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살인교사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과 경찰이 살해된 재력가 송 모(67) 씨의 ‘뇌물 장부’에 기록된 현직 검사의 금품 수수 내역을 놓고 석연찮은 엇박자를 내면서 수사당국의 총체적 난맥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검찰은 숱한 언론의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장부에 적힌 현직 검사의 뇌물 수수 금액이 수백만 원이라고 축소 발표했다가 스스로 번복해 망신을 자초했고, 유족이 수정액으로 장부를 가려 알아보기 어려웠다는 궁색한 변명도 했다.
경찰도 수정액으로 지워지기 전 장부의 사본을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내놓지 않아 검찰 수사 혼선을 부추겼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60대 재력가 살인교사 혐의로 김형식 서울시의원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화곡동 강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황진환기자/자료사진)
◈ “수정액으로 가려진 곳 강한 빛으로 비추고서야”…궁색한 검찰서울남부지검은 15일 경찰로부터 송 씨의 금전출납장부인 ‘매일기록부’의 사본을 넘겨받고서야 수도권 지검의 A 부부장 검사의 금품 수수액 기록을 다시 살펴봤다.
그러고선 당초 확보한 장부에는 A검사의 수수액이 300만원이라던 발표를 하루만인 15일 10차례에 걸쳐 1,780만원이 건네진 기록을 확인했다는 것으로 번복했다.
검찰은 경찰을 불러 갖고 있던 장부의 사본을 넘겨받고서야 자신들이 확보한 원본은 살해된 피해자 가족이 수정액 등으로 훼손한 것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A 검사의 기록 4곳 등 23차례에 걸쳐 장부를 수정액으로 지웠고, A 검사 이름으로 정리된 별지는 찢어버렸다는 것이 검찰의 송 씨 가족들을 이틀에 걸쳐 추궁해 받아낸 진술이다.
하지만 검찰은 갖고 있던 장부에서 수정액으로 지운 곳은 뒷장을 불빛에 비춰 글씨를 확인해놓고서도 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심 역시 받고 있다.
검찰이 확보한 장부에도 A 검사가 5차례 금품을 받은 기록이 있었었는데, 검찰이 확인 한 건 유족이 미처 지우지 못한 한 부분과 ‘검사’라는 직책은 지운 채 이름만 남아있던 2곳 뿐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는 취재진의 의혹제기가 잇따르자 “강력한 불빛에 비춰보니 A 검사의 이름 보이는 게 있었다”는 궁색한 변명만 늘어놨다.
하지만 "도대체 그 강력한 불빛이 뭐냐"는 취재진의 질문이 나오자 검찰 관계자는 아무런 답도 내놓지 않은 채 멋쩍은 듯 웃어 넘겼다.
유족이 수정액으로 가린 나머지 18차례의 정치인과 공무원 등에 대한 금품 수수 내역 역시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에 나서지 않았을 의심을 지울 수 없는데도 수사의 신뢰성을 스스로 무너뜨린데 대한 사과는 없었다.
검찰 관계자가 "심히 유감"이라면서도 “바로 잡은 건 그나마 다행”이라는 말을 꺼낸 건 빈축을 살만한 대목으로 보인다.
경찰이 확보한 사본을 뒤늦게 제출받은 것에 대해선 “계속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어제까지도 공식적으로 없다고 하다가 금일 오전에 전달했다”면서 “경위를 조사하겠다”고 검찰은 설명했을 뿐이다.
◈ “사본 보유 사실 보고 받지 못해”…오리발 내민 경찰검찰 수사가 혼선을 자초하는데는 경찰도 한몫(?)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고 있다.
경찰이 유족에 의해 훼손되기 전의 장부 사본을 갖고 있었지만 “사본은 없고 장부를 보고 기록한 메모밖에 없다”고 거짓말을 한 게 들통 났기 때문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사본 보유 사실을 보고 받지 못했다”면서 “결과적으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현직 검사와 정치인, 공무원의 뇌물수수 의혹에 대해 검찰의 수사와는 별도로 ‘투트랙 수사’ 방침을 밝혀온 게 경찰이었다.
수사권 조정 문제 등을 감안해 검찰에 감춰온 것 아니냐는 시선을 빗겨가긴 어렵다는 뒷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검찰이 A 검사의 뇌물 수수 금액이 “어떠한 가능성이 있더라도 ‘기백만 원’ 이상일 수는 없다”고 밝힌 직후, 경찰은 A 검사가 수수한 것으로 기록된 금액은 ‘10여 차례에 걸쳐 1,000만원이 넘는다’는 자체 정보를 언론에 내놨다.
결국 검경 간 기싸움의 도화선이 됐지만 경찰청 관계자는 “증거물이 아니니까 수사 서류로 송치하지 않은 것 아니겠냐”는 해명을 내놓고 있다.
결국 피해자 유족의 핵심 증거물 훼손 과정에서 검찰은 무능을 드러냈고, 경찰은 거짓말이 발각된 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