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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며 길바닥에 누워 맨홀 구멍속으로 막대기를 쑤시는 남자, 버스의 배기 가스가 북극의 얼음을 녹이고 있다고 나무라며 버스를 가로막는 이 남자, 길에서 소매치기를 잡으러 자기일처럼 뛰고, 횡단보도를 힘겹게 건너는 할머니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는 이 사람은 과연 미친놈인가 아니면 바른 생활 사나이인가?
슈퍼맨(황정민)이 서울 한복판에 등장했다. 이 남자는 다 자기 먹고 살기 바빠 정신없고 손해보는 장사 안하는 세상의 순리에 적응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부랑자이거나 노숙자이거나 정신병원에서 뛰쳐나온 ''환자''로 비춰질 뿐이다.
하지만 이 남자 가만히 살펴보면 어딘가 맞는 일, 옳은 일, 누군가 해야할 일에 앞장 선다. 자기 것을 뒤로 제쳐두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 남자는 정말 어디선가 위급한 일이 생기면 언제나 든든한 힘이 돼주려 나타나는 진짜 슈퍼맨은 혹시 아닐까?그런데 좋은 일 하는 것까진 좋은데 자꾸 머리속에 대머리 악당이 박아넣은 크립토나이트 때문에 날 수가 없다고 중얼거리는 모습에서는 다시 허무해진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에 이골이 난 송수정 프리랜서 PD(전지현)가 이런 슈퍼맨을 모른척 할리 없다. 최고의 아이템이 눈앞에 고맙게도 나타난 것이다. 그저 대박 다큐 한편 찍자고 덤벼든 송수정은 어쩔수 없이 그를 카메라 렌즈에 담으려고 접근했지만 이 남자 정말 ''돌아이''아닐까 혼동에 머리가 지끈거린다.
슈퍼맨의 진심을 알기까지 관객들은 극 중반까지 인내력이 필요하다. 자칫 슈퍼맨 캐릭터에 대한 이해를 놓치면 참을 수 없는 갑갑함에 리듬감이 끊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따라간 후반에서 영화의 극적 몰입은 대단히 속도감 넘치고 깊은 맛이 느껴진다.
슈퍼맨의 태생적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면서 관객들은 관찰자 시점인 송수정과 같은 눈으로 슈퍼맨을 이해하고 물들기 시작한다. ''과거는 어쩔수 없지만 현재를 바꿔야 미래가 바뀐다''는 슈퍼맨의 반복 화법은 그가 가진 아픈 사연을 은유하는 것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슈퍼맨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사연의 보따리를 자기 가족의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연결하는 것 까진 좋았는데 5.18 광주항쟁까지 간 것은 너무 멀리간 느낌이다. 관객이 끄덕이고 따라갈 수 있는 이야기의 흐름에서 다소 튀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렇게 멀리 돌아간 이야기를 간신히 되돌린 마지막 화재 에피소드와 구출 장면은 정신이 번쩍 든다. [BestNocut_R]
마지막 선물처럼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에서 슈퍼맨의 존재감과 의미는 영화의 방점을 찍는 듯 하다.
이번에는 어떻게 했을까가 궁금해지는 황정민의 슈퍼맨 연기는 소름이 돋을 만하다. 접신이라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인 듯 싶다. 물리지 않는 그의 연기 변신이 그저 놀랍다. 어떻게든 매번 설득력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 내서 관객을 붙들 수 있는 그의 천재적 연기력은 슈퍼맨이 단연 최고다.
전지현은 재미있는 현상이 보인다. 가식없이 자연스러움을 보여주면서 편안하게 와닿는 모습은 황정민과의 호흡에서 더 잘 우러난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연기폭도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될 법하다.
감동의 드라마 ''말아톤'' 감독 표 영화답게 기승전결이 확실한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는 정윤철 감독의 표현대로 슈퍼맨의 국산화에 성공을 거둘듯 싶다. 31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