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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영어로 뭐라고 할까?" 영어공부에 한번 미쳐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에 밤잠을 설친 적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문장도 아니고 단어 몇 가지가 내 속을 썩인 적이 있다.
먼저 불교나 기타 동양종교에서 하는 예식을 번역하려면 무척 어렵다. 단어 하나만 들어도 무엇을 하는지는 외국인이 알아듣는 적절한 단어를 찾기가 그다지 쉽지 않다.
삼국지를 번역하는데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의형제를 맺는 부분이 있다. 이 의형제를 뭐라고 할까? 피로 연결된 형제도 사실 제대로 표현하기 어렵다.
우리는 어머니가 다른 형제는 이복형제, 아버지가 다르면 씨다른 형제라고 하지만 영어에서는 그냥 ''half brother(반만 형제)''라고 하니 말이다. 할 수 없이 ''sworn brother(형제로 맹세를 한 사이)''라고 했는데 잘 이해 못하는 분위기다.
어떤 친구는 나이는 관우가 많은데 왜 유비를 형님이라고 하느냐는 질문을 하는데 사실 형이라는 말도 단순히 나이많은 형제(older brother)는 아니니 말이다.
[BestNocut_R]불교에서 해마다 거북이나 물고기를 방생하는 행위도 영어로 옮기기 까다롭다. 고작 번역한다면 ''release of captive animal''정도인데 스스로 점수를 줘도 50점 이하이다. 이런 동양의 전통이나 종교에 대한 번역이야 일단 그 방면으로 지식이 있는 서양인들이나 관심이 있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는 사회현상을 말하기도 쉽지는 않다. 요즘 여성들의 모습을 몰래 촬영하는 온상으로 전락한 남녀공용화장실의 예를 들어보자. 일본에서도 간혹 이런 화장실을 보기는 했지만 서양에서는 남녀가 같은 변기를 쓰는 것을 상상하지도 못한다. 남녀공용화장실을 ''unisexaul toilet''이라고 말하면 고개를 갸웃거리지만 내 머리로는 이 이상의 번역은 어려울 것 같다.
그 옛날 나이든 부모를 산에 버리는 무서운 풍습인 고려장을 설명하는 것도 힘겹다. 더구나 효를 나라의 근본사상으로 여긴 조선시대를 거친 우리나라에서도 부모를 버린다는 것을 서양인들은 전혀 납득하지 못한다. 고작 ''an ancient tradition to abandon the old people in a remote place''라고 말하기는 하는데 내가 번역하고도 참 한심하다.
이런 골치 아픈 번역에서 벗어나려나 했는데 필리핀 등 해외에 나이든 부모를 버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니 이를 영어로 어찌 설명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필자는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등 5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한국 토박이로, ''교과서를 덮으면 외국어가 춤춘다''의 저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