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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C, 막걸리집이 맺어준 강산에·윤도현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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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C, 막걸리집이 맺어준 강산에·윤도현과의 인연

    • 2007-11-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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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한성의 아주특별한인터뷰] 순수·파격·독설·재미 ‘비빔밥’ 캐릭터, 가수 김C

    김C
    록그룹 ‘뜨거운 감자’의 보컬, 가수 김C. 이부자리에서 막나온 듯한 부스스한 얼굴에 무표정, 이따금 허를 찌르는 말들로 그만의 스타일을 구축해낸 김C.

    "어린 시절 도축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다" "배철수를 존경해서 넉 달 동안 씻지 않았다" "라디오 DJ가 돼서는, 자기 목소리 듣기 싫으면 다른 방송 들어라" 그는 이렇게 다소 엉뚱하고 특이한 이력과 자기 생각을 두려움 없이 내뱉을 수 있는 당당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고향 춘천에서 10년 내내 야구만 했고, 군 제대 후에는 음악이 좋아 죽어라 기타만 잡았다는 김C. 하지만 전문가 못지않은 축구 해설가로, 영화배우로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하는 일도 많고 욕심도 많습니다.

    "뻥치면서 인생 왜 삽니까? 솔직하게 살아야 돼요" 라고 말하는 가수 김C와 11월 17일 CBS 배한성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FM 98.1Mhz, 연출 김우호 PD)에서 만나봤습니다.

    ◇ 야생 캐릭터 김C, 서구적인 외모는 집안 내력

    ▶ 첫 인상도 이름만큼이나 특이해요. 서구적인 외모는 집안 내력인가요?

    집안 전체적으로 얼굴에 굴곡이 있어요. 나올 때 나오고 들어갈 때 들어가고 진한 스타일이에요.

    ▶ 요즘 버라이어티 쇼 <1박 2일>에서 무표정한 표정으로 매운 청량고추를 먹는 장면이 있던데 촬영이 재미있겠어요.

    1박 2일 동안 촬영하는 거라서 재미있기도 한데 힘들어요. 보통 찍을 때만 찍고 나머지는 쉬고 먹고 놀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마치 ‘트루먼쇼’처럼 계속 찍는 거예요. 밥도 실제로 해서 먹어야 하고 정말 배가 고프니까 감탄사나 리액션이 절로 나와요.

    실제로 청량고추를 먹는데 제가 매운 걸 잘 먹는 건 아닌데 어렸을 때부터 고통을 참는 법을 나름대로 익혔던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찬물에 들어가는 걸 끔찍하게 싫어했는데 아버지들 보면 뜨겁거나 차가울 때 "어, 시원하다~" 그러시잖아요. 어린 나이에 맹탕에 들어가는 걸 이해를 못 했는데 다른 쪽으로 생각의 전환을 하니까 잠깐 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고통을 이런 식으로 참으면 되는구나, 의외로 고통을 잘 참는 편이었어요. 청량고추를 먹었을 때도 그런 식으로 다른 생각을 한 거예요.

    ▶ 같이 출연했던 사람들이 ‘역대 최고의 야생 캐릭터’라고 했다는데요.

    제가 리액션을 못 하는 사람으로 유명해요. 힘들면 힘들다고, 배고프면 배고프다는 리액션이 있어야 하는데 사실 1박 2일 같은 프로그램은 힘든 줄 잘 모르겠어요. 전에 겪었던 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거든요. 같이 출연했던 친구들을 보면 곱게 자란 사람들이어서 그 사람들과 대비가 되다보니까 제가 더 그렇게 보이나봐요. 노홍철, 은지원, 이승기 이런 친구들을 보면 서울에서 따뜻한 밥 먹고 잘 자란 것 같은 외모이고 실제로 도시적으로 자랐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 춘천에서 자란 자부심이 있거든요. 유년기를 흙 있고 물 있고 산 있는 시골에서 자랐다는 게 정말 다행이더라고요. 아파트나 콘크리트 빌딩 숲에서 유년기를 자라지 않았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어요. 저에게 장점이 있다면 유년시절에 만들어진 정서일 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야생적인 이미지이고 거부감 없이 잘 묻어나서 야생 캐릭터라고 하나 봐요.

    ▶ 아마추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프로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건가요?

    어떤 면에서는 분명히 프로거든요. 사람으로 치자면 오른손잡이에 해당하는 음악이잖아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히 프로페셔널한 사람인데 왼손으로 치자면 폭 좁은 연기자인 것 같아요. 현재 오른손에 비해 왼손이 굉장히 부자연스러운 거죠.

    ◇ 투덜거리는 사람이 있어야 개선이 되고 변화도 있는 것

    ▶ 라디오 디제이로 일할 때는 어땠어요?

    라디오로 일할 때 굉장히 애정이 있었어요. 사실은 다른 방송 프로그램에 나갈 때 사람들이 지적한 게, '결국은 방송에 나올 거면서 왜 그렇게 툴툴거리냐?' 라는 거였어요. 그렇게 하지 않고도 나갈 수 있겠죠. 하지만 저처럼 툴툴거리는 사람이 있어야 개선이 되고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분명히 있거든요. 제가 그렇다고 살아가면서 100% 만족하면서 방송생활을 할 수는 없겠죠. 그렇다고 불만이 있는데 조용히 있는 것도 저한테 안 맞더라고요. 그래서 개선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툴툴거리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라디오는 음악을 트는 거였고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는 부분이 저하고 굉장히 잘 맞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열심히 했어요. 특히 심야방송에 적합한 인물이라고 스스로 생각해요. 아침에 일어나는 게 저한테 너무나 힘든 일이거든요. 아침방송을 1년 동안 할 때는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이런 분위기였어요. 오죽하면 제 별명이 '날아다니는 김C'인데 이 닉네임으로 코너를 따로 만들었을 정도로 밤 프로로 옮겼을 때 정말 좋았어요.

    ▶ 페퍼민트 클럽이라는 밴드를 만들었는데 어떻게 해서 만들게 되었어요?

    김윤아 씨가 몸담고 있는 자우림 밴드 멤버 중에 기타를 치고 있는 이선규 씨가 제 동네 친구에요. 음악 하는 친구들이라 저희 집이 주막처럼 되어서 집에 들어가기 전에 저희 집에 들러서 맥주 한 잔 하고 집에 가고 그랬는데 술만 마실 게 아니라 같이 음악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김윤아 씨가 아기를 갖게 되어서 어쩔 수 없이 공백을 갖게 되었어요. 출산 준비하는 기간 동안 활동을 할 수 없게 된 거예요. 그래서 그 기간 동안 페퍼민트 클럽이라는 소규모의 작업을 했죠. 원래 속해 있던 ‘뜨거운 감자’는 앨범을 내고 잠깐 쉬고 있는 기간이었어요.

    ▶ ‘뜨거운 감자’는 누가 지은 건가요?

    남자멤버 넷이서 이름을 짓다 보니까 별의별 이름이 다 나오는 거예요. 제가 춘천 사람이라서 그런지 영화제목에서 이름을 따 와서 ‘강원도의 힘’이라고 했다가 거부당하고 결국 제가 키우던 개 이름이 '감자'였어요. 그리고 한 때 홍대에서 밴드 이름을 한글로 짓는 게 유행이었어요. 워낙 많은 팀들이 있었으니까요.그래서 감자라고 하자고 했더니 나중에는 지쳐서, 싫다 좋다는 말도 없더라고요. 마침 옆에 강산에 씨가 있었는데 앞에 ‘뜨거운’을 붙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뜨거운 감자가 되었어요. 그런데 헷갈려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한대수 선생님 같은 경우는 ‘불타는 창자’라고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나중에 불타는 창자, 이 이름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어요.

    ▶ 야심만만, 해피투게더 등 다양한 프로에 나오면서 솔직하고 파격적이고 시니컬하고 때로는 공격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복합적인 캐릭터에요. 락을 하는 뮤지션들은 오락프로에 잘 안 나오는데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거예요?

    앨범을 열심히 만들다보니까 다 기대하게 되잖아요. 그에 비례해서 잘 안 되었을 경우에는 실망감도 그만큼 크거든요. 요즘 음반시장이 워낙 불황이고 사람들이 편리하니까 불법 다운로드를 받는 게 양성화된 편이고요. 과거보다 음악을 안 듣는 건 절대 아닐 거예요. 예전에는 특정한 공간에 가야 음악을 들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길거리에나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음악이 BGM이 된 것 같아요. 그렇게 익숙해진 만큼 음악 하는 사람들이 힘들어진 건 사실이에요.

    그러다보니까 프로모션을 위해서 음악과 관련이 없는 곳에 많이 출연하는 거예요. 저도 윤도현 씨와 같은 회사이다보니까 윤도현 씨가 출연하면서 저도 같이 끼워넣기로 출연하게 되었어요. '야심만만' 같은 경우는 탑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잖아요. 아무나 못 나가는 큰 프로모션이 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윤도현 씨 나가면서 우리 소속사 가수를 같이 끼워넣겠다고 했으니 그쪽에서 얼마나 싫었겠어요? 누군지도 모르는 애를 데리고 나온다니 당연히 싫었겠죠.

    어쨌든 나가서 물어보는 것에 대해서 대답을 했을 뿐인데 길들여지지 않은, 전형적인 대답을 하지 않은 게 신선했던 모양이에요. 2를 물어보면 2를 대답하는 토크 프로그램인데 저는 경험이 없고 룰 자체를 모르니까 엉뚱한 4나 5의 대답이 나간 거예요. 그게 식상했던 라인이 아니어서 참신하게 재미를 불러일으켰나 봐요.

    ◇ 남들과 똑같은 걸 싫어하는 건 나의 본능

    ▶ 축구 마니아로 소문이 대단해요.

    축구를 참 좋아했는데 사람들하고 얘기는 별로 안 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제가 축구를 보고 즐길 때는 해외축구가 독특한 문화 중의 하나였거든요. 루트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볼 경로가 없었어요. 저는 불법 외국위성을 달아서 그걸로 우리나라에서 아무도 못 볼 때 봤었거든요. 90년대 중반이었는데 그때부터 해외축구를 보고 있었거든요. 지금이야 해외 축구 리그를 중계로 볼 수 있지만 그때는 못 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선수들도 해외로 진출도 안 해 있었고요.

    그래서 90년대 중반부터 스페인 리그, 이탈리아 리그를 지켜봤어요. 남다른 축구관이나 그에 따른 역사관을 알고 있었는데 요즘은 너무 많은 정보들이 인터넷에 있기 때문에 웬만하면 모르는 친구들이 없어요. 그런데 이것 역시 수박 겉핥기식의 축구문화에요. 축구를 알려면 축구라는 경기 자체를 통해서 어떻게 흘러가는 운동인지 어떻게 경기를 지배할 수 있는 건지 그런 걸 알아야 하거든요. 축구를 그런 식으로 좀 봤으면 좋겠어요.

    ▶ 학창시절에 괴짜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야구선수니까 단체복을 입잖아요. 그런데 유독 유니폼은 어쩔 수 없이 입었다고 쳐도 유니폼 위에 입는 점퍼를 저만 다른 걸 입었다든지 겨울에 훈련할 때 쓰는 모자가 다 똑같은데 저만 털모자를 썼다든지 하는 사진들이 있더라고요. 당시에는 몰랐는데 저도 모르는 그런 본능이 있는 것 같아요. 운동부니까 어디에 가면 자장면 통일, 이런 게 싫더라고요. 먹고 싶은 걸 먹고 싶지 자장면을 먹으러 간 건 아니었으니까요.

    ▶ 어렸을 때 도축장에서 일한 적도 있다고요?

    아는 분이 정육점을 하셨는데 거기서 배달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다른 아르바이트도 해 보겠느냐고 해서 하겠다고 했더니 어디어디를 가보래요. 반나절 일하는데 7천 원을 받는데 꽤 괜찮은 금액이었어요. 가서 봤더니 도축장이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저는 운반하는 역할만 맡았는데 소 도축하는 걸 그날 12마리를 봤어요. 도축장면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몇 달 동안 고기를 못 먹었어요. 지금은 먹지만 일단 생명을 앗아가는 거잖아요. 19살 때 본 거니까 충격이 컸던 것 같아요.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은 안 가셨어요.

    못 간 거예요. 야구선수 특기자로 가고 싶었는데 실력이 그만큼 안 되었던 거죠. 학교가 4강에 들어가지 못한 것도 있지만 제가 야구를 잘 못하더라고요.

    ◇ 강산에 씨는 음악을 알려준 사람

    ▶ 이후에 무전여행을 2년이나 하셨어요?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저 때만 해도 학생이 아니라 운동선수였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수업이라는 걸 들어본 적이 없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까 기술도 없고 할 줄 아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친구들과 술 마시다가 넌 노래 잘 하니까 가수나 해라는 말을 듣고 마치 무협지에서 나온 것처럼, 그래 난 성공할 때까지 안 돌아온다, 내일 떠난다, 그러고서 큰 가방에 이것저것 넣고 떠났던 거죠. 하지만 막상 떠나보니 오죽했겠어요? 맨바닥에 헤딩인데. 그때부터 무전여행이 시작된 거예요.

    돈이 없어서 아는 사람한테 빌붙기도 하고 교회에서 자기도 하고 신문 덮고도 자고 그런 식으로 여행을 했어요. 어디 노동판이 있으면 노동도 했는데 결정적으로 제가 노동을 못 해요. 노동을 이틀 반을 했는데 십장 아저씨가 이리로 오라고 해요. 당시 건설업이 활황이어서 일당이 굉장히 쌨어요. 앉으라고 그러더니 10만원을 주세요. 가라고, 너는 흙 파먹고 살 팔자가 아니라고. 도저히 답답해서 못 보겠으니 가라고 해서 그 돈 받고 잘렸죠.

    ▶ 그러면서 서빙, 주차, 주방장 일까지 이어진 건가요?

    어느 날 TV에서 막걸리 집을 봤는데 나중에 돈이 생기면 그 곳에 꼭 가보고 싶은 거예요. 아무 것도 없는 벌판에 막걸리 집 하나만 덩그러니 있고 옆에 비닐하우스가 있어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그게 너무 좋아 보이더라고요. 돈 1만 원이 생겨서 물어 물어서 찾아갔어요. 갔더니 손님도 없고 정말 적막해요. 거기서 막걸리 마시면서 기타가 있기에 기타 치면서 노래를 불렀거든요. 주인아저씨가 오시더니 "여기서 살래?" 하시기에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바로 거기서 살았어요.

    그런데 마침 비닐하우스에 강산에 씨가 살고 있었어요. 당시에 1집을 내놓고 ‘라구요’라는 노래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었죠. 주인 아저씨가 강산에 씨를 소개시켜주세요. 저는 그때 가수가 되려고 데모 곡을 준비하고 있었거든요. 강산에 씨가 데모 테이프를 듣더니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다고, 여기서 좀 더 연습을 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별로 우기고 싶은 마음이 안 들어요. 그래서 거기서 연습하고 생활하고 지금의 아내도 만나고 3년 동안 막걸리 집에서 살았어요. 3년 동안 막걸리 집에 있으면서 뜨거운 감자라는 밴드를 조직하고 2000년에 데뷔앨범을 내게 되었어요.

    ▶ 강산에 씨가 정말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거로군요.

    강산에 씨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뮤지션이라고 하는 아티스트들과 하는 직업보다는 연예인이 되고싶어 했을 거예요. 네가 뭘 원하고 뭐가 되고 싶은지 질문한 첫 번째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강산에 씨를 보면서 '내가 아티스트, 뮤지션이 되고 싶은 거로구나' 하는 걸 느꼈어요. 저를 세상에 알려준 사람은 윤도현이라는 친구가 큰 도움을 주었고 제가 음악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음악을 알려준 사람은 강산에 씨에요. 역시 윤도현 씨도 막걸리 집에서 손님으로 왔다가 알게 되었어요.

    ◇ 김C는 꽝이 없는 복권, 맞으면 대박이야

    ▶ 결혼하고 나서 첫 앨범 낼 때 아내는 뭐라고 하던가요?

    많이 감격해했어요. 제 음악의 첫 번째 팬이자 저를 좋아했던 그루피 같은 사람 중의 한 명이에요. 더구나 데뷔 앨범이 나오기까지 연습만 했거든요. 모든 곡이 준비가 되어있는데 음반을 내주는 회사가 없으니까. 그래서 4년이라는 시간을 벤드 멤버가 연습만 했어요.이때는 아내가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100% 의존하고 살았죠. 물론 아무리 좋아도 그런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다투게 되면 돈 얘기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죠. 이런 얘기가 나오면 해 줄 말이 없더라고요. 어떻게 하냐? 내가 일을 안 하냐? 노력을 안 하냐? 네가 보다시피 재능이 없냐? 난 잘할 자신 있고 열심히 하는데 다만 돈을 못 버는 거다.

    그럴 때마다 강산에 씨가 근처에 살고 있어서 아내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어요. “제수씨는 복권을 쥐고 사는 거다. 복권이 맞으면 대박이다. 이게 꽝이 없는 복권이니까 걱정하지 마라.” 아내가 그 복권 이야기를 계속 믿은 게 큰 복권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현실화가 되어서 다행히 풀리게 된 거죠.이제는 집을 마련해서 회사 다니지 않고 두 아이를 키우는 상황이니까 복권이 맞은 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영화 ‘별빛 속으로’에도 출연했는데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거예요?

    영화출연만 두 번째고 목소리까지 합하면 세 번째 출연이에요. ‘별빛 속으로’라는 영화는 제가 아는 영화인들이 좀 있는데 메이저적인 영화사는 아니에요. 영화수입을 하더라도 북미의 영화나 일본의 인디 영화를 수입하는 조그만 수입, 제작회사인데 거기 사람들하고 친하거든요.그 영화사가 수입만 하다가 제작까지 하게 되었는데 마침 영화음악 담당에 출연도 해달라는 제의가 와서 출연하게 되었어요.

    ▶ ‘별빛 속으로’를 연출한 감독이 그냥 와도 된다고 했다면서요?

    배경이 70년대였는데 감독님이 저를 보시더니 머리는 어떻게 해야 하고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고 이런 것보다 그냥 이 상태로만 오면 되겠다는 생각을 하시더라고요. 70년대의 느낌이 저한테 많이 남아있었나 봐요.

    ▶ 막상 촬영을 하니까 어떻든가요?

    제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영화였고 지금 다시 봐도 어렵고 또 어려운 역할이었어요. 멀쩡히 앉아있어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역할이었는데 쉽지 않았어요.

    ▶ 영화를 많이 보신다는 소문이 있던데요.

    영화를 많이 보는데 일반적인 영화가 아니에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친한 사람들이 영화를 수입할 때 독립영화나 북미영화를 수입하니까 그런 영화들을 많이 보게 되었어요. 물론 그 영화들이 다 잘 만든 건 아니지만 흙 속의 진주 같은 영화들이 있죠. ‘조제 호랑이 물고기’라는 일본 인디 영화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관객이 10만 정도가 들었어요. 단관 개봉으로 10만이면 대단한 거예요. 또 ‘구스 반 산트’라고 굉장히 좋아하는 감독인데 죽음시리즈 3편을 만든 감독이에요. ‘라스트 데이즈’ ‘엘리펀트’ ‘파라노이드 파크’ 이 3편의 영화들이 시리즈 같은 느낌을 갖게 하더라고요.

    ◇ 국가적으로 공무원과 아티스트의 결혼을 밀어주고 싶어

    ▶ 눈물도 많다면서요?

    외모적인 것 때문에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다고 생각들을 하세요. 전 조금만 슬퍼도 정말 슬픈 것 같아요. 남 앞에서는 티를 못 내겠는데 혼자 보고 있으면 코끝이 아플 정도로 눈물이 나요. 그래서 병원 영상 기록 같은 건 정말 못 보겠어요.

    ▶ 문화관광부 장관 같은 것을 하고 싶다, 국가적으로 공무원과 아티스트들의 결혼을 밀어주고 싶다고 했다는데, 이게 무슨 말이에요?

    역시 툴툴거림에서 나온 말이죠. 음악, 미술, 영화 등 아티스트들이 힘들게 살아가거든요. 그런데 저는 예술의 한 덕목에 가난도 포함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시기가 있어야 목마름으로 창작과 연습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데 순수예술 하시는 분들은 그 기간이 너무 길다 보니까 그 업을 포기하게 돼요. 가난에 찌들어서 더 이상은 이렇게 못 살겠다고요. 하지만 문화가 국가의 경쟁력인데 문화가 강한 나라가 정말 강한 나라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나라를 위해서라면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이런 걱정 없이 예술을 할 수 있는 게 나라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아티스트들과 결혼했으면 좋겠는데, 제 아내도 저랑 결혼해줘서 저를 부양해 주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여러 가지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했으면 하는데 안 하려고 하거든요. 상대의 능력을 보고 갖고 있는 걸 보니까요.예술인들이 돈만 없을 뿐이지 정말 멀쩡한 사람들이거든요. 멋지고 잘 생기고 단지 돈이 없는 거거든요. 나라에서 세면감면이나 월 생활비 보조, 의료보험 무료 등 혜택을 주는 거예요. 그걸 국가에서 장려해서 예술인들이 예술을 그만두지 않아서 좋고 공무원들은 결혼해서 좋고 혜택을 받아서 좋고 문화강국이 되어서 좋고 일석 몇 조의 효과가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문화부 장관은 아니지만 문화관광부 장관 같은 걸 맡겨주면 이런 일을 활성화시키겠다는 거죠. 물론 무보수로, 봉사직으로 하고 싶은 거예요.

    ▶ 티베트에도 다녀오셨어요.

    어느 날 갑자기 티베트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휙 갔어요. 회사에는 미안하죠. 제가 고정적으로 하고 있는 일들도 있고 데일리나 매주 하는 것도 있는데 제가 역시 툴툴거리니까 다녀와야 충전된 게 있어서 또 할 수 있지 않겠냐고 했더니 회사에서는 접어준 거죠.

    ▶ 무슨 생각으로 다녀오신 거예요?

    머리 안에서 뭔가가 떠오르는데 그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되면 그렇게 꼭 하고 싶어요.혹시 그곳에 가면 정신적인 안정감을 찾을 수 있을까? 좀 힘든 시기였고 복잡해서 마음의 휴식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네팔을 통해서 3일간 차를 타고 티베트의 수도인 라사까지 가게 됐죠.

    ◇ 대중스타는 지성과 인성을 고루 갖추어야 돼

    ▶ 음악 인생목표가 ‘사랑과 세계 평화’라고 했는데 굉장히 거창해요.

    유토피아, 사람과의 사랑, 평화를 이야기하면 고리타분하고 진부하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움직이면 결국 그게 현실이 되더라고요. 안 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오노 요코가 했던 말 가운데 굉장히 유명한 말이 있는데 제 가슴을 쳤어요. ‘혼자서 꾸는 꿈은 단지 꿈일 뿐이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요즘 같은 세상은 정치인들보다 대중스타의 영향력이, 말 한마디가 크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더 올바른 가치관을 갖고 있고 똑똑해야 되거든요. 학문적인 지성도 있어야 하지만 인성적으로도 똑똑해야 해요.

    아마도 이 사람들이 범죄를 조장하면 범죄도 가능할 정도로 모든 걸 믿고 의존하고 지지하잖아요. 그래서 좋은 뜻을 갖고 환경콘서트를 하고 평화콘서트를 하는 거겠죠. 먼 이야기는 아닌 것 같고 노래 가사처럼 총이 없고 전쟁이 없다고 생각하자, 그게 세계 조약이 돼서 다 어딘가에 버리고 분쟁 같은 경우는 가위 바위 보로 하자고 룰을 정하면 가능하지 않겠어요?그게 물론 유토피아인데 유토피아가 없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건 너무 삭막하잖아요.

    (표준 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 정리=박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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