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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과 이를 쫓는 전직 형사의 대결을 그린 영화 ''추격자(나홍진 감독·비단길 제작)''가 극 중 경찰을 풍자하고 때론 비하하는 내용을 담아 논란을 예고했다.
28일 오후 2시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된 영화에서는 연쇄살인범을 검거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무기력하게 대처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등장했다. 애써 잡아 놓은 범인을 풀어줘 또 다른 범죄를 낳거나 늑장 출동으로 피해를 키우는 등의 내용이 반복됐다.
풍자를 넘어 자칫 경찰을 비하하는 뉘앙스가 해당 분야에 몸담은 당사자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데도 연출자는 "의도된 설정"이라고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BestNocut_R]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나홍진 감독은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가 바로 경찰의 대처 방법에 있었다"고 밝히며 경찰 비하에 대해서는 "맞다"며 의도한 장면임을 강조했다.
나 감독은 "살인자들이 살인하고 일반인이 살인 당하는 과정을 방치한 이 사회의 시스템에 불만을 제기했다"면서 "그들(경찰)을 이런 식으로 비하하고 싶었다"고도 했다.
"살인마에게 동기를 부여해 이해를 얻고 싶지 않았다"''추격자''는 나 감독이 3년간 쓴 시나리오로 만든 장편 데뷔작이다. 출장 안마소 여자들만 골라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지영민(하정우 분)과 비리로 해고된 뒤 출장 안마소 포주로 사는 전직 형사 엄중호(김윤석 분)의 추격전을 담았다. 경찰의 방관 속에 중호만이 영민을 범인으로 믿고 뒤를 쫓으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경찰 풍자 외에도 영민의 이유 없는 살인 역시 살해동기가 빠져 궁금증을 자아냈다. 일반적으로 영화 속 연쇄살인에는 동기가 부여되기 마련이지만 ''추격자''에서는 영민의 살인 이유가 철저히 배제되고 잔혹성만이 도드라졌다.
이에 대해 나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이유가 화나고 분노가 생겼기 때문이다"고 밝히며 "살인마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행여 관객이 범죄자들을 이해할까 봐 영민에게 일부러 동기를 넣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또 "영화 속에 나오는 동기가 살인의 이유가 된다고 해서 살인마들의 범죄가 이해되거나 용서되는 게 싫었다"고 덧붙였다.
연출자의 의도대로 살해 동기 없이 줄기차게 잔인한 방법으로 범행을 일삼는 영민을 연기한 하정우는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초중고 때의 지영민은 어땠을까 성장과정을 상상해 캐릭터를 만들었다"며 "표현하기 힘들기 보다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장면들을 연기할까 작은 부분까지도 상의를 거듭했다"고 밝혔다.
물론 범인을 베일에 가려두고 주인공과 관객이 함께 추리하는 일반적인 방법과 달리 처음부터 범인을 공개하고 이를 쫓는 추격전은 상투적인 구성에서 한발 물러나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냈다. 영화 속 90% 이상이 밤 장면이고 이 중 60%가 비 장면일 정도로 서울의 밤거리 곳곳을 카메라에 담아 음산한 분위기를 가미한 것도 볼거리다.
다만 특정 직업군의 비하나 연쇄살인을 잔인하게 묘사하며 잔혹성을 더한 탓에 폭넓은 관객의 선택을 이끌어낼지가 숙제로 남았다. ''추격자''는 오는 2월 14일 관객을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