있는데 비록 가난했지만 6,70년대 국민의 정서가 교양이 훨씬 더 높았던 것 같아요.

    ◇ 영파워의 약진, 서구의 열등감 거둬야 할 때

    ▶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이 눈부신 약진을 하고 있는데 자랑 좀 해주세요.

    음악원에서부터 전통예술원까지 6개 분야에 걸쳐 있는데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힘들 정도에요. 최근에 음악원에서 손열음 같은 친구들이 피아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데, 누구보다도 영국 리즈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아시아인으로서 최초로 김선욱 군이 1등을 했는데 이것은 우리 문화사적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유학을 한 번도 간 적 없는 학생이 세계 4대 피아노 콩쿠르를 석권했다는 것은 단순히 학교만의 성과가 아니라 한국 고전음악계의 성과였다고 보입니다. 뿐만 아니라 발레분야에서 박세은 양이 스위스 로잔 국제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석권했다든지 또 작년에 뉴욕발레콘테스트에서 저희 재학생과 졸업생이 금상, 은상, 동상, 특별상 등 5개를 싹쓸이를 해서 뉴욕타임즈가 경악한 적이 있어요.

    저는 최근에 이런 움직임들, 김연아양의 눈부신 활약이라든지 수영에서 박태환 선수의 활약이라든지 한국의 영파워들을 보면서 그동안 한국인은 안 된다고 생각했던 분야들이 있잖아요. 손가락이 짧다든가 발이 짧다든가 수영은 못한다든가, 서구에 대한 오랜 열등감을 갖고 있었는데 이제는 열등감을 거둬도 되는 문화사적인 전환의 시점에 와 있는 것 같아요.

    ▶ 영파워가 두각을 나타내는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성공요인을 생각해 봤을 때 첫째는 잠재력이 뛰어난 학생들을 미리 발굴해냈다는 거예요. 7,8명의 영파워들이 활약하고 있는데 학교에 이러한 학생들을 위한 영재교육 코스가 있어요. 이 학생들을 조기 발굴해서 고등학교 과정을 건너뛰고 저희 학교에 영재로서 대학생으로 입학이 가능한 제도가 있었어요. 이게 핵심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두 번째는 저희 학교의 세계적인 교수들에게 일찍 노출시켜 준 점, 세 번째는 학생들을 모아서 경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주면서 충분히 학습할 수 있는 기자재라든가 교육환경을 정부에서 지원해줬다는 점이 10년 안팎의 결정적인 성과들을 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창조적 소수’를 추구하신다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연주자도 중요하지만 연주자를 여러 명 내는 것보다 베토벤 하나, 모차르트 하나를 내자는 거죠. 그 콘텐츠가 수백 년 가잖아요. 그 창의성의 파생효과가 무궁무진하게 파생될 수 있는 원천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창조할 수 있는 소수,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여러 사람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소수로 교육의 미션을 잡고 있어요. 과학이나 예술은 신이 DNA 속에 선물로 준 사람들이 있어요. 그것을 깨닫지 못하거나 혹은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발현되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리면 안 되겠죠. 그래서 선물 받은 자들을 조기에 발견해서 선택, 집중적으로 지원하자는 겁니다.

    프랑스가 창조적 소수를 길러내는 엘리트 교육과 보편 교육을 동시에 잘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게 잘 안 돼요. 전부 자신은 엘리트이고 신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경향이 우리의 과도한 입시경쟁,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우리나라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뛰어난 자들은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되어야겠죠.

    피렌체에 가보면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레오나르드 다빈치 등 창조적 소수를 사회가 배출해 냈기 때문에 전 세계 사람들이 제 발로 가서 돈 쓰고 오잖아요. 우리 한국예술종합학교도 창조적 소수를 길러내는데 특화하자, 예술을 대중적으로 교양의 측면에서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로페셔널한 예술가들을 길러내는 특별한 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정부가 이 학교를 국립으로 운영하는 이유가 된다고 봅니다.

    ◇ 예술은 신이 주신 DNA, 미래를 막아선 안 돼

    ▶ 행정상으로 예술석사학위를 줘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신다고요?

    실기만 잘 하면 됐지 그게 무슨 학위가 필요 하느냐고 오해들을 하는데 실기라는 게 미용, 요리, 양재 같은 실기가 아닙니다. 우리 학생들이 모차르트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연주하는 것은 의대에서 뇌수술을 하는 실기능력과 같은 겁니다. 그만큼 특별하고 섬세한 능력을 요구하는 거죠.

    현재 우리나라의 학제가 일제시대 때 만들어진 각종학교 법으로 규제가 되어 있어서 학위를 못주게 되어 있는데 각종학교 개념이라는 게 미용, 양재, 요리 등의 직업적인 실기능력을 갖고 있는 자들을 길러내는 교육제도거든요. 해방 이후에도 고등교육법에 각종학교 규제가 있다는 것은 전형적인 일제 잔재라고 봅니다.

    우리나라가 100달러도 안 되었던 시대에 만든 교육제도인데 이제는 2만 달러 시대잖아요. 그만큼 우리가 사회적 몸피가 커졌는데 구시대적인 가죽옷으로 재능 있는 학생들의 미래를 막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정해진 길도 없고 또 정착지도 보이지 않는데 그로 인해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입학 때마다 학생들에게 생각하지 말고 저질러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바로 하라고 해요. 조각을 하고 싶다면 통으로 뭘 하나 만들어라, 건축을 하고 싶다면 집이 부서져도 좋으니까 집을 지어버려라, 연극을 지도받기 전에 네가 만들어라, 이러한 자신의 표현충동을 존중하도록 촉구합니다.그래서 즐기라고 해요. 만들 때 매체가 저항을 하기 때문에 괴로워요. 악기가 저항을 하거든요.

    그렇게 저항 받을 때 포기하기 쉽고 절망하는데 저항도 견디면서 즐겨라, 유희 속에서 발견할 때가 있을 것이다, 그 발견이 올 때까지 하고 싶은 걸 해라, 이런 식으로 충동질을 하고 있어요. 독립된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저주입니다. 저주 속에 축복이 있기 때문에 축복받은 저주의 길을 기꺼이 가라고 이야기합니다.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박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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