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정현 전 새누리당 의원, 서갑원 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광주공항 귀빈실(VIP)에 액자로 걸려 있는 이 문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서한에 담긴 말로,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는 뜻으로 임진왜란 당시 곡창지대인 호남의 전략적 요충지, 지정학적 가치를 두고 한 말이다.
대한민국 5천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인 성웅 이순신 장군이 ‘약무호남 시무국가’라고 했으니 호남인들은 이 말을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겠는가?
지난 2006년 10월 29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남 도청을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충무공 왈(曰) ‘무호남(無湖南) 무국가(無國家)’라는 말을 적었다.
DJ는 ‘약무호남 시무국가’라는 이 말의 의미를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었을 것이다‘로 해석했으며 그 이후 호남인들은 소외의식을 달래기라도 하 듯 이 글귀를 즐겨 썼다.
호남인들은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330여척의 왜선을 물리친 명량대첩 직후 호남을 극찬한 말로 알고 있다.
이순신 장군의 ‘호남 예찬론’ 본뜻과는 별개로 호남인들이 닷새 앞으로 다가온 7.30 재보궐 선거에서 ‘약무호남 시무국가’에 걸맞는 선택을 할 것인지가 정치권의 초미의 관심이다.
◈ 호남인들, 약무호남 시무국가에 걸맞는 선택을 할까?지난 85년 12대 2.12 총선 이후 민정당이란 당명이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으로 개명된 근 30년 동안 단 한 번도 국회의원을 낸 적이 없는 호남에서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 탄생할지 여부가 이번 재보궐 선거의 최대 관전 포인트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람이자, 전 청와대 홍보수석인 이정현 후보가 30년의 새정치민주연합(과거 민주당) 독식의 아성을 깨겠다며 도전장을 냈다.
지난 2012년 19대 총선의 광주 출마에 이은 두 번째 지역주의 장벽을 허물겠다고 나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섶을 지고 불속에 뛰어 들어가는 시늉'을 하고도 남을 정도로 충성도가 강하다.
그런 그가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대표적인 소외지역으로 꼽히는 호남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도전해봤자 떨어질 게 뻔 한 호남 지역에 출마하느니, 오히려 장관으로 입각하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으나 그는 단호히 뿌리치고 “고향에서 심판을 받고 고향 발전을 위해 정치 생애를 바치겠다”고 말했다.
서울 동작을에 출마해 심판을 받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거부하고 전남 순천곡성을 택했다.
고향인 전남 곡성군은 전남 시군구에서 주민 3만 1천여 명(2014년 6월 현재)으로 전남에서 최저인데다가 아주 가난한 지역이다.
인구 3만 지역 출신이 인구 27만 7천 명을 가진 순천시(서갑원 후보 고향)를 넘본 것이다.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나름대로 소지역주의 텃세가 상당한 현실을 극복하겠다는 일종의 ‘당랑거철’의 도전이다.
이정현 후보는 이런 말을 했다. “떨어져도 좋으니 고향인 순천곡성에서 낙선하고 싶으며 고향 분들이 나의 진정성을 알아주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12년 4월에는 광주 서구을에도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광주시의 오피니언 리더들 중심으로 ‘이정현을 살리자’는 구호에도 민주당의 아성을 허물어뜨리지 못했다.
◈ 그는, 18대 국회의원 시절 호남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물론 그의 지명도와 4년 동안의 비례대표 의원 시절 광주에 대한 ‘헌신’에 힘입어 39%라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호남 출신 한 언론인은 “그 때 광주 서구을 지역이 통합진보당으로의 야권 연대 지역으로 묶이지 않았다면 이정현 후보가 당선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시민들은 당시에 이정현 후보가 야권 통합 후보인 오병윤 후보보다 모든 게 낫지만 야권 통합 후보를 떨어뜨릴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정현 후보 측은 지난 총선 때의 광주보다 이번 재보궐 선거의 순천곡성의 분위기가 더 좋다고 말한다.
굵직한 공약에 대한 호응도 상당하고 중앙 무대에서 호남의 목소리를 대변한 데 대한 평가도 남다른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최근 새누리당 여론조사에서는 이정현 후보가 서갑원 후보를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정치연합에 비상이 걸렸다.
김한길, 안철수 대표와 박영선 원내대표, 정세균 전 대표와 박지원 의원 등 야당 중진들이 순천곡성에 총출동해 서갑원 후보를 돕고 있다.
◈ 택시 기사, "이정현을 찍자고 말하는 시민이 꽤 있다"
순천에 사는 장 모씨(49. 택시기사)는 “지역을 돌아다녀 보면 이정현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시민들이 의외로 많다”며 “정치를 잘 모르긴 해도 이정현 후보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언론인도 “새정치민주연합이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그런 몰표 현상이 이번에는 일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당선 가능성과는 관계없이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호남이 이정현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혁명적 의미를 지닌 대이변이 된다.
지난 88년 소선구제가 도입된 이후 단 한 차례도 영남이 텃밭인 정당(새누리당)이 호남에서 당선자를 내지 못한 지역주의 장벽이 무너지는 것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이명박, 박근혜 정권으로부터, 노무현 정권으로부터도 소외를 받은 호남이 알게 모르게 ‘핍박’을 한 영남에 ‘화해의 손’을 내민 것으로도 해석되기 때문이다.
◈ 호남의 이정현 선택은 정치역사적으로 '혁명'에 준하는 대사건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명박 박근혜 정권 하에서도 5대 권력기관장은 말할 것도 없고, 변변한 고위 공직자 한 명 찾아보기가 어려운 지역이 되어버린 호남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국회의원에 당선된다는 건 대이변을 넘어 ‘혁명’에 가까운 대 사건이랄 수 있다.
작금의 박근혜 정권에서 청와대의 수석과 5대 권력기관장, 권력기관의 주요 자리에 호남 출신이 한 명이라도 있는가? 단언컨대 없다.
서울과 세종시의 정부 중앙부처에서 근무하는 호남 출신 공직자들, 호남이 고향인 중앙 언론사 간부들과 대기업의 중역들 대부분은 호남에서 먼저 용서의 이변을 연출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호남의 아들딸들인 이들은 ‘이정현 후보 당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잠시 동안의 머뭇거림도 없이 “호남이 이번에 이정현을 당선시켜 지역주의를 깨버려 줄 것을 간절히 바란다”면서 “우리도 좀 당당해보자”고 말한다.
40대 중반의 한 경제부처 과장(고향 전남)은 “제발 이정현만 살려달라고 고향 분들께 호소하고 싶다”고 말한다.
김갑수 한사련 대표는 “호남이 이번에 이정현을 당선시키면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영호남의 정치와 담합의 논리가 지배하는 지역정치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게 된다”고 큰 의미를 부여했다.
임동욱 충북대 정치학과 교수는 “호남이 이것저것 다 따지지 말고 이정현을 당선시킨다면 지역정치라는 적폐를 걷어내는 데 앞장서는 것”이라며 “호남인들의 선거혁명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기간 동안 대통합을 주창했으나 하나도 실현된 게 없지만 호남이 이정현을 선택해버리면 오히려 먼저 대통합의 초석을 놓는 셈이 된다”고 말했다.
◈호남이 이정현을 선택하면 대통합의 초석을 놓는 것이정현 후보는 초선 의원이던 지난 18대 국회의원 시절 “이명박 정부는 호남 출신 공직자들의 씨를 말리고 있다”며 직격탄을 날리며 여당 의원으로서 보기 드물게 호남 소외론을 거론했다.
호남이 서갑원이라는 뛰어난 새정치연합 후보를 버리고 이정현을 선택하는 대결단을 내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치.역사적 의미는 뒤로 하더라도 새정치연합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대구에서 정치적 밭갈이를 하고 있는 김부겸 전 대구시장 후보에게 큰 파급력을 미친다.
TK(대구大邱-경북)가 2016년 총선에서 고민에 빠질 것이고 정치적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호남이 이정현을 살리면 자존심이 강한 대구.경북(TK) 여론은 부채의식을 갖게 될 것이다.
호남의 이정현 선택이 2016년 봄 대구의 김부겸 선택이라는 옥동자를 낳을 수 있다. 김부겸이 살아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다. 그야말로 선순환의 정치다.
◈ 호남의 이정현 선택→ TK의 김부겸 선택으로 선순환김부겸 전 대구시장 후보는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혈혈단신으로 43%라는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서는 48%나 득표했다.
김부겸 전 대구시장 후보는 “나의 당선 여부와 관계없이 호남이 통큰정치를 하면 대구는 바뀔 것이고 우리 정치의 서광을 비치게 하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와 관련해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대구 수성을)은 “호남이 이번에 지역감정 해소에 앞장서 준다면 대구도 달라질 것”이라며 “호남에서 대이변, 역사의 변혁을 위한 큰 역할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동관 매일신문(대구경북 지역 유력 신문) 문화부장은 “호남이 이정현을 당선시킨다면 정치적 의미가 엄청난 것”이라며 “호남의 역사적 선택을 기대하며 호남의 결단에 대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 "호남이 앞장서면 대구도 달라질 것이다"순천곡성 주민들이 이정현을 선택한다면 국민대통합과 지역감정 해소를 위한 ‘첫발’을 내딛는 것이자, ‘씨앗’, ‘마중물’을 만드는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호남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정치인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하늘나라에서라도 호남의 선택을 좋아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 하늘나라의 DJ도 반길 것
DJ의 정치를 계승 발전시킬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박지원 새정치연합 의원은 ‘이정현 후보가 당선된다면 DJ도 좋아할 텐데 왜 순천에 내려가 서갑원 후보 선거운동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누구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역주의 해소 의지를 잘 알고 있지만 나는 현재 새정치연합 당원이라”며 “당원의 역할을 다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호남의 이정현 선택 문제와 관련해 더 이상 묻지 말아달라며 손사래를 쳤다.
정치 역사적 당위성과 당인으로서의 역할에서 고민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임진왜란 때의 명재상 유성룡(고향 경북 안동 하회마을) 선생은 서애문집에서 ‘무경상즉무전라(無慶尙則無全羅)’라고 언급했다.
“경상도가 없으면 전라도(호남)가 없다, 즉 전라도가 없으면 경상도도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