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6,70년대 전국적인 ''쥐잡기의 날''까지 만들어 박멸하려 했던 쥐들이 이제는 귀한 몸이 됐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안락한 곳에서 영양분이 골고루 갖춰진 음식물을 받아 먹는다. 신선한 공기가 24시간 공급되고, 제공되는 물까지 멸균처리 과정을 거친다.
모든 쥐들의 얘기는 아니고, 각종 실험실에서 살아가는 실험용 쥐의 얘기다.
인간의 질병 연구를 위해 쓰여지는 실험용 쥐, 일명 ''마우스(mouse)''는 연구 과정에서의 외부 변인을 완벽히 차단하기 위해 이러한 ''호사''를 누리며 산다. 대우만 유별난 것이 아니다. 마우스는 어떤 특질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가격이 몇천 만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인간 질병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 쥐대전에 위치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경우 마우스 6,000여 마리를 보유하고 있다.
연구원 내에는 쥐 외에도 개나 고양이, 원숭이 등도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연구용 동물 가운데 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생명공학연구원 질환모델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인 이철호 박사는 "쥐는 포유류이면서도 체구가 작아 관리가 쉽고, 세대가 짧아 유전 질환을 연구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이 박사의 말처럼 쥐의 수명은 평균 2년에서 2.5년. 3세대를 거치는 유전 질환을 연구한다고 해도 수년이면 족하다. 인간의 질병 연구에서 쥐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됐다.
△평생 각종 질병을 떠안아야 하는 운명그러나 마우스는 결코 행복하지 않다. 이들이 앓고 있는 크고 작은 병들 때문이다.
마우스는 당뇨쥐나 고혈압쥐처럼 갖고 있는 질병 종류나 특질에 따라 다양한 ''계통''으로 분류되는데, 대전 생명공학연구원의 경우 30여 계통의 마우스가 있다. 마우스 가운데는 자신 얼굴보다 더 큰 암덩어리를 달고 다니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유전 질환으로 형체가 심하게 일그러진 것들도 있다.
또 질병을 갖고 있기 때문에 수명은 평균보다 짧고 치명적 질병을 앓게 된다면 수명은 단 몇달로 단축된다. 연구원은 마우스가 부족해지면 주로 전문 배양업체를 통해 새로운 마우스를 공급받게 된다.
ㄹㄹ
△매년 12월, 마우스를 위한 위령제 지내 마우스의 궁극적인 역할은 인간을 위해 대신 죽는 것.
인간의 질병 연구를 위해 사육되다 실험 과정에서 유전자가 변형되거나 병균이나 바이러스가 투입돼 결국 수명을 다하게 된다.
그러나 연구원들이 쥐를 한낱 실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니어서 대전 생명공학연구원의 경우 매년 12월 실험용 쥐를 위한 위령제를 지낸다. 이철호 박사는 "쥐들이 평소 좋아하는 사료를 마련한 뒤 간단히 묵념을 하면서 위령제를 올린다"면서 "인간을 위해 죽어간 쥐들의 넋을 기리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죽은 쥐들은 모아서 냉동처리된 뒤 폐기물처리법에 따라 허가를 받은 업체가 위탁 처리하는데, 대개 화장(火葬)된다.
△개정 동물보호법 시행...''마우스에게도 윤리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해 1월 27일부터는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시행돼 마우스를 비롯한 각종 동물에 대한 실험에도 윤리적 잣대가 적용된다는 점이다.
[BestNocut_R]''동물보호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규모가 큰 동물실험을 진행하는 연구기관과 의료기관 등은 ''동물실험윤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 위원회는 동물 윤리 차원의 적절성을 판단해 각종 실험의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또한 실험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동물이 죽더라도 그 고통을 더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생명공학연구원 이철호 박사는 "고통이 수반되는 실험에는 대상 마우스를 마취시킬 수 있고, 혹시 고통스런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면 안락사시키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쥐의 해인 2008년 무자년엔 마우스들이 인간을 위해 헌신하는 가치만큼 조금 더 안락한 여건이 제공되고, 마우스들의 희생이 큰 성과로 이어져 더욱 빛을 발하게 되길 기대해 본다.