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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영화 어때] '에너미' 거세된 욕망이 낳은 '나'라는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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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영화 어때] '에너미' 거세된 욕망이 낳은 '나'라는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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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과 똑같은 존재 '도플갱어' 다룬 도시괴담…관객 내면 불안심리 쥐락펴락

     

    '그을린 사랑' '프리즈너스' 등으로 인간 내면의 잠재의식을 들춰 내는 데 탁월한 감각을 보여 온 드니 빌뇌브 감독. 영화 '에너미(Enemy)'는 그가 관객들을 긴장시키기로 작정하고 들려 주는, 현대인의 거세된 욕망에 관한 1시간 30분짜리 흥미로운 도시괴담이다.
     
    대도시에 사는 역사 교사 아담(제이크 질렌할)은 낮에는 강의를 하고, 밤에는 애인 메리(멜라니 로랑)와 뜨거운 잠자리를 갖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가 추천한 영화를 보던 아담은 화면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단역 배우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인터넷으로 알아낸 그 배우의 이름은 앤서니(제이크 질렌할). 존재 자체가 흔들리는 듯한 불안감에 시달리던 아담은 앤서니를 찾아나서고, 그가 거침없는 성격인데다 임신한 아내 헬렌(사라 가돈)과 가정을 꾸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담의 제안으로 둘은 결국 만나게 되고, 그날 이후 앤서니는 아담의 삶을 염탐하면서 그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한다.
     
    영화 에너미는 같은 시공간에 사는 나와 똑같은 존재인 도플갱어를 다루고 있다. 둘 가운데 누가 진짜이고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다. 도플갱어는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이 진짜이고 상대방이 가짜인 까닭이다. 그러니 이 영화의 제목처럼 둘은 서로에게 적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이 영화는 앞서 영화화된 '눈먼 자들의 도시'를 쓴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주제 사라마구(1922-2010)의 소설 '도플갱어'를 원작으로 한 만큼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갖췄다. 여기에 감독은 영화라는 매체의 특장점을 한껏 살려내 복선과 상징을 품은 이미지의 향연을 벌인다.

    시종일관 메트로폴리스의 음산한 풍경과 무거운 음악이 지배하는 영화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이 향연을 주관하는 주요 장치가 된다. 욕망과 죄의식이 긴밀하게 맞닿아 있는 오프닝·엔딩 시퀀스는 그러한 효과의 결정체로 다가온다.

    에너미는 극 초반 아담의 강의 내용을 통해 주제를 분명히 하는 한편 이야기의 핵심적인 흐름을 암시한다. 강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독재의 전략은 교육을 외면하고 표현의 수단을 차단함으로써 정보를 제한하는 데 있다" "독재의 강력한 무기는 엔터테인먼트로 대중을 현혹시키는 것인데 역사에서는 이러한 패턴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영화 '에너미'의 한 장면

     

    이때 아담은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는 헤겔의 말과 "한 번은 희극, 나머지는 비극"이라는 마르크스의 첨언을 인용하는데, 이 말대로 극 초반 아담의 평범한 일상은 도돌이표를 만난 악보처럼 한 차례 더 반복된다. 그리고 아담이 앤서니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부터 이야기는 희극과 비극을 묘하게 뒤섞은 듯한 둘의 삶을 그린다.
     
    이때 카메라는 유독 등장인물들의 뒷모습을 자주 비춘다. 이는 철저히 관찰자 입장에 머물겠다는 영화적 의지를 나타냄과 동시에, 관객들에게 "어디선가 당신의 도플갱어가 그대를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불안감과 긴박감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낸다.
     
    극중 아담과 앤서니가 만나는 두세 차례의 장면을 제외하고는 둘의 통화신이나 연인 메리, 아내 헬렌, 어머니 캐롤라인(이사벨라 로셀리니)과 함께하는 신들을 통해 두 사람이 결국에는 하나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앤서니는 문명이라는 이름을 포장된, 메트로폴리스라는 거대하고도 유기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희생돼야만 했던 아담의 욕망 그 자체다. 이 둘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거울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1인 2역을 소화한 배우 제이크 질렌할의 연기는 감탄스럽다. 상반되는 성격의 두 인물을 표현해야 했던 그는 기존 도플갱어를 소재로 했던 영화에서 손쉽게 취해 온 뚜렷한 외형적 차이를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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